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강사와 임금체불

by 강아

아침에 일어나니 무슨 요일인지도 헷갈렸다. 어제는 칼럼을 읽다 잤기 때문에 일어나서는 글을 쓰고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어나서 도서관에 갔는데 많은 책 속에 파묻혀있단 게 행복하게 느껴졌다. 리베카솔닛 책을 읽다가 공감하다가 방송작가 책을 읽었는데, 내가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고 초과근무를 해야 하고 온갖 잡일을 맡아하고 막내야 라고 불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저자는 기자일을 하다가 방송작가가 된 케이스였는데 내가 사회초년생 때 들어갔던 신문사에서 1년 동안 견딜 수 있었다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열악한 근무환경을 읽다 보니 지나왔던 온갖 알바, 학원 강사 또는 서빙 또는 약국사무직 같은 것들로부터 왔던 임금체불, 최저시급, 그것 중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것도 없어 늘 몇 달 일하고 그만두었던 과거가 생각났다.


그중 학원강사 생활은 이랬다. 그때는 3학년이었는데, 그래봤자 22살의 어린 나이였다. 사장은 부부였는데 싼값에 사람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당시 150만 원의 월급으로 영어를 담당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그다지 성적이 높지 않은 애들을 어디라도 보내야 하니 부모가 보내는 보습학원이었다. 원장은 인상이 무척 좋았는데 그래서 일하기 편하겠단 생각이기도 했다.


학원은 종로엠학원이었다. 원장부부는 삶이 그다지 넉넉하진 않아 보였다. 식사 시간이 되면 그들은 안성탕면을 끓여 먹었고 강사는 외부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오라고 하는 식이었다. 학원 아래층에 있던 짜장면 2900원짜리를 사 먹으면서 바라본 창문엔 항상 서리가 어려있었다. 수증기로 뿌연 실내에서 우적우적 허기를 지우기 위해 짜장면을 씹어먹고 위층에 올라와서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강사라는 직업을 택했던 것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가르치고 싶었던 과목은 수학이었으나 이미 학원엔 수 2가 가능한 선생님이 있어 수학은 뽑지 않았고 수요가 있는 과목이 영어였기 때문에, 좀 그럴듯한 직업을 방학을 이용해서 하고 싶었던 내 욕구와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그래봤자 강사는 20살 후반대로 그리 나이가 많지도 않았다. 단지 그들과 달랐던 점은 그들은 연차가 꽤 됐고-그래봤자 3년이지만- 나는 막 학원에 들어왔단 것이었다.


학원에는 강사가 쉽게 바뀌었던지 고정으로 있던 선생은 수학과 과학이었고 내가 영어를 맡고 다른 선생도 영어로 채용되었다. 그는 인하대 로스쿨을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한눈에 외모가 멋져서 같은 시기에 채용되었기도 해서 눈길이 갔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채용된 다른 여선생도 그가 돋보였는지 친해지고 싶은 눈치였다.


강사였던 우리는 서로의 처지에 공감했는지 술자리를 몇 번 갖기도 했다. 과학선생은 나보다 세네 살 많은 언니였는데 그땐 그게 왜 이리 높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레이를 산 지 얼마 안 됐는데, 한 번은 그녀가 태워다 주겠다며 같이 차를 탄 적이 있었다. 지하주차장을 내려가며 '어어~' 소리를 내던 그녀는 내 눈엔 그저 어른 같았다. 단지 차를 운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그 사람이 성인같이 느껴졌다. 그 말은 나는 아직 미숙하게 느껴졌단 말이기도 했다.


그 술자리에서 내 뒤로 들어온 여자선생이 술기운에 로스쿨 남자에게 안겼을 때 남자는 그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내칠 수도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어깨를 내주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과학선생님도, 나도 어느 정도는 그에게 마음이 있었고 그도 그걸 알고 있는 듯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기댄 그 둘의 모습은 이미 상황은 전개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안긴 그녀가 남자친구가 있단 것도 알았지만 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그녀의 카톡 프로필엔 남자 친구와 찍은 사진이 역사순으로 나열돼 있었는데, 어쩌면 그런 식으로 환승을 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과학선생님과 나는 어쩌면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그마저도 학원을 퇴사하면서 흐지부지 되었지만 말이다. 수전노였던 원장 와이프는 퇴사하고 나서도 '학원생이 원비를 내지 않아서' 벼룩의 간인 내 월급을 50만 원 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을 월급을 달라고 할 때마다 10만 원, 20만 원 이런 식으로 보내다가 결국 나머지 10만 원은 주지 않은 채였다. 그때 이후로 월급은 밀리지 않는 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 회사에 오게 된 것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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