가족이 많아진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작년 10월 둘째가 태어나면서 우리 가정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첫째 위주로 돌아가던 가정은 둘째에게 중심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제왕절개를 한 아내가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둘째가 손이 많이 가던 시기였기에, 자연스럽게 첫째는 배려와 양보, 기다림을 배우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인생 공부로 첫 한두 달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손 빨기, 떼쓰기 등 다양한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첫째는 6살이 되면서 조금 더 큰 것 같다.
몸이 커지는 만큼 마음도 커졌을까.
동생에 대한 애착도 더욱 커졌다.
지금은 물고 빨고 동생과 같이 자는 것을 너무 행복해한다.
둘째도 오빠를 보며 빨리 크고 싶은지 네발기기를 뛰어넘어 걷기부터 시작하려고 해서 진땀을 뺐다.
하루하루가 고군분투의 현장이었지만, 돌아보면 지난 8개월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하다.
그리고 안정돼 가는 가정에 첫째가 새로운 미션들을 주기 시작했다.
'왜?' , '싫어!'
궁금하면 질문할 수 있으니, '왜'는 그렇다 치자.
근데 '싫어!'는 왜?
대체 왜 싫다는 거니? 뭐가 싫다는 거니?
막상 들어보면 나름의 이유도 있고 그럴싸하다.
떼를 쓸 때,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고 차기도 한다.
꾸준히 교육했기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가정이라는 편안한 장소에서 종종 발생하는 이런 상황은 당황스러우면서도 화가 난다.
하루는 첫째에게 물어봤다.
나: 요즘 엄마, 아빠한테 혼나는 날이 조금 많아지지 않았니?
아들: 응.
나: 그때마다 무슨 생각해?
아들: 음... 무서워. 근데 목소리가 크지 않으면 괜찮은데, 가끔 큰 소리 나면 무서워.
나: 그렇구나. 근데 왜 엄마, 아빠가 너에게 화를 낼까?
아들: 음... 내가 말을 안 들어서? 잘 모르겠네.
나: 엄마, 아빠도 하준이가 말을 안 들어주면 기분이 안 좋아.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힘들어. 우리도 큰소리 내지 않게 노력해 볼게.
집에서 그렇게 큰소리가 많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순간들이 아직 무섭게 느껴지는 여섯 살인 것 같다.
그날 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도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훈육할 수 있을까요? 지혜를 주세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요. 완벽한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그건 이미 어렵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요.
대신 지혜롭게 키울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알려주실 수 있잖아요.'
그리고 다음날 같은 일이 반복됐다.
머릿속으로 '화내지 않고 잘 타일러보자. 큰소리치는 게 답은 아니니까.'
그러나 아이의 감정적 행동들의 연속은 결국 큰소리로 이어졌다.
그 순간에도 기도했지만, 결국 내 감정이 앞섰다.
그날 밤, 골방에 들어가 또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제발 지혜를 주세요.'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다음날 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래서 발로 찬 장난감을 치웠다. 아이에게는 버리겠다고 했다.
'장난감 버리지 않으면 좋겠어!' 라며 난리가 났다.
아이에게 진정할 시간을 줬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 성장하는 중에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이것도 그러한 일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면, 그냥 화내기보다 진정시키고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반성하고 책임지는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진정되어 가는 아이를 앉히고 대화를 나눴다.
나: 아들, 아빠가 화가 난다고 해서 물건을 던지거나 발로 차면 안 된다고 했지?
아들: 응.
나: 그런데 너는 오늘 화가 나서 자석블록을 발로 찼어. 그래서 앞으로 자석블록은 가지고 놀 수 없어.
아들: 안돼! (울부짖으며)ㄹㄴ어ㅏㅣ러자이ㅓㅏㅇ.
나: 응, 아니야. 화가 났을 때는 진정하고 너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이제 연습해야 해. 더 이상 화났다고 떼쓰는 어린아이가 아니야.
아들: 응, 그럼 자석블록은 정말 못 가지고 노는 거야?
나: 응. 오늘 너의 행동을 책임지는 법을 배우자. 일주일 동안 장난감을 소중히 다루면 그때 돌려줄게.
어제의 일을 돌아보며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양육하실까'를 생각해 봤다.
4가지 정도가 생각나서 적용해 봤다.
첫째, 하나님은 기다려주신다.
말씀을 읽다 보면 하나님은 죄가 무르익을 때까지 몇 백 년도 기다리신다. 기회를 주신 것이다.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깨달을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훈육하며 변하기를 기다린다.
둘째,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기다림의 시간이 지났거나 당신의 백성이 배신을 했을 때, 하나님은 확실하게 심판하신다.
하지만 때에 따라 강력한 한방이 필요할 때가 있다.
셋째, 하나님은 외면하신다.
때로는 당신의 백성들이 죄로 인해 고통받고 신음할 때나 심판을 받고 있을 때, 당신의 때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아이가 책임을 질 때, 묵묵히 기다려준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신다.
나도 그럴 것이다. 놓아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주는 미션들은 때론 감당하기 어렵고 나로 하여금 무력함을 느끼게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부모라는 자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고, 아이들을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한다.
'하나님, 오늘도 사랑을 부어주세요. 사랑 없는 자가 사랑하려니 너무도 힘이 듭니다.
그래도 날 보며 웃어주는 아이들을 보니 사랑할 힘이 납니다.
그러니 나에게 더 사랑을 부어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이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