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바에 갔다. 아까 호기심으로 전화를 해보았던 바다. 놀러 오라고 했다.
어떤 사람이 커튼을 열고 들어와 끊임없이 말을 했다. 태권도 사범이기도 하며 엠씨를 하고 있다는 그는 침묵할 새가 없이 계속해서 말을 했다. 피곤했다. 마술을 할 줄 안다고 해 잠깐 카드를 가지러 내보냈고 그때서야 편했다.
다음엔 24살과 27이 들어왔다. 친구는 평소 버릇답게 단답을 했다.
"이름이 뭐예요"
"봄요"
"어디 살아요?"
"홍대요"
"직업이 뭐예요?"
"사무직요"
라는 일련의 과정으로 지쳤는지 화장실 간다고 나간 그는 들어오지 않았다.
"바꿔주세요"
다음에 서브를 본 사람은 하얀 와이셔츠에 얇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눈꼬리가 처져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안녕하세요"
"(굳은 얼굴로)네"
"일 끝나고 오신 거예요?"
"네"
"무슨 일 하시는데요?"
"기잡니다"
그즈음해서 매일의 손님들에게 같은 것을 질문하고 기분을 살피는 그들도 피곤하며, 귀찮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나는 지독한 권태에 빠져있었다. 매일 눈을 뜨면 대부분 검은색 계열인 옷 중에 하나를 걸쳐 입고, 같은 호선의 전철을 타며, 항상 무표정한 행인들과 얼마만큼의 몸을 부딪혔다.
마감 때면 어김없이 국장의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그런 감정의 배설을 받아내며 하루만 더 하루만 더 꾸역꾸역 다니던 회사에 질릴 대로 질려있었다. 그는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기자면 뭐해요?"
"기사 써요."
"무슨 기사요?"
"여러 가지를 쓰죠"
"직접 현장에 가서 써요? 막 제보도 받고?"
그즈음엔 내가 이런 질문을 스물일곱 번째 받았던가.. 수를 가늠해 보며 나는 술잔을 비웠다. 이 얘기는 그만하고 싶었다. 처음 방문이 아니었다면 그가 말하고 있는 중간이라도 자르고 하고 싶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는 이상형을 물었다. 그는 등치가 있고 연예인의 살짝 느낌만 닮은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까불대는 스타일은 아닌 듯했다.
"적당한 몸에, 지성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요. 행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가 좋겠어요"
그는 이유를 물었다.
"왜요? 행복한 집안에서 사랑받고 자란 게 좋지 않나?"
"아뇨. 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눈길이 가요. 밝은 애들은 쟨 예쁜 강아지 같다는 느낌. 그런 애들은 구김살이 없어요. 사람에게 잘 다가가죠. 백 퍼센트 그렇게 다가간 사람에게 내쳐지지 않고 자신감에 차있고 애교도 넘치죠. 저도 처음에는 그런 친구를 보는 게 신기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요. 친화성은 불편함으로 바뀌고 애교는 부담스러워져요. 자신감은 이기심으로 변질되어 보이고요.
전 어느 정도 결점이 있는 사람이 편합니다. 어느 정도 교류가 있게 되면 이런 측면도 보이게 되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면 이해를 해줄 수가 있거든요 그 사람은."
이 이야기를 할 즈음엔 그는 자꾸 무전기에 대답하며 눈을 돌리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척했다.
그리고 술이 비자 "같은 걸로 갖다 드릴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만 들어있던 생각을 타인에게 내뱉으면 내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은 적어도 듣는 척이라도 해줄 줄 알았다. 난 착각했고 이 아이는 한 달 뒤쯤 오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겠구나.. 오늘 운이 없구나.
라는 생각으로 지불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