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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속옷을 버렸다

by 강아

속옷을 버리는 주기는? 칫솔을 바꾸는 주기는? 그런 건 따로 없다. 그냥 쓰다가 '낡아 보이네'하면 버린다. 못 사는 가난한 시대도 아닌데 보이지 않는 부분은 덜 신경 쓰게 된다. 속옷은 면팬티였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기본팬티. 고무줄이 늘어나 해져 있었다. 하지만 탄성이 없어진 속옷은 친밀감마저 느껴지게 했다. 오랜 시간 함께한 물건에 대한 애착감이 생기는 건지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언제 구입한 건지 명확한 시점을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일 때 산거 같은데 어림잡아 계산해 봐도 5년은 넘었을 텐데.


하지만 그 팬티만큼 편한 건 없었다. 다른 건 골반이 드러나는 바지를 입을 때 속옷의 탄성으로 인해 스팽스처럼 속옷을 입은 부분이 수축되어 보이고 상대적으로 아닌 부분은 압력을 받지 않아 굴곡이 드러났다. 애착팬티는 적당히 늘어나있어 몸을 흐르듯이 감싸줬던 것이다. 실제로 옷 같은 것들도 입어야 체형이 맞게 변형되는 것처럼 팬티도 그랬다. 다른 점은 옷은 외관상 어느 특정 부분이 늘어나지 않았단 것이고 속옷은 그렇다는 점이었다. 그 부분은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었다.


늘어난 부분은 점차 구멍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겉 부분에는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속옷의 운명은 지탱되었다. 덧댐이 있는 안쪽의 구멍은 겉감으로 인해 외관상으론 '적당히 늘어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변형과정을 흐름에 따라 찬찬히 관찰해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는 미묘하게 벌어져서 이제는 팬티가 힘을 잃고 흐물흐물거렸다. 그러다 어느 날은 생각했다. "이젠 정말 버려야 할 때가 왔군." 미련 없이 속옷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쾌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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