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으러 갔는데 옆 테이블에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앉았다. 그들은 커플은 아닌 듯했고 직장동료인 것 같았다. 남자는 단백질 보충을 위해 닭가슴살을 싸와서 여자에게 '나눠줄까?'물었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여자는 여자 친구 있는 남자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돌려 (그 남자에게) 이야기도 해봤지만 잘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맞은편남자가 말했다.
'그럼 그 남자에게 딱 정리하고 오라고 해야지'
그러자 여자는 말했다.
'알지만, 그게 막상 잘 안돼'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히 'no'라는 게 보이지만, 당사자의 입장이 되면 일말의 가능성을 품고 그가 여자 친구를 버리고 와주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학교 동기를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내가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연락을 하면 군말 없이 나오는 그를 보고 그가 날 마음에 둬서 나오는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를 만나면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 줬다. 그윽한 눈길, 도로에서 보호하기 위한 가벼운 어깨 감싸기, 바라보는 자리가 아닌 나란히 앉은자리에서 맞닿은 옷자락, 헤어지는 순간이 아쉬워 미처 정리하지 못하는 테이블 같은 건 그가 조금만 더 하면 내가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는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 번만 내 지역으로 와주면 안 돼?'라고 물었을 때 그의 '오지 않는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거의 6개월이 되어서야 기정사실로 인정하게 됐다. 그는 항상 그랬다. 내가 원할 땐 응답했지만 그가 날 먼저 원하진 않았다. 나의 치기 어린 행동이 그의 그녀에게 미안한 것이란 건 처음엔 모른 척했다. 그때는 내 감정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를 만났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게 되면 슬퍼할 걸 알아서, 날 만나기 전 했던 연락과 통화기록을 다 지웠을 그를 생각하면 그의 이중성에 화가 났다. 그를 사랑해서 (그와 내가 잘 되지 않아도) 그가 행복하면 됐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얼마나 위선이었을까. 다 상황 때문이었다고 - 처음에 그가 고백했을 때 (내가) 거절한 '타이밍' 때문이었다고, 그가 정신병이 있는 여자를 만나서였다고, 그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였다고 - 생각한 것들은 얼마나 주관적인 것이며 난 마치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데우스엑스마키나를 기대하고 있던 게 아닌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