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게 큰 건 아니지만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았다. 돈을 아끼면서 자랐고 가끔 부유한 친구가 바닐라비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는 게 부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좀 더 컸을 땐 폴로 같은 브랜드를 사고 싶을 때 친구의 부모님은 척척 사주는 걸 보고 '돈이 많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가끔 나이키 같은 브랜드가 사고 싶으면 부평 지하상가에서 짭을 샀다. 가끔 어떤 애는 '그거 짭 아니야?'라고 물었지만 내가 찐이라고 해도 그는 모를 것 같아서 찐이라고 했다.
대학교에 들어오자 그 격차는 더 커진 거 같았다. 난 평범한 집에서 컸는데 친구 아버지는 의사 거나, 비상장기업의 오너 거나 했다. 그런 애들의 집에 가보면 딱 봐도 그늘이 없게 컸을 것 같은 집안 분위기나, 사람 자체로부터 풍겨 나오는 여유가 있었다. 난 그 꾸밈없는 밝음이 좋았다. 억지로 행복을 지어내야 하는 게 아닌 살아온 환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런 것들은 부럽다기보다 닿을 수 없는 저 세계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환경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학생 때는 돈을 벌면서 지냈다. 친구들이 학점을 관리할 때 내 학점은 학고를 간신히 면할 정도였다. 내가 돈이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벌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공부는 더 이상 하기 싫었다. 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였고 공부는 그걸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내가 버는 건 푼돈에 가까웠다. 그들이 공부를 해서 아버지의 사업체를 물려받을 때, 나는 그런 거 없이 취업을 하고 개미처럼 돈을 모아 왔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서 자산을 사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걸 느낀다. 주식, 코인, 경매, 부동산 투자 같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하는 것들이, 걘 태어났을 때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어서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출발선상부터 다르구나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하는 공부들이, 그러다 한번 삐끗하면 숨도 못 쉬면서 살아가는데 부유한 애들은 한번 잘못되더라도 1차적으로 부모님의 지원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실수조차 안 하도록 방지턱이 마련될 거란 사실은 진이 빠지게 만들었다.
한 번은 임대가 나가지 않는 걸 하소연했더니, 부유한 친구는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걱정도 해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가 임대를 나가게 해 준다거나 하는 해결책을 제시한 건 아니었다. 사실 들어준 것만 해도 고맙다. 하지만, 걔는 자산을 불리기 위해 부동산을 힘겹게 살 필요도 없고, 갈망하지 않으니 평소에도 그렇게 나이브할 수 있었구나 하는 걸 생각하면 그동안의 행동들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폭동을 일으키기보단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걘 걔고 넌 너야' 이런 것들은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내가 물속에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지만, 그래서 헤엄치지만 늪처럼 빠지는 느낌일 때면 난 더 악에 받쳐 투자를 했다.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진 모른다. 별 많지도 않은 시드 가지고 허세 떠는 걸로 보인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죽을 때 가난하면 그건 내 책임인 거니까 오늘도 투자할 수밖에 없다. 비교하기 싫지만 비교하게 되고 열심히 해도 제자리인 거 같은 하루들이지만 더 나아지고 있다고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