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끝에 회사 갈 생각을 하니 고역이었다. 똥 씹은 표정으로 자리에 가서 상사한테 인사하려고 했더니 얘기 중이었다. 그래서 인사를 안 했더니 또 왜 인사 안 하냐는 것이었다. 그 말은 정말 10번은 들은 것 같다. 얘기 중이라서 그랬다니 지나갔다. 다른 직원한테는 안 하고 나한테만 그러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그러더니 평가를 위한 면담을 한다고 한다. 요식행위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데 해야 하니까 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뚜렷한 이유 없이 하는 수많은 일들을 했는데 그때마다 납득되지 않아도 해야 한다는 게 내겐 정말 큰 스트레스였다. 앞사람이 하고 내게 와 면담장소를 알려주었고 그는 생전 안 짓던 미소를 짓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도 영업용 미소를 띠고 자리에 임했다. 면담을 한다는 것이 나보고 먼저 할 말이 없냐고 했다. 일단 지금 하는 업무는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는 다른 업무를 해봤자 거기서 거기고 하던 일 하던 게 편하기 때문이다. 인수인계를 받지만 그것도 모두 요식행위이며 얼마간은 헤매야 하는데 그게 싫다. 그는 또 뭐 할 말이 없냐고 물었다. 이번 주에 보고회 있다고 말했더니 다음 주 아냐? 하던데 일정은 매번 말해줘도 모르는 것 같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오면 인사 좀 하고 그래'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도 내게 먼저 인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상사이니까 인사를 받아야 한다는 건 그렇다 치고, 다른 직원한테도 인사를 하라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인기척으로 내가 온 걸 알 테고 그야말로 요식행위로 인사하는 게 필요하다면 왜 타인은 내게 단 한 번도 인사를 걸지 않는가? 그게 효율적이라서인데 그는 타인과 어울리지 않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입사 초기에는 나도 부단히 도 다른 직원들과 어울리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수많은 경험 끝에 그런 행위들은 심지어 팀만 바뀌어도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걸 배웠다. 팀 분위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그런 것이 이제는 너무 피곤하다. '주변에 신경 좀 쓰고'라고 그는 말하지만 그조차도 본인이 집중하는 일이 있으면 주변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나보고 그러는 건 합당하지 않다. 분명 나의 성향-집중하는 것이 있으면 그만한 퍼포먼스를 해내고 일정을 맞추는 것-은 타인에 신경 쓰지 않는 대척점에 있는 것을 테다. 하지만 꼭 본인이 거슬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면담할 때도 나의 장점-책임감이 있다는 것과 일정은 칼같이 지키는 것은 언급하지 않고 단점만 말하는 게 '올해는 다시 보지 맙시다'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보여준 평가서에는 내가 일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사업이 이월되어 3월에 마무리되며, 작년의 경우에도 일정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재작년보다 2달을 앞당겨했었다. 하지만 그런 공치사까지는 바라지 않으나 그에게는 난 항상 부족한 모양인가 보다. 그런 무기력함과 성과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과 직장 내 관리자들이 본인 실력은 생각 안 하고 직원을 조지는 것만 배워서 갈려나가는 것도 이가 갈린다. 이런데도 참고 꾸역꾸역 다니는 나도 환멸스럽다. 보통 이런 거지 같은 기분은 요가를 다녀오면 조금 괜찮아지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괜찮지 않고 내일 또 출근해서 볼 본부장면담 얼굴에 구토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