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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근 Sep 04. 2021

리얼 한 끼

고마움을 전하는 최선의 시간

증산역 1번 출구로 나버스를  ‘리얼한끼’는 첫 번째 정류장과 두 번째 정류장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딱 한 정거장만 가서 내리기엔 거리가 너무 가깝고, 두 정거장 가서 내리기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 그래서 리얼한끼로 갈 때면 역에서 그곳까지 십여 분 가까이 걸어갔다. 가득 피곤하고 배고플 때도, 아니 오히려 그럴 때마다 더 생각이 나 발걸음이 향했던 그곳이었다.


리얼한끼는 아주 작은 가게였다. 전체 평수로 따지면 여섯 평 남짓한 내 자취방과 비슷한 면적이었다. 절반은 네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는 식사 공간, 절반은 주방 공간. 가게에 들어서면 나는 꼭 주방의 위생 상태를 훑어보는데, 벽이든 후드든 언제나 기름기 없이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식사 메뉴로는 육천 원으로 값이 통일된 돈가스, 쌀국수, 삼겹살 덮밥이 있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안주 메뉴들이 있었다. 자취하는 7개월 동안 나는 오직 돈가스만 주문했다.


돈가스는 넓적한 돼지고기 한 덩이와 길쭉한 생선 한 덩이, 둥그렇게 모양 잡힌 밥, 반달 단무지 두 개, 피클 몇 조각, 경양식 샐러드, 특제 소스 세 가지, 맑은 된장국이 한 세트였다. 그중에서도 세 가지의 특제 소스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것인데, 전통적인 돈가스 소스와 하얀 타르타르소스에 더해 고추기름이 들어간 듯한 특이한 맛의 소스가 돈가스의 맛을 풍요롭게 돋우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왜 돈가스만으로도 충분했는지 알 것만 같다.


나는 매번 소스를 찍는 순서를 나름 정해서 먹곤 했다. 사실 나는 어떤 식사든 밥과 국과 반찬의 양을 최대한 잘 분배하여 마지막 한 입 때 그 모든 것들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도록 애쓴다. 내가 예상한 대로 딱 떨어졌을 때의 그 소소한 희열이란! 그리고 리얼한끼에서는 무려 세 가지에 달하는 소스가 그 과정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기에 나는 그만큼 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난 확신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아무쪼록 돈가스는 정말 맛있었다.


그러나 리얼한끼를 계속 찾았던 이유는 무엇보다 사장님 때문이었다. 사장님은, 순전히 내 생각이겠지만, 내 또래로 보이 남성이었고 리얼한끼는 그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는 일인 식당이었다. 여섯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서 나는 과제를 하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했으며, 사장님은 메뉴를 설명하고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했다. (차이가 있다면 사장님은 그 공간에서 매달 돈을 벌었고 나는 매달 돈을 썼을 뿐...)


사장님은 자신의 공간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메뉴를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음식을 만드는 그의 손에서, 설거지한 수저의 물기를 닦는 그의 날카로운 두 눈에서 나는 미묘하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공간을 사랑하고 있음을. 아니, 적어도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있지 않음을. 사장님은 나에게 요리 그 이상을 요리해 주었다. 그냥 한 끼 말고, 위로와 용기가 함께 튀겨진 ‘리얼’ 한 끼. 내가 그에게 전해줄 수 있는 건 그가 정성스레 요리해 준 음식에 대한 정당한 값과 오늘‘도’ 맛있게 먹었다는 사소한 말뿐이었다.


짧은 자취 생활을 접은 뒤, 이따금 그때가 그리워질 때면 지도 앱을 켜서 증산역 주변을 멀리서나마 둘러보곤 했다. 그리고 꼭 리얼한끼를 한 번씩 검색했다. 사장님이 그 자리에서 여전히 장사하길 바라면서. 아주 가끔 업데이트되는 짧은 리뷰를 읽으면, 그날의 세 가지 특제 소스 맛이 혀끝에 번갈아 가며 길게 머물렀다. 거리뷰로 보이는 리얼한끼의 하얀 간판을 보면, 깨끗한 요리용 장갑을 낀 채 돈가스를 튀기던 사장님의 야무진 손이 기억 끝에 머물렀다. 아, 언젠가 다시 간다면 그땐 꼭 돈가스 말고 다른 메뉴를 주문해 보리라.

출처 : 카카오맵 거리뷰

러던 8월이었다. 오랜만에 거리뷰를 켜서 보는데, 2층 높이에 붙은 간판은 여전하나 1층 식당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선 듯 플래카드가 보였다. 부리나케 주소를 복사해서 검색해 봤더니 어느 블로그 글에 이전의 작은 식당이 나가고 새로운 카레 가게가 들어왔다고 쓰여 있었다. 얼한끼가 없어진 것이다.


나는 한동안 멍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제야 리얼한끼가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던 나 자신이, 그래서 내 편할 대로 언제든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이기적인 나 자신이 보였다. 리얼한끼는 내가 피곤하고 힘들 때마다 따뜻한 돈가스를 내어 주었는데, 나는 그 피곤함을 핑계로 따뜻한 고마움을 다시 전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외면했다. 마움을 할 수 있는 최선의 시간은 리얼타임, 그러니까 맘이 생긴 바로 그 순간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장님은 왜 식당을 닫았을까?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으실까? 약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리얼한끼를 여셨다면 평수가 좀 더 넓은 곳, 그래서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리가 너무 고되어 다른 도전을 이어 가신다면, 그래도 사장님은 잘 해내실 것이다. 사장님은 자신의 삶을 미워하지 않는 법을 아실 테니까.


늦었지만 사장님께 꼭 전하고 싶다. 배가 꼬르륵대고 마음이 헛헛해질 때면, 추억 속의 길을 따라 곳으발걸음을 하는 손님이 여전히 있다는 걸. 러다 우연히라도 사장님을 만나게 된다면, 요리하느라 분주하던 손을 가만히 잡고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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