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치하는 사람이 아니다. 검약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다. 과태료를 내고 주차비를 내는 것들이 사치의 범위는 아니지만, 쓸데없는 곳에 돈이 나가면 죄책감마저 드는 사람이다. 명품은 가져보고 나서 그 트렌드를 따라가기가 얼마나 벅찬지 알게 되어 다 팔았다.
그전에는 '그릇이 다 똑같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접시도 있던걸 계속 쓰고, 새로 구매한다든지 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릇은 어머니가 주시면 그냥 그걸 썼다. 단연코 많은 그릇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친구에게 선물을 받게 되면서 달라졌다. 아스띠에 드 빌라뜨의 컵이다. 에르메스 접시 같은 거에 비하면 절대 금액도 비싼 게 아니다.
컵 외관에는 셰익스피어가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이 컵을 보고 너무 괴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컵에 그려진 사람의 얼굴이라니. 이상하게 느껴졌던 건 기존의 컵들에는 사람의 얼굴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얼마나 많은 순간을 기존 고정관념에 묶여 지내는 걸까.
마치 일상의 꾀죄죄한 부분 가운데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말한 셰익스피어의 얼굴을 보면 밥을 하고 회사를 다니고 일을 처리하는 순간에, 삶과 죽음을 논했던 그와 대비되어 '나'를 돌아보는 순간을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예술이란 건 바로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순간에 박제해 놓은 것들이었다.
나에게도 사치의 순간은 있다. 손으로 빚어 입부분이 삐뚤빼뚤하고 약간 때가 탄 것 같은 빈티지한 내 컵. 손잡이 부분에 금박을 입힌 컵. 컵과 손잡이를 곡선으로 이어 붙인 컵. 바로 아름다운 컵을 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