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동등이 나갔다. 중고차를 구매해서 별다른 문제는 없지만 자주 나가는 브레이크등이 이따금 불편을 주었다. 처음 중고차를 구매한 단지에선 1년간은 AS를 해준다고 했다. 그곳은 약 20km 떨어져 있는 옆도시였다. 타이어, 브레이크패드 교체나 작은 사고로 휀더가 나갔을 때 등 친절히 대해주던 사장은 제동등이 나간 것에 대해서도 전화하자 약간 짜증을 냈다. '그런 건 근처 카센터에서도 할 수 있어요'
처음 차를 구매한 입장에서는 어떤 카센터로 가야 할지도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차를 잘 모르면 눈퉁이 맞는다던데'라는 세간의 말이 몇 번이 곤 포털사이트를 검색하고 비교하게 만들었다. 처음 간 곳은 가격이 싸다는 공임나라였다. 사장은 '잠깐만 기다리세요'하고서 순식간에 등을 바꿔주곤 5천 원을 받았다.
두 번째로 간 곳은 당시 시골 동네에 있던 카센터였다. 비교적 신식인 간판과 깔끔한 외관이 찾게 만들었다. 그 또한 별로 어렵지 않게 등을 갈아주며 몇천 원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정착할 카센터는 찾기 어려웠다. 모든 게 적당할 때 해당 장소를 찾기도 하지만 그 장소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나는 찾아갔다. 가령 카페에 갈 때 분위기나 맛도 중요하지만 내가 가장 큰 가치를 두는 건 직원이 고객의 눈을 마주치는가였다. 함께 준 포스트잇에 스마일과 Happy Day가 쓰여있을 때 자주 찾게 되겠구나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카센터를 전전하던 날, 한 카센터의 손님이 너무 많아 체념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길을 지나다니다 봤던 허름한 카센터가 생각이 났다. 주말에도 여는 거 같았지만 그다지 손님이 많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구간의 조용한, 어느 곳에 나 있을 거 같은 카센터였다. 그날은 타이어 펑크가 났다. 예전에도 겪어본 적이 있어 처음보다는 당황하지 않았다. 타이어를 전체 갈지 않고 지렁이만 박으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장님은 인사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봤다.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한 타이어의 공기압이 현저히 차이가 나서요"
그는 허름한 플라스틱 뿌리개를 가져와서 비누거품을 타이어를 굴려가며 뿌렸다.
"여기네요"
하더니 그는 쇠지렁이를 박았다.
"그래도 안심이 안 돼서요. 혹시 중고 타이어를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
라고 했더니 그는 다음날 연락 주겠다고 했다.
그는 다음날 연락을 주었다. 하지만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한동안 타고 다니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하지만 다음에 다시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라는 말에 그는 쿨하게 "그러세요"라고 했다. 세상의 변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남자 같았다. 어쩌면 그런 걸 너무 많이 겪어서 어떠한 일에도 무던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한동안은 제동등이 나가지 않았다. 잦은 재발이 멎어질 때쯤 어김없이 느낌표 모양이 경고등이 떴다. 이젠 어떤 카센터로 찾아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퇴근하고 나서 "oo카센터"라는 낡은 센터를 찾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안녕하십니까"라고 들어가며 웃으며 인사할까 했지만 그럼 위화감이 느껴질까 봐 표정을 없애고 인사하니 사장의 와이프인 듯한 사람과 직원은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다. 사장님은 여전히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 인사하지 않음이 나로 하여금 먼저 인사하게끔 만드는 태도는 여전했다.
"제동등이 나가서요"
그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수리 중이던 차에서 드라이버를 찾아가지고 와 "밟아보세요"라고 했다. 말수가 적고 해야 할 말만 하는 사람인 듯했다. 브레이크를 몇 번 밟으니 그는 전구를 떼고 느릿느릿 새 전구를 가져와서 끼웠다. 이번에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 손으로 까딱까딱했다. 브레이크를 밟으라는 말이었다. 몇 번 밟으니 그가 됐다고 했다. 그즈음엔 유려한 g80이 센터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카드를 들고 뒤따라갔다.
"여기.."
"됐어요~ 가세유"
어쩌면 나처럼 말이 없고 모든 일에 초연한 듯한 사람이어서 동질감이 갔던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센터만 찾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는 돈도 받지 않았다. 세상 많은 일들이 다 '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려준 가게였다. 내가 예전에 왔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대도 괜찮다. 다음에 또 이 센터로 올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