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등한 수학 선생님

by 강아

그런 경험들이 많아질수록, 학원 선생에게 더욱 의지하게 됐다. 학원 선생은 과목별 선생들이 여러명 있었다. 즉, 수학선생이 1명뿐이 아니라 여러명 있었다. 국어쌤은 항상 학생들을 볼때마다 '어이구 이뻐라' 하면서 엉덩이를 툭툭 쳐주는 미시 선생님이었는데, 차라리 학교선생의 가식적인 행태보다 이편이 진심인것처럼 보여서 엉덩이를 치이는게 차라리 기분좋게 느껴질때도 있었다. 영어선생님은 자유로운 영혼이라 학원생활을 얼마간 하다가 그만두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사는게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안정적인 회사 생활도 좋지만, 본인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그만둘땐 그만두고 돈이 없어지만 다시 일하는 것도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영어쌤은 수업을 하다가 내가 지적하면 부끄러워했는데, 나 자신은 그렇게 지적할 때마다 선생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에 우쭐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어른이 차라리 더 어른같아 보이기도 했다.


과학샘은 전형적인 여성여성한 선생님이어서 어떤 특징적인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기억에 남는건 어딘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과하거나 어떤 '평균에서 벗어나는' 점들이다. 당시 수학쌤은 여성쌤과 남성쌤이 있었는데 여성쌤은 주로 중학생 수업에 치중해 있었고 남자쌤은 고등부를 겸임했다. 여자쌤이 잘못가르치는 건 아니었는데, 잘 가르치는 남자쌤이 옆에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였다.


남자 수학선생님은 처음에 내가 학원에 들어갔을 땐 없었는데 어느날 면접을 보고 학원에 들어와 있었다. 칠판에 글씨를 "신대흥"이라고 궁서체로 썼다. 당시 그는 29살이었는데, 어른남자를 처음 그때 느꼈다. 그는 한손을 주머니에 꽂고 말했다. "학과는 토목과를 졸업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학생에게 경어체를 쓰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더 마음에 갔다. 토목과가 뭐하는 건지도 몰랐는데 찾아보고 알게 되었다.


사실 그가 마음에 들어왔던 건 월등한 수학강의 때문이었다. 초등학생때까지는 수학을 싫어하는 편에 속했던 내가 수학을 좋아하게 된 것도 선생님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문제를 풀때 막힘이 없었다. 모든 문제들을 미리 예습하고 와서 버벅거리는게 없는 것이 흡족했다. 그런 문제들은 최상위권 학생들 맞춤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수학을 전공했다 하더라도 무방비 상태로 '해당 문제를 푸세요' 했을때 한번에 풀기는 어려운 문제들이었다.


그는 항상 정갈했다. 수업시간에 풀오버니트에 칼각이 잡힌 정장바지를 입는 것도 좋았다. 그가 판서를 할때 팔을 걷어올린 모습은 핏줄을 멍하니 바라보게 만들었다. 가끔 일화들을 말해주기도 했는데 "정장바지 다리는 걸 다리미가 없으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하길래 모른다고 했더니 "500원짜리 동전을 맞닿아 대고 그으면 됩니다"라고 하길래 "오.." 했더니 "군대에서 배웠다" 고 하는 어찌보면 어린 한 남자였다. 그런 어린 사람인데, 그보다 더 어린 중학생이 봤을때는 '성인남성' 인 것이었다.


토목과를 졸업했다는 그는 본인이 토목과를 나왔지만, 토목과는 쓸데없는 학과라고 말했다. "신촌의 대학을 나왔는데 아카라카는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해서 버킷리스트가 '아카라카 가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내모든 기준은 선생님에 맞춰졌다. 그가 연대를 나왔다고 해서 연세대에 가고 싶었다. 그가 볼만하다는 아카라카는 선배 언니에게 표를 어렵사리 구해서 다녀왔다. 축제를 다녀오니 더 가고 싶었다. 그는 결혼했다고 했다. 아이는 없다고 했다. 그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할수 있는것도 아니면서, 같은 집에 살고 있는 그와 그의 와이프를 생각하면 마음이 찌르르 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