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세상에 태어날 때 창문도 도려낼 듯한 강풍이 갑자기 멎고 맑은 햇빛이 쏟아졌다, 고 어머니는 회상하신다(기상청 자료를 보면 실제로 태풍이 오긴 했다). 그로부터 6년 뒤 내가 태어났을 땐 강풍 없는 평온한 날씨였다. 새벽에 어머니가 진통으로 힘겨워하실 때, 형은 병원 대기실 차가운 긴 벤치에 웅크려 있었다고 한다.
내가 겨우 기어 다닐 시절, 형은 갑자기 소변을 너무 자주 눴고 엄지손가락을 다 헐 정도로 빨았다고 한다. 형은 그런 적 없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그가 어린 맘에 질투해서 그랬더라고. 내가 아기에서 아이로 커 가면서 형은 점차 소변을 잘 보게 되었고, 그 무렵부터 우리는 침대를 함께 쓰기 시작했다.
형은 침대 머리맡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형은 학창 시절 고고학자가 꿈이었던 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한반도 고대 역사, 그중에서도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좋아했다. 침실의 어둠 속에서 형의 말들은 날카로운 검이 되어 적들을 베었고, 용맹한 기마가 되어 벌판을 내달렸고, 위대한 고구려 왕이 되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나는 형의 영웅 이야기를 베고서 곤히 잠들었다.
형은 별에 대해서도 즐겨 말했다. 별의 밝기와 색깔은 왜 다른지, 별은 어떻게 태어나고 죽는지, 계절마다 어떤 별자리들이 뜨는지 등 별에 대한 별의별 이야기들이 은하수처럼 넘실거렸다. 침실의 어둠은 깊은 밤하늘이 되어, 눈을 감고 있으면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가끔 달빛이 침대로까지 길게 뻗어오면 우리는 이불을 박차고 창가로 가 달밤을 오래 쳐다보았다.
어느 추운 겨울, 유성우가 쏟아지리라 예보된 날이었다. 잠이 먼저 쏟아졌지만 형과 나는 굳은 마음으로 버텼다. 새벽 4시쯤 우리는 옷을 단단히 차려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뒷목이 아프도록 하늘을 쳐다봐도 유성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밤하늘을 더 잘 보려고 아스팔트 바닥에 누웠는데, 강한 한기가 금세 몸을 덮쳤다. 그때, 형은 나를 자신의 몸 위에 눕혔다. 나는 그날 유성우를 보지 못했지만, 집에 돌아와 가장 따뜻한 잠에 들었다.
형과 내가 십 대의 삶을 통과할 적에는 집에서 양말 공 축구를 원 없이 했다. 아버지의 긴 정장 양말 한 켤레를 둘둘 말고서 한 짝의 구멍을 뒤집으면 작은 공이 된다. 우리는 좁은 거실을 거대한 그라운드, 베란다 문과 마주보는 방 입구를 골대 삼아 땀을 흠뻑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찬 양말 공에 탁상용 전등이 넘어지면서 전구가 깨지고 말았다. 잠시 당황하던 형은 전구를 끼우는 자리에 양말 공을 올려놓고 전등 덮개를 덮었다. 감쪽같았다! 그날 밤 낌새를 눈치챈 어머니에게 결국 들켰지만, 우리는 침대 머리맡에서 한참 동안을 킬킬거리며 새로운 이야깃거리에 즐거워했다. 형과의 하루 속에서 나는 키가 쑥쑥 자랐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면 형은 고등학교에,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면 형은 대학교에 들어갔다. 형이 군대를 갔다 오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도 우리는 항상 한 침대를 썼다. 이야기의 주제는 그동안 상상보다 상실이, 환상보다 한숨이 많아졌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내 키는 더 이상 크지 않았지만, 내 세상은 고구려의 위대한 왕이 정벌하듯 넓고 광활해졌다.
결혼식 몇 달 전 형이 축가를 직접 부르고 싶다며 나에게 기타 반주를 부탁했다. 나는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매일같이 연습했는데, 너무 긴장해서인지 결혼식 당일에 반주를 틀리고 말았다. 하지만 형은 틀린 반주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형은 단지 고맙다고 내게 말했다. 그날부터 침대에는 나 혼자였다. 나는 이불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울었다.
이제 나도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나는 밤하늘을 보면 잠시 멈춰 별자리를 헤고, 유성우가 검색어에 오르면 하루 종일 설레는 사람이 되었다. 형은, 그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아름다운 꿈을 심어 주었다. 행진을 마치고 나면 잠시만 형을 부둥켜안고 말하고 싶다. 고마워, 형.
아, 어느덧 형은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다. 나는 조카에게 기타를 종종 쳐 준다. 형은 둘째는 괜찮다고 한다.
[후기]
결혼식 날 형을 안아 보기는커녕 형이 어딨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다. 아무쪼록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는 사랑하는 이와 한 침대를 쓴다. 빡빡한 삶에 형과의 연락은 뜸하지만, 내 삶의 어느 한 줄은 언제나 형과의 추억에 이어져 있다. 조카는 점점 형의 얼굴을 닮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