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장 쉽게 신경질을 내는 대상

by 강아

어렸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쉽게 분노를 쏟아내곤 했다. 그럴 때 어머니는 그걸 다 받아내고선 다음날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직장인이 되고 나니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됐다. 가장 쉽게 화를 표출할 대상, 회사에서는 하지 못하지만 와이프에게는 할 수 있는 배설. 아내는 승진에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고 자기 말이라면 껌뻑 죽으니까.


나이가 들어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받아들였단 것이 아니다. 종종 회사에서 화가 나는 상황에 부딪히면 즉시 표출해서 그게 응어리지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집에 와서도 잔흔으로 남았고 이럴 때만 그런 감정을 공유할 사람을 찾게 됐다.


어제가 그랬다. 사업설명회를 상위기관을 모시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회를 뭐 그리 자세하게 해?’라며 초치는 말을 하는 상사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당신은 왜 상위가 하는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내가 의견을 말하면 그걸 자기 의견처럼 말해요?’를 말하지 못하고 퇴근해서 레슨을 받는 도중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요새는 어때?’라고 묻는 어머니의 말은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누구도 내 안부를 묻지 않을 때 단비처럼 초능력같이 느껴지는 어머니의 말을, 같이 살았으면 ‘엄마가 뭘 알아? 내가 얼마나 참으면서 살고 있는 걸 알고는 있어?’라고 분노를 내질렀을 것이다.


‘상사랑 안 맞아. 여기 있으면 내가 발전하는 게 아니라 썩어가는 것 같아’


라고 말하니 어머니는 ‘그래도 회 사 사람끼리 잘 지내야지’라는 말을 했고 나는 그런 불평을 늘어놓은걸 곧 후회했다.


항상 누군가에게 말한 후엔 후련함보단 철회하고 싶었다. 예전 아버지가 어머니께 쏟아놓은 감정의 배설을, 나도 어머니가 옆에 있었으면 여남은 것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뭐라고 해도 한마디도 뭐라고 못할 거니까.


결국 답장하지 않은 채 오늘이 되었고 오매불망 어머니는 날 생각한다. ‘오늘은 좀 어때?’ 내가 아플 때나 힘들 때 텔레파시처럼 연락 오는 우리 엄마, 역시 메시지를 읽은 채 ‘괜찮아요’라고 거짓말할 나.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읽지도 않을 과시용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오고서는 ‘가고자 하는 곳과 현실의 괴리감을 유리한 채 살아가는 나’가 요샌 너무 싫다. 어김없이 봄이면 심해지는 자기혐오와 결국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는 타인불신,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분노를 쏟아내곤 죄책감을 가질 내가 괴물 같다. 그게 아니라면 애써 마음을 숨기고 ‘난 다 괜찮아. 회사도 인생도 주변관계도’ 거짓말하며 돌아오는 길엔 ‘누구도 믿을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아이러니.


결국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이 내 범주의 사람인데, 그런 이후엔 미안함을 느끼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경험이 다반사였다. 이럴 때면 혼자 우주를 떠도는 스푸트니크가 된 것 같아 간혹 한번 로그인하고 다시는 로그인하지 않을 사이트의 닉네임을 스푸트니크라고 설정해놓곤 했던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루종일 에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