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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Aug 26. 2024

가족은 망상을 끊어줘

서로의 시간을 보장해 주는 동거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과는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어릴 때 해온 여행이라곤 캠핑이라고 가서 하루종일 텐트를 치고 일을 하고 돌로 배긴 등처럼 안 좋은 기억들이라서, 성인이 되어 남들이 효도여행을 한다고 해도 남일로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회사에서 듣는 남들의 효도여행에 자극받았는지 우리도 가자고 했고, 가게 된 곳은 공주였다. 원래는 하얏트를 예약했다가, 땡볕이면 근처 바닷가를 갔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오고 운전하는 것들이 버거울 것 같아서 펜션으로 변경했다. 가격은 거의 1/3 이하로 줄어들었고 동선도 가족이 내 지역으로 오면 픽업해서 가면 됐기 때문에 부담이 덜했다.


일정도 주말과 붙여 써서 토일을 쉬고 평일에 가는 것이라 괜찮았다. 만약 주말에 갔으면 사람도 많았을뿐더러 월요병이 도질 것이었다. 월요일은 무척 더웠다. 거의 체온에 달하는 온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은 흘렀고 역시 바리바리 싸 온 반찬을 먼저 자취집에 넣고 식사를 하러 출발했다.


지역 맘카페에서 본 식당은 간이 적절하고 감칠맛이 나서 가족들 모두 맛있게 먹었고 숙소로 출발했다. 관광지였지만 평일의 축복으로 사람이 적었고 근처 식자재마트에서 고기를 사서 도착하니 체크인 시간이 딱 맞는 것도 좋았다. 윤에게선 날 보고 이청아를 닮았다며 사진이 왔고, 그는 최근 달리길 시작했다며 같이 뛰자고 했다. 하지만 역시 그가 있는 둔산으로 가서 엑스포까지 뛰자는 이야기였다. 가겠다고 했지만 그는 언제까지 날 오라고 할까 이제 거의 체념조로 바라보고 있다. 가뜩이나 좁은 인간관계 그마저 없어질까 봐 다 맞춰주는 나도 버겁고 한편으론 그가 떠나도 뭐 어쩔까 싶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 또한 그렇게 될 사람인데 억지로 잡아두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서로가 연인이 생기면 같이 손을 잡고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관계. 청첩을 받으면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축의만 전달할 관계일 것인데 이런 걸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서 장을 본다는 핑계로 긴 카톡텀을 갖다 어영부영 종료했다.


방에서 어머니는 굳이 마늘을 가지고 와서 까기 시작했는데, 말로는 날 주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휴가 와서까지 일하는 그네의 모습이 슬퍼지려는 찰나, 가족이 다 붙어서 까니까 금세 완료되고 계곡에 가서 쉬기로 했다. 하지만 곧 비가 오기 시작했고 편의점에서 얼음을 사가지고 오니 비는 억수로 내렸다. 오랜만에 맞는 비였다.


바비큐를 처음 구워보는 막내는 곧 토치 사용을 했고 오랫동안 불을 붙여 고기가 익기 시작했다. 많을 거라 생각했던 1kg가 넘는 고기는 수월하게 먹을 수 있었고 펜션 처음 들어오며 원룸크기라 깜짝 놀랐다고 하며 웃기 바빴지만 본가에 없는 에어컨이 있어 그럴 거면 에어컨을 사주겠다고 말했지만 역시 거절당할 뿐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간 카페는 문이 닫혀있었고 어머니는 난생처음 인생 네 컷을 찍었다. 돌아와선 각자 씻고 잠들었는데 사실 10시에 누웠지만 평소 12시에 자는 나는 계속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좁은 방에서 가족이 깰까 봐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잠도 쉬이 들지 않는 순간은 잠깐 자취집에 갔다 올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이젠 혼자가 익숙해서 누군가 함께 자는 것도 불편해지고 만 것이다.


중간에 깨니 또 잠들기가 힘들었다. 그리 좋지 못한 수면컨디션으로 깨니 아침이었고, 어영부영 식사를 하고 계곡에 다녀왔다. 다들 비몽사몽이어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들어간 물은 차가웠고 아무 생각 없이 물장구를 치니 무념무상일 뿐이었다. 가족을 터미널로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드디어 혼자다'라는 해방감이 왔지만 집에 오니 역시나 핸드폰 삼매경일 뿐이었다. 볼 것도 없는데 계속 바라보는 화면은 곧 머리가 아프게 만들었다. 유튜버는 직장을 그만두고 섬으로 이주해 자기가 하고 싶은 쇼룸을 만들어 서핑을 하고 1대 1 개인필라테스를 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삶은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 일정이 더욱 비탄에 빠지게 만들었다. 결국 음악을 듣다가 요가를 갔다.


요가는 평소 하던 프로그램과 다른 프로그램을 해서 땀이 많이 나며 몸이 개운해졌다.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은 채 돌아와 영어공부를 했다.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지만 그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걸까? 퇴사를 하고 싶은 것에 대안으로서가 아닐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뭘까? 좋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애와 결혼한 애 때문에 배 아파했지만, 그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걸까? 결국 부유한 배우자를 통해 편하게 살고 싶은 게 내 마음인가? 하지만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은 하고 싶지 않으면서. 서킷브레이크가 걸렸을 때 추매하지 못한 나에 대한 비난은 익숙할 뿐이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느낀 건 이런 생각의 꼬리물음을 할 무렵에 그들이 일상적인 언어로 생각의 흐름을 끊어주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그들로 인해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게 고마우면서도 아쉬웠다. 결국 누군갈 만나도 저녁시간 중 일부는 나만을 위해 써야 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나다. 아이를 낳아도 누가 키워주는 게 아니라면, 일단 동거인이 있으며 서로의 시간이 보장될 사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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