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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Aug 21. 2024

사내 부조리극

회사생활 20년 더 겪어야 한단건 소화가 안되게 만든다

내가 다니는 기관은 아직까지 임원들 밥 챙기는 문화가 남아있다. 만약 안하무인 st 임원이라면 그까짓 식사 따위 쌩깠겠지만 승진시기기도 했고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이라서 같이 식사하러 갔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상사의 기준은 일이 아니고 인간성이다. (집행기관이라 돈을 더 벌어오는걸로 일 잘하는걸 판단할수 없기도 하고.) 가스라이팅 하는 상사에게 다른 직원들이 그의 비위를 맞출 때 나는 나의 길을 갔다. 그 상사와 평생을 같이 일할 것도 아니고 그 사람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건 나 자신에게 비겁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사는 사람을 평가하고 우열을 가리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인간적인 상사가 있는데 그런 건 다 드러나게 되어있다.


아무튼 식사를 하러 가는데 평소에 누구에게 부탁하기도 싫고 부탁받기도 싫어서 혼자 이동하려는 찰나였다. 하지만 상사는 '혼자가게? (직원도) 같이 데려가~'라고 말했다. 직원은 이동할 때 은근슬쩍 '안 가세요?'라고 물었고 '가요'라고 말했다. 굼뜨게 움직이는 그녀에게 '제 차 타고 가요'라고 했지만 본인 차를 이용하는 횟수보다 내 차를 이용하는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걸 인지했고 그러려니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평소에 말하는 족족 트집 잡기 좋아하는 상사는 임원에게 한마디도 못했다.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데 본인은 담배를 피운다며 나보고 모시고 가라는데 한 직원은 그 잠깐 임원을 덜 걷게 하려고 차를 옮기고 있었고 다른 직원은 주차자리를 알아본다고 그를 뒤따라갔으며 나머지 여직원은 둘이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결국 임원과 나 둘이 독대하다 휴가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딜 다녀왔냐고 해서 부산에 다녀왔다고 했다. 누구랑 이냐 묻기에 혼자 다녀왔다고 했더니 그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지 혼자인 건 괜찮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므로 잃게 되는 시간이 내겐 크리티컬 하고 자식에게 투자하느라 10년 된 중고차를 끌고 다니기도 싫다.


결국 주차하고 온사람, 담배 피우고 온사람, 담소 나누다 온 사람 모두가 모여서 이야기하다 차 이야기가 나와서 차를 바꿨다고 했더니 '3년마다 바꾸는 거야?'라고 웃었고 '예'라고 했지만 아직까진 내가 원하는 게 우선이다. 아이가 생긴다면 사고 싶은 건 계속 생기는데 재정을 졸라매야 한다는 건 내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옆집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도 싫다.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하다 왔고 누구 하나 엄청 싫어 죽겠다 이런 것까진 아닌데 그냥 요새 주어진 상황이 좀 짜증이 난다.




사실 이번주 월요일부터 스트레스였다. 각 사업별 담당이 있는데 한 직원이 바쁘다고 보스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보스는 '00'라고 사무실에서 날 불렀다. 직급 빼고 이름으로 부르는 건 그의 습관이다. '또 왜 저래'라고 자리로 가니 '시스템 등급제 이거 해야 해?'라고 묻는다.


나는 의견을 묻는 줄 알고 '해야죠'라고 말하니 그가 말했다. '그럼 이거 네가 해'

아니 갑자기 사람을 불러서 일을 줘서 왜냐고 물으니 '얘가 너무 바쁘대'라고 하는 것이었다.


부서는 업무분장이 되어있고 각 사업마다 바쁜 시기가 있고 바쁘지 않은 시기가 있다. 나는 연초에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고 이제 좀 한가해질 찰나였고, 내가 바빴던 연초에 그녀는 바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좀 느슨해진다 싶었는지 뜬금없이 일을 주는데 다른 직원들은 출장이다 뭐다 외부에 있었다. 공연히 사무실에 있는데 일을 받은 셈이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연초에도 이월사업으로 넘어온 정산작업을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마무리를 지은게 8월인데, 또 업무를 떠넘기는 것이었다. 정말 돌아버리는 것 같았다. 분명히 '그럼 자료 현행화해서 주세요'라고 말하니 담당자는 몇 년 전 기안 내용과 참고자료를 압축파일로 건네주었다.


'이거 제가 해야 돼요?' 웃으면서 물으니 그녀가 말했다.

'팀장님이 콕 집어 말하는데 어떡해요. 팀장님께 말씀해 보세요'


그동안 불합리한 업무분장 때마다 소리 지르며 디펜스 했지만, 이날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소리 지를 힘도 없어서 체념하듯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말 이럴 때마다 '아 정말 그만두고 싶다'라는 이제 너무 많이 반복한 그 언어는 다시금 뇌리 속에 맴돌지만, 그만두고 나서 대안이 불명확하단게 문제다. 몇 년간 승진누락이 이번에는 될 수 있을까. 막상 된다 해도 이런 부조리를 20년 더 겪어야 한단건 소화가 안되게 만든다. 부안에 여행 갔을 때 누구는 아버지가 빵집을 건물로 차려줘서 잘 먹고 잘살던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항상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나도 싫다.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도 아니면서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일을 떠넘기는 보스도, 직원들도 다 싫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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