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아 Sep 01. 2024

미루기 대마왕

기한이 정해진 일이 있다. 계속 써야 하는데 생각하면서 하지 않는다. 재즈를 틀어놓는다. 백자료를 다운로드하여 놨지만 휴먼명조체를 보자마자 마음이 답답해진다. 일단 계피차를 한잔 내려오고 기사 몇 개 좀 본다. 어떤 생산적인 것도 하지 않는 채 그저 예전에 쓴 글을 보거나 멍하니 음악을 듣다가 한 시간이 지났다. 주말마저 쉬지 못하고 수행계획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게 왠지 아쉽게 느껴진다.


부담감만 느끼다 저녁은 먹어야 하니 짜장면을 배달시켰다. 빨래통이 다 찼길래 세탁도 돌리고 밀린 설거지도 하고 나니 어느새 밥이 와 있었다. 소리에 민감해 요청사항에 '벨 X노크 X'라고 해놓았으면서 빨래 돌리는 소리에 정신이 팔린 탓이다. 리뷰이벤트를 신청했으나 서비스는 없어서 그냥 먹고 리뷰는 안 썼다. 과도한 플라스틱에 죄책감을 잠시 느끼지만 자주 배달시킨 끝에 그마저도 무뎌지는 중이다. 탕수육은 적당히 식어 눅눅해져 있었고 짜장도 평이했다. 배달용기에 들어있단 탕수육 소스를 물로 씻어내고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고 나니 졸렸다.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지만 식곤증이 몰려왔다. 삼십 분가량을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여전히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요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20분 전이어서 지금 자면 시작시간에 깨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알람을 맞춰놓으면 되지만 알람소리에 깨어나는 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것이다. 소파에 누워 잠깐만 누워야지 단잠에서 깨어나니 어느새 요가수업 시작 후 15분이 되어 있었다. 서둘러 가면 30분은 할 수 있었으나 막 자다 깨 멍한 머리로 몸을 이리 굽히고 펼치는 동작들을 하기엔 무리처럼 느껴졌다. 결국 의미 없는 영상을 몇 개 보니 21시였고 어느새 요가 다음타임이 되어 있었다. 1차와 2차로 나뉜 수업은 1차에 참여 못하면 2차에 참여할 수 있단 생각이 갑자기 났고 휘적휘적 걸어 GX에 도착했다. 예정시작시간보다 5분이 지나 있었지만 사람들은 '애가 3명이야?' '여긴 4명이야'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누군가와 대화는 나누지 않고 눈인사만 나누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자 운동은 시작했다.


아쉬탕가 요가는 고관절을 풀고 골반을 여는 고난도 동작으로 이어져 있었고 허벅지를 하나를 굽히고 하나는 펴서 근육을 늘리며 다리힘으로 버티는 동작은 땀이 똑똑 떨어지게 했다. 동작을 할 때는 생각이 안 났지만 모든 자세를 끝나고 매트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휴식시간에는 어김없이 잡생각이 밀려왔다. 해야 하는 것과 일요일 일정과 오늘 상한가에 올라타지 못한 것들이 뒤죽박죽 되었고 '손끝을 움직여서 의식을 깨우세요'라는 강사의 말에는 이미 과도한 생각으로 뒤덮인 이후였다.


집에 와서 또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여전히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내일 해야지 하고 잠들겠지만 내일도 이렇게 미룰 건데. 하지만 마무리를 해야 한다. 아 하기 싫다.  

매거진의 이전글 힘은 부정적 상황에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