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일정이 없는 토요일이었다. 이런 주말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주말마저 풀로 일정을 채워 지내는 게 효율적으로 사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효율적이어서 뭐 할 건데?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가만히 누워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숏폼에 뇌를 절이다 보면 '아 좀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화는 2시 반이었고 인근지역으로 나가려면 50분은 여유롭게 잡아야 했다.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요새 영화값도 비싸서 인터넷으로 예매해서 가는데, 표 갖고 있는 사람한테 사면 반정도는 싸다. 구매문의를 했더니 판매자는 '이건 특별상영영화라 적용이 안되네요'라고 했다. 그냥 현장예매하기로 했다.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는데도 '혹시 늦으면 곤란한데'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영화 시작 후 10분은 광고가 나온다는 걸 감안하면 조금 늦는 건 무방했다. 하지만 그냥 늦기가 싫었다. 시간강박은 지난 삼십 년간 가지게 된 내 성격이다. 늦으면 불안하고, 상대방이 늦는 것도 싫다. 하지만 오늘은 나와의 일정이었다. 심지어 나와의 시간도 늦는 게 싫다. 늦으면 시간계산을 잘못한 내가 싫을 정도로 자신에게 박했다. 조금 본인에게 너그러워지자고 생각하지만 그건 욕심에 가깝다.
영화는 아우슈비츠 영화였고 '참상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궁금해서, 어두운 영화가 보기 싫었는데 봤다. 영화는 아름다운 걸 보여주고 어두움은 은유를 통해 표현했다. 노골적으로 보여줬다면 중간에 나왔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을 하려고 했더라도 그것 나름대로 고민스러웠을 것이다. 비연속적인, 그래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음률이 나올 때마다 옆자리의 중년남성은 휴대폰을 봤다. 화면에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은 빈 화면이나, 단색으로 꽉 채워 소리만 들리게 하는 형식이 인상적이었다.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하니 오래간만에 독립영화관을 꽉 채운 관객이 모인 것 같았다.
매식을 하고 저녁잠을 잤다. 눈뜨니 21시였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주말을 포기할 순 없을 것이다. 오늘도 누구와 같이 가자고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했다. 난 요새 이야기와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