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했던 것들이 안 됐다. 오늘이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는데 막상 결과를 마주하니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에 대해 손으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써왔던 내 시간과 희망고문을 생각하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그때가 회사에서 점심시간 이후였는데 그대로 일을 놨다.
아이디어를 찾고자 회사 내 창업계획서를 봤지만 이거다 싶은 내용은 없었다. 결국 된 계획서와 되지 않은 계획서의 차이는 무엇인가 봤더니 실제 매출이 찍히느냐와 개인보다 팀구성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다못해 시제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조잡한 기계라도 갖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벗어나겠단 일념으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업이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인지에 대해 결과가 나오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노무관리나 투자유치를 계속 받는 것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에 닥치면 하게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도해 봤던 것이다. 전화위복이란 말과 나쁜 일이 좋은 일로 이어지고 좋은 일이 나쁜 일로 이어진단 말을 생각했다.
집에 와서 피곤해서 영화를 한편 봤다. 영화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의 삶을 그리고 있었는데 사실 내가 바라는 삶은 이쪽에 더 가깝다. 집에서 취미로 피아노를 치고 글을 쓰지만 그게 어떤 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라 예술가의 삶에 가까워지고 있긴 한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만 해도 작가인 사람들을 부러워했다가, 이젠 책을 내고 강연과 투고로 돈을 버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든다. 물론 그런 삶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현재의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삶이 끝날까 봐 그게 두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