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처음 입사하고 나서는 회식이라든지 단체활동을 해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회사문화는 가히 후진적이었다. 기관장에 따라 회사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는데, 술을 좋아하는 CEO가 오자 저녁일정은 항상 본부 혹은 팀이 돌아가면서 접대하게 됐다.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체육대회를 하고 뒤풀이를 한다, 단합을 위해서 한다 등 전체주의 같은 발언이 남발했지만 그런 게 불합리한 거라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억지로 참여해야 하는 줄 알고 참여했다.
그날은 회사 체육대회를 하고 뒤풀이 자리였는데 직원이 과음해 귀가 의사를 밝혔더니 "집에 가려면 맞고 들어가라"는 말을 듣고 뺨을 맞은 후 재차 "귀가하겠다"라고 말했다. 상급자는 이전에도 갑질과 폭언으로 사내에서 유명했으나, 원래 회사에서 미친개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법이다. 이후 하급자는 "앉아"라는 말을 들은 후 세 차례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기관 복무규정 품위유지의 위반으로 징계를 내린 다음에도 상급자는 뻔뻔하게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 상급자는 단체버스 내에서 하급직원에게 폭언을 다시 했지만 당시 다 같이 있던 간부는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급직원이 언론사에 제보하고 나서야 해당 상급자는 해임됐다.
워크숍도 가지 않는다. 친목과 단합을 위해서라는 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3차를 넘어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알 수 없는 채로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려가기 일쑤였고 잠이 들면 다음날도 원치 않는 조식과 일련행사로 이어졌다. 원래 아침을 먹지 않는데 끝까지 먹으라는 강제성과, 직원의 즐거움을 위해 기획됐다지만 시간 때우기 용인 행사들, 술을 강요하지 않는다지만 먹을 때까지 응시하는 것들은 지긋지긋해서 이젠 안 간다. 어릴 때부터 단체활동이 싫었는데 그런 내가 이상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단체활동을 싫어하는 사람’ 임을 이젠 안다.
결혼식도 안 간다. 한국사회의 대를 이어 내려온 가족주의도 누굴 위한 것인가. 부모가 자식에게 '본인이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을 해주고 나서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식에게 바라는 태도도, 의지할 데는 가족뿐이라며 가족을 꾸리기 바라는 웃세 대들도 결국 자기 욕심인 것이다. 밥 한 번 먹은 적 없는 직원이 배포하는 청첩장은 굳이 내가 가지 않아도 될 자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젠 가지 않는다. 처음에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직원의 결혼식에 갔던 것은 그로 인해 그녀가 고마워하며 업무상의 도움을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대했던 일은 이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