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가면 약 5시부터 8시까지 수업이 계속됐다. 그 뒤에는 자습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자습시간이 끝나면 학원차량기사도 퇴근을 하기 때문에 부모님을 불러서 가거나 알아서 가야했다. 대중교통도 끊기는 자정까지 되면 보통 원장님이나 다른 선생님 차를 타고 가는 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을 볼 수 있었다. 중학생때는 자정까지 하는 건 시험기간에 주로 했다.
학원은 낭만이었다. 여중 남중을 다니던 아이들은 학원이 연애의 장과 비슷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삼삼오오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나름의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여유가 없을 뿐더러 그당시 연애를 하는건 왠지 '노는애'들이 하는 거라는 봉건시대주의적 착오에 빠져 있었다. 연애가 차라리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학생이 무슨, 공부나 열심히 해'라는 전형적 가부장제 아버지였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발언을 충실하게 따르는 개였다. 그러면 무슨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나 자신도 나를 가두고 있었다.
한번은 베이지의 떡볶이코트를 입고 머리는 집게로 틀어올려 안에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거울로 봤을때 내가 봐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 날에는 남들에게도 눈에 뜨이는지 어떤 남자애가 걔의 무리와 나, 이렇게 자주 마주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짐을 싸서 나오는데 입구에서 걔가 말을 걸었다.
'저기..'
"네?"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번호좀"
"아.."
당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얼굴은 빨개지고 손은 갈곳을 잃었다. 걘 그렇게 잘생긴건 아니고 순박해 보이는 검은 피부와 몸통이 큰 애였다. 번호를 준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고 노는 애일수도 있다는 의심도 있었다. 험상궂은 인상(지금 생각하면 중학생이 험상궂어봤자 얼마나 그렇겠냐만)이 그러면 안될거 같다는 가정을 확신시키게끔 했다.
학원에는 보은이가 친했는데, 중학교를 같이 다니고 있었고 부모님이 슈퍼를 했다. 보은이는 공부는 못했지만 인정이 많고 용돈을 두둑하게 가지고 있어서 돈이 없는 내가 많이 신세를 진 애였다. 학교를 파하면 학교앞 떡볶이집에 가서 즉석떡볶이를 한냄비 끓여서 얼큰하게 먹고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보은이는 먹는 친구였고, 학원에 가면 보경이가 있었는데 보경이는 나와 거의 투탑을 다투는 학원의 인재였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을 했는데 우린 겉으론 친하지만 속으론 견제하는 사이였다.
보경이는 학원 앞 낡은 아파트에 살았고, 나는 그녀보단 그래도 신식인 아파트에 살았으니 그런걸로도 '내가 조금은 앞선다'는 우월의식이 마음속엔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도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시험기간이 되면 우린 서로가 예민해져
"안녕?"
"응 시험 준비는 잘돼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이런 대화 속에도 '얼마나 많이 했어?' '너보단 많이 했을걸?' 이런 (유치한) 비교를 추측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보경이가 싫으면서 좋았다. 싫은건 '걔가 날 이길수도 있다는 불안감' 이었다. 실제로 성적은 어느날은 보경이가 앞서고 어떤날은 내가 앞서는 날의 반복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게 닥쳐오는건 '이번엔 지기 싫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표면적인 친한 관계였지만 지기싫어서 공부를 더 하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1회독 하고 오답노트를 마련하면, 그녀도 나만큼을 했을 것 같아서 한 번 더 복습하는 형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