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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찾아오는 환멸

by 강아

회사에 다니면 인간을 혐오하게 된다. 총괄하는 사업이 있는데 나보다 20살은 많은 사람이 꼭지사업으로 진행하는 건이 있다. 그 사람은 이 회사 말고 다른데 오라는 데도 없고 이직할 능력도 없기 때문에 고인 물이다. 작년에 인사발령 났을 때도 그 사람이 마무리짓지 못하고 간 사업을 정리하느라 정작 그 사람은 빠져나가고 그 사람 후배랑 내가 정리해서 정산을 마쳤다.


그 일이 있은 후 1년이 지났고 잊어갈 무렵 그 사람이 옮겨간 팀에서 내(사업의) 꼭지사업을 그가 맡게 되어 또 엮인 것이다. 하지만 별일 없겠지 하고 지나왔던 게 오늘 일이 터졌다. 그 사람이 계약을 한 금액에 맞추어 예산변경을 했고 이제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어 예산을 털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잔금을 내보낼 금액이 모자랐다. 예산변경할 때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계산했었고 숫자는 강박적으로 보는 나이기에 실수가 있을 리 없었다.


회계프로그램을 보니 분명 그가 알려줬던 예산금액에서 초과해서 썼기 때문에 잔액이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역을 봤더니 그가 말했던 계약보다 더 집행한 것이다. 그에게 내선으로 전화하려 하니 자리에 없었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그는 조퇴를 해서 밖이라며 당초 쓰기로 했던 예산보다 계약금액이 적었으므로, 당초 예산을 맞추기 위해 추가계약을 했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작년 계약금액을 물어봤던 건 그 금액에 맞추어 예산변경을 하려 했음이고, 변경된 기안을 공유했으나 그는 당초 예산을 털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돈을 쓴 것이다.


그와 함께 일하던 후배들이 그를 예우하는 척 하지만 빈정거릴 때 '사이가 좋으니까 그런가 보다'하고 넘겼었다. 하지만 그와 직접 일을 (작년에) 하게 되자 똥을 치우는 듯한 느낌은 '그래서 그 팀에 있던 후배들이 다 도망갔구나.'를 느끼게 했고 그가 한 부서에 정착하지 못하고 옮겨 다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후배팀장 밑에서 일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산을 변경하려고 계약금액을 물어봤을 때, '예산변경하니까 돈은 더 이상 쓰지 마셔야 해요'라고 말을 했었어야 하는 걸까? 그걸 모를 정도로 메타인지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가 지금껏 다녀온 20년이 넘는 회사 생활은 되는대로 살아온 세월인 것일까?




윗선에 보고하고 그 사람 직속팀장이 왔다. 그 팀장은 '이미 벌어졌으니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라고 그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그 사실을 확인하고 연관부서에 연락해 방법이 혹시 올해 예산으로 계약금액을 충당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미 진행한 계약건의 잔금을 적게 줄 방법이 있는지 알아봤다. 두 팀장은 계약부서와 예산부서에 가서 왈가왈부했고 난 이런 상황에 처한 내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머리가 없는 사람과 일할 때면 이런 조직에 속한 나 조차도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했던 공부가 고작 이 회사를 다니려고 했던 것이었다니. 진절머리 나는 가족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한 번씩 일어나는 회사에서의 이런 사건들은 끝없는 자괴감에 시달리게 한다. '남들은 신경 쓰지 말자' 마이웨이로 회사를 다니고 있던 나였지만 오늘같이 내 잘못이 아닌 걸로 어떤 일을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 환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것도 말해줘야 아는 거야?'라는 불신감과 그로 인해 묻은 똥물이 내게 묻은 것만 같아 퇴근하고 나서도 자꾸만 그 생각이 나고 내일 출근해야 하는 것에 대한 피로가 끈적이게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걸 버텨야 하는 걸까. 버티면 종내엔 웃게 되는 게 맞나? 다니는 내내 전전긍긍과 불안을 혹처럼 달고 다니며 마지막에 가서는 그때 더 일찍 그만두지 못한 걸 후회하며 아파트 한채만 남아있는 삶이 되는 게 아닌가? 어제부터 시작된 두통은 사라질 기미가 없다. 이런 걸 말할 사람이 없단 게 애처롭게 느껴졌다가도 '결국 말할 사람이 있어도 그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했을 건데'라며 그걸 말하고 나서 느꼈을 후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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