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는 데스크톱이 있고 이동할 때는 노트북을 이용한다. 하지만 기기가 있다고 해서 글이 써지는 건 절대 아니다. 오늘도 하루종일 데스크톱을 붙잡고 있었지만 글이 술술 나오진 않았다. 뛰어난 작가는 하루에 10페이지씩은 썼다고 하는데 그만큼의 분량을 못 뽑아내자 불안했다. 그래서 유튜브를 봤더니 머릿속은 완전히 절여져 버렸다.
한 글자만 쓰자.라고 한 게 몇 단락이 완성되었다. 의미도 교훈도 없는 글을 써놓고선 '다른 주제로 써보자' 옮겨갔다. 하지만 다른 주제로 쓴 글이 특정단어로 유입된걸 보니 또 불안해졌다. 지인이 보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여기는 내가 사회생활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들을 토로하듯 쓴 내용이 있어서 그런 걸 보면 정말 곤란해질 것 같다.
하지만 특정단어로 유입된 건 정말 전혀 안면도 모르는 사람이 순전히 궁금해서 들어올 확률이 클 것이다. 그런데도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건 10년 전에 블로그로 나를 찾은 어떤 사람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가 어떻게 나를 찾았는지는 미궁이다. 물어보면 되겠지만 그런 걸 물어보기엔 왠지 쑥스럽다. 남사스럽기도 하다. 타인이 누군가를 구글링 해본다던가 하는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건데, 막상 그가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면 좀 그럴 거 같다. 그도 그런 사실을 말하는 게 꺼려질 것 같기도 하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누군가 '내 블로그 어떻게 알았어?' 하면 '검색해서 알았어'라고 말하는 게 왠지 좀 지질해 보이기도 하고 참. 이건 마치 짝사랑 같잖아?
그래서 쓴 글을 지웠다. 익명의 공간이라 해서 어떤 얘기든 쏟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복병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