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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Aug 03. 2024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

무두절을 맞아

상사가 휴가 냈다. 그가 없는 것만으로도 출근의 부담이 덜했다. 그는 부하직원의 모니터를 응시하거나 별안간 예민해져서 감정적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런 감정의 표출을 회사에서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감시한다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 아니다. 나도 화장실을 가려면 다른 직원들의 모니터를 지나치지만, 그럴 때면 흐린 눈을 하고 지나가려고 노력한다. 메신저 창은 보이지만 내용을 읽지는 않는 형태다. 하지만 상사는 얼굴을 대고 그 내용을 읽는 게 마치 아우슈비츠 같다.


이미 다른 직원들도 그런 상사의 모습에 학을 뗀 건지, 출장이다 교육이다 자리에 없기 바빴다. 나도 마음껏 그 시간을 누렸다. 점심시간에는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던 책을 빌려왔다. 심리적 영향인지 마음도 여유로워하고 싶던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대개 그런 것은 집안 인테리어 구조를 바꾸거나 글을 쓴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주식에 대한 열정도 피어올랐다. 바보 같게도 단타를 치다 물린 종목이 있어 손절을 했다. 사고 싶은 종목은 많았는데 돈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자동차를 사고 테이블을 사는 등 과소비를 해서 긴축재정에 들어가야 했다.


물건을 사는 것들도 내면의 채워지지 않은 것들로 인한 것이다. 시간이 많아지니 지나간 사람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러던 중 상위에선 전화가 와서 자료를 건네주고 나니 다시금 생각으로 돌아왔다. 대개 그런 것들은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연락을 하지 않는 환에 대한 원망이었다. 막상 그에게 연락이 왔을 때는 '다른 애가 위로해 줘서 괜찮아'라는 말로 차갑게 응답했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락을 지속해 오기 바랐던 것이었다. 나는 애정관계에 있어서는 더없이 유치해지고 아이 같아졌다.


하지만 오라는 환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고 애꿎은 지난 사람은 지질하게 음성사서함을 남겼다. '한번 보자'라는 말로 그는 다시금 내 감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보고 싶었단 말로 날 미혹하게 할 것이었다. 그를 만나 오랜만의 반가움이 없었다곤 말 못 한다. 하지만 이내 가슴이 답답해지고 결코 딥한 대화로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커졌다. '그럴 거면 만나지 말걸'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빈도로 간헐적인 연락을 해왔고, 나 또한 그에게 얻을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만났었다. 처음 시작은 욕심으로 시작한 관계였고 그는 잊을 때쯤 그런 욕심을 자극해 날 움직이려 했다.


후배와 함께한 점심식사 장소로 가는 길은 숨이 막힐 듯 더웠다. 적어도 동료랑 대화하는 순간만은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요가를 하는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벌레 같은 게 없어진다는 명징함만으로 가능하면 매일 요가를 하고 싶었다. 가정을 이루지 않는 게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은 마음속의 말만 맴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가정을 만들지 않는 거예요. 따로 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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