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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세뇨와 다카포처럼

by 강아

회사에 갔더니 내역사업 담당자가 결국 예산변경 전 계약서를 내게 주어서 예산이 안 맞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부주의함에 나는 '내가 아무리 잘해도 엮인 사람이 병신이면 골로 가는구나'를 알게 됐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내가 겪으니 어처구니가 없고 회사에서 일을 할 의욕도 나지 않았다. 상사는 상황 설명을 듣고 '올해 계획 빨리 세워야겠네'라며 나를 독촉했고 '어제 전화했더니 (그 사람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 사과를 하지 않을지언정 내가 예산변경하느라 숫자를 몇 번 확인했는데 그러면 뭐 하냐 담당자가 (좆같이)하는데'라고 말했다. 한동안 팔짱을 끼고 꼿꼿이 앉아 눈을 감고 있다가 '조퇴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왜'냐고 물어서 '이런 기분으론 일할 수 없다'라고 회사를 나왔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뛰고 머리에 열이 올랐던 내 몸은 회사에 나오자 조금 진정이 됐다. 그 길로 연습실을 갔다. 월단위로 끊어놨는데 날씨는 또 왜 이리 좋은 건지 난 엉망인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밖의 세계는 평화롭고 바람이 불었지만 회사에 들어가면 삭막하고 답답한 상황에 처한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식욕도 없었는데 그래도 먹어야 하니까 브리또를 사다가 먹었다. 좋아하는 음식이었지만 음식이 오히려 늦게 나와서 다행이게 느껴졌고 먹으면서도 그다지 맛을 느끼지 못했다.


스튜디오에 가서 연습을 하는데 장장 8시간을 쳤다. 오로지 피아노만 마주하면 되는 삶은 근사했다. 사람과 마주할 필요가 없고 실력이 모자란 건 연습을 하면 되니까 계속 반복했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치면 나아질걸 아니까 그 반복 속에 안심이 되었다. 임윤찬 같은 아티스트는 본인이 사랑하는 것이 업이니 얼마나 행복할까. 피아노와 한 몸이 되어 연주하고 그 과정에서 슬픔과 기쁨을 모두 느끼며 그 연주는 어김없이 군중의 찬사를 받는다.


나는 왜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가, 주식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인가. 결국 '돈'이란 목적이 없었다면 투자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니까. 근데 내가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먹고살 정도만 있으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든다. 같은 8시간을 있어도 회사에 있으면 소모되지만, 피아노학원에서 연습을 하고 나오면서는 개운하면서도 더 잘하고 싶단 욕망이 들었다. 회사에선 느껴본 적 없던 감정, 어릴 때부터 갈망해 왔던 걸 지금에야 하면서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지, 미래는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지만 그건 마치 달세뇨와 다카포처럼 그 상황이 되면 여기로 가라고 길을 보여줄 것만 같았다. 음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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