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는 집의 객관적 조건은 내겐 차고 넘친다. 집은 천변을 끼고 있어 런세권이고, 거실에는 피아노를 둬서 치고 싶을 때 언제든 친다. 방도 여러 개라 작업실을 따로 둘 정도로 공간 활용도도 좋다. 고기를 구워도 환기 시스템을 돌리면 냄새를 금방 뺄 수 있고 주방도 넓어서 맘만 먹으면 근사한 요리를 할 수도 있다. 욕조가 있어 반신욕을 할 수 있고 아침에 출근하기 바쁠 때 홈시스템을 누르면 문 앞을 나서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집을 싫어하는 건 청소 때문이다. 어쨌든 집에서 생활을 하면 사람의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움직이기만 해도 떨어지는 머리카락은 한 시간이 지나면 거슬리게 보인다. 그럼 돌돌이를 돌리고 자리에 앉아서 뭘 하다 보면 출출해서 먹는데 식재료를 꺼내다 냉장고의 흘러나온 국물을 닦다가 냉장고를 닦는다. 먹고 난 설거지를 놔두고 보면 그게 휴지통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 보이고 그럼 또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면 주방의 후드 기름때가 보여서 또 그걸 닦는다. 그러다 세탁기의 쌓인 빨래가 보여 빨래를 돌린다. 빨래를 돌리면 널어야 한다.
말라있는 수건을 욕실에 넣으면 화장실의 물때가 보인다. 그걸 청소하고 나면 음식물 쓰레기가 보이고 그걸 버리려다 보니 분리수거도 어느새 쌓였다. 버리고 오면 또 책을 읽거나 하다가 먼지를 닦는다. 이처럼 집에 있으면 역설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난 집이 싫다. 차라리 외부 공간에 있으면 떨어진 머리카락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주변의 환경을 신경 안 쓰게 되는데 꼭 집에 있으면 그렇다. 다 하고 쉬면 안 되냐고? 어쨌든 다 하면 또 머리카락은 떨어진다. 그럼 나는 또 돌돌이를 돌리고 이건 마치 햄스터가 물레를 끊임없이 돌리는 것처럼 끝이 없는 것이다.
누가 청소를 대신해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은 마치 안 먹어도 배불렀으면 좋겠네랑 비슷하려나. 그래서 호텔이 좋다. 내가 안 치워도 되니까. (그래도 체크아웃 땐 처음이랑 똑같이 하고 나오는 것도 강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