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모임을 나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늘 어머니 일정이 있어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여태껏 신청 안 하고 있었다. 사실 일정이 겹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냥 모임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할 말도 없으면서 꾸역꾸역 앉아있을 내가 보였다. 하지만 더 두려운 건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이었다.
이 모임뿐만 아니라 다른 플랫폼의 모임도 가입만 해놓았다. 채널도 여러 가지였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끊임없는 안녕하세요, 라든지 의미 없는 대화들은 가입한 지 하루 만에 탈퇴하게 만들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익명성에 기반되었기도 하다. 한 번이라도 모임을 나가 얼굴을 비췄다면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일회성 모임을 다시 탈퇴하고 나서 갈 곳은 기존에 가던 모임뿐이었다.
가면 누가 나올지 눈에 뻔히 보였다. 단톡방에서도 탈퇴할 것을 요청해 놨어서, 가려면 특정인에게 의사를 타진하고 가야 했다. 모임 2시간 전에 가겠다고 하자 그는 1시간 후에 답장을 보내왔다. 아마 그동안 모임원들에게 의사를 물었을 것이다. 그런 번잡하고 소모적인 일들이 싫어서 단톡방을 나온 것이었다. 굳이 알아도 되지 않은 이야기, 내가 없어도 유지되는 것들은 삶을 더 간소화하게끔 만들었다. 그날의 모임구성원이 누군가에 따라 참석여부를 가리는듯한 태도 같은 것도 괜히 오해받기 싫어 단톡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무음으로 해놓으면 되지 않냐 하지만 결국은 다 보게 되는 내용들이 피곤했다.
모임 구성원인 그가 오라고 문자를 보내던 때는 나는 막 입었던 셔츠 단추를 풀고 있었다. 다시 꿰어 입고 모임을 향해 출발했다. 여름 날씨였다. 주차장은 빠져나가려는 차들과 들어가려는 차들로 복잡했다. 늦었지만, 모임구성원이 늦게 확인해서 지각해도 된다고 말했기 때문에 여유로웠다. 주차를 마치고 들어가자 그전까지와는 다르게 모든 모임구성원이 와 있었고 내가 오게 됨으로써 자리가 하나 모자랐다. 한 명이 그의 자리에 앉으라고 했지만 상석에 의자를 갖다 앉았다. 책도 읽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외로웠다. 그런 시기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와서 반찬을 가져다주곤 했지만 그런 걸로 해결되지 않는 외로움이었다. 물론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해소될 성격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사람 속에 파묻혀있다는 느낌이 필요했다. 그 느낌 없이 월요일을 맞이해야 한다는 무력감은 날 항상 황폐하게 했다.
어김없이 대화내용은 쓸데없었다. 궁금한 내용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는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자주 동공에 힘을 빼고 허공을 응시하거나 딴생각을 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있기 싫어 나온 모임이었는데 나는 자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하고 싶었다. 모임이 파하자마자 쉑쉑을 먹으러 갔다. '그'와 함께 먹었던 쉑쉑이 먹고 싶은 거 보면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감자튀김을 밀크셰이크에 찍어먹으니 그의 눈빛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는 내 옆에 없다. 일상의 많은 부분 감내하고 있던 허전함이 툭 밀려들어왔다. 어김없이 일요일은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