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와 불만으로 시달릴 때는 봉사를 하러 간다. 다만 사무정리나 안내 같은 업무가 아닌 당사자와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일을 고르는 편이다. 이번에 가게 된 곳은 재활학교였다. 막상 당일이 되자 대전으로 가는 길은 출근시간과 겹쳐 정체가 심각했다.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할 무렵에는 이미 한적한 도로에 들어서 외진 곳으로 다다르고 있었다. 매번 다니는 길이 아닌 외곽의 비포장도로를 통해 가니 학교가 보였다.
주차를 하러 가는데 충격적 이게도 주차 안내원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쇼핑몰이나 어느 관공서를 가도 볼 수 있는 직업적 미소가 아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한 미소였다. 그 표정은 너무나 거룩해서 신이 사람의 얼굴을 할 수 있다면 그런 모습이었겠거니 짐작하게 했다. 그의 외양은 보잘것없었으나 그의 무엇이든 다 수용하겠다는 겸허를 보게 되자 나도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교에 들어서자 더 가관이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나를 처음 봄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띠고 목례를 해 주었다. 직장에서는 인원이 많아 누구인지 다 알지도 못해서 지나가면 그저 타인으로 어떤 알은체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가기 마련이었는데 여기서의 그런 인사는 생경할 정도로 모든 이가 그런 민낯이었다. 당일 봉사를 안내해 주는 선생님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 듯한 특수교사였는데, 그녀 또한 외양은 차가운 모습이었을지언정 그녀가 짓는 태도는 그 나이대에서 볼 수 없는 것이라 신기하기만 했다.
그녀는 당일 맡을 학급은 중3학급이라고 말하며 위층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교실로 올라갔을 땐 아이들이 모두 휠체어에 차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쭈뼛하고 있으니 담임선생님이 학생용 책걸상을 휠체어 옆에 마련해 주었다. 첫째 시간은 국어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들으면서 간단한 교구를 활용하는 수업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울음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을 참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는 늦게 도착했는데, 치료를 받고 등교하기 때문이었고 그녀의 포효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움으로서 등교함을 알 수 있었다.
원이가 왔을 때 그녀는 손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어 수학시간에 나무블록을 쌓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나는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 손에 나무조각을 쥐여주었지만 한 층을 쌓고 다음층을 올리는 것은 보호자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봤을 때 나는 끝없이 머리가 멍해지면서도 그런 자신을 추스르며 선생님의 수업을 따라가야 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오라고 한 이유는, 내가 먼저 먹어야 아이들을 먹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먹는 것도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할 수 없음에도 그들이 알아서 먹을 거라 생각한 내 착각이었다. 타인이 되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이 겪는 아픔이나 경험을 절대 느낄 수 없다. 밥을 떠먹지 못해 급식판에 놓인 쌀밥에 반찬을 가위로 잘게 잘라 올려주는데, 잘 받아먹는 게 신기할 정도로 밥을 잘 먹었다. 내가 먹여주는 게 아닌 본인이 먹고 싶은 반찬이 있는지 나중에는 내 손을 피하고 그녀가 수저를 쥐고 반찬을 향해 손을 뻗는데, 그마저 반찬이 중간에 떨어져서 다시 손을 옮겨 그걸 입으로 가져가는 일련의 과정은 슬프게까지 느껴졌다.
식사가 끝나고 놀란 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신변을 처리해 주는 선생님이 반마다 계셨는데, 그녀의 역할은 아이들의 대소변을 처리해 주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런 도움이 필요할 것인데, 그렇게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 아이들을 케어해 주는 그녀가 어떤 이 사회의 고위공직자나 위에 있는 사람보다 위대해 보였다. 그녀에게 '대단한 일 하시네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아니에요'라고 말했지만 그런 표정조차 너무 깨끗함을 품고 있어 나는 감히 그 정도까지 되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녀는 '휠체어 밀어본 적 있어요?'라고 내게 물었다. '아 조금 밀어본 적 있긴 한데'라고 말하자 휠체어를 타고 도서관에 다녀오라고 했다. 실제로 끌어보자 생각보다 무거운 중량이어서 내 몸이 뒤로 밀리는 지경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기존의 소리 나는 책을 반납하고 다른 책을 빌려왔는데 그 책을 같이 보는 게 내 일이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속으로 욕을 하고 있던 내 모습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상황에 처하자 정반대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창밖으로 비치는 햇빛은 찬란하기까지 했고 나는 '깔깔깔'아이웃음소리가 들리는 교구를 누르며 아이가 그냥 웃는 걸 바라봤다.
봉사를 끝나고 집에 오면서 기존의 나와 다른 나가 된 것만 같았다. 원이의 부모님은 그녀를 위해 학교에 천만 원을 쾌척했다고 했다. 아이를 위해 큰돈을 기부한 그 부모님의 마음과, 그들은 어찌 태어나게 된 것이며 그게 자기 의지가 아닐 것임도 꼬리를 물고 상념이 이어졌다. 그들은 그들의 처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며 나는 얼마나 복에 겨워있던 것인가 집에 오면서 자꾸만 차오르려는 마음을 꾹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