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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에 조퇴했다

by 강아

인생에서는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많고 특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다. 오늘이 그랬다. 가뜩이나 월요일이라 출근하기 곤욕스러운데 그래도 했더니 상사가 이야기를 하자고 불렀다.


무슨 이야긴지 알았다. 얼마 전 출장을 함께 갔다가 업무분장을 다시 할 거라며, 기존 사람이 하던 업무를 내게 주고는 그 사람은 다른 계에 투입하겠다는 속내였다. 인력을 차출해 가는 그쪽 계가 바빠서라고 그는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추가인력을 요청하는 계는) 아가리 바쁨을 온몸으로 티 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내 윗직급이 2명 붙어 있는 사업이다. 짬으로 보나 예산에 비해서는 적정한 분장으로 보이는데, 얼마 전 보스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직원들에게 청했지만 아무도 그와 가고 싶지 않아 결국 끌려간 자리에서 (선배는) 업무 고충을 말했던 듯하다.


결국 업무를 추가로 맡아주어야 할 거라는 그의 말에 '그럼 인센티브는요?' 물었더니 그냥 해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포상이 있을 시에도 입을 싹 씻고 넘어간 걸 걸고넘어졌더니 '그건 자기가 후배들에게 쓰지 말라고 했는데 본인들이 써서 낸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런 포상이란 기관 위상을 세우기 위해 들러리 세우 것이라는 그의 말에 '그래도 그런 것들이 승진에 가점으로 작용하고 하나라도 플러스되는 요인이잖아요'라고 했더니 아무 말을 않는 것이었다.


'상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승진을 해주는 것도 아니면 제가 왜 그 업무를 추가로 해야 하죠?'라고 했더니

'승진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라는 것이었다.

부문장과 보스의 점수로 인사평가가 내려지고 그에 따라 승진이 되는데 그는 끝까지 그의 권한은 없다고 말하며 '챙겨주겠단' 말 한마디를 안 하는 것이었다.


부서 내 본인이 총애하는 직원의 힘들다는 말에 그는 과하게 업무를 조정하려 하고 있었고 그는 그 과정에서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현재의 상황만 모면하자는 걸로 업무 추가 분담을 제안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반대급부가 없는 상황에서 내가 왜 그 업무를 맡아야 하는가?


'작년에도 그쪽 계의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제가 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걸로 제가 뭘 얻었죠?'

라고 말하니 '그건 별일 아니잖아'라고 했다.

'별일 아닌 거면 왜 제가 해야 하죠? 말씀대로 그런 업무였다면 왜 후배가 하는 것이 아닌 제가 해야 했죠?'라고 하니 그는 또 아무 말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자리 비우실 때 대결 지정하는 것도 저보다 후배인 사람을 자리에 앉혀놓으시면서'라고 했더니 그는 그건 자기 실수라고 했다.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연공서열로는 뒤에 있는 사람을 실수인 척 대결자로 지정해 놓은 이유는 나는 그의 부당한 말에 즉각 반박하지만 그 후배는 자기주장이라곤 없이 타인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상대방의 말을 다 맞다고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업무지시하실 때도 저도 맡은 업무가 있고 자료를 보고 있을 수도 있고 통화를 하고 있을 때도 있는데 사람들 다 있는 자리에서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감정이 섞인 말을 하실 때, 특히 상위에서 전화가 올 때는 특히나 그런 경우가 더 많았고요.'라고 하니

'그건 다른 사람에게도 그래. 서운했다면 미안하네'


라고 하는 것이다.

본인은 별생각 없이 그랬다고 하지만 명백히 보이는, 직원을 대할 때의 차별을 나는 더 민감하게 느끼곤 했다.

'회사에서 누구나 본인일이 제일 바쁘다고 하죠. 그리고 여론은 큰소리를 내는 사람의 말에 따라 생기고요. 그럼 상대적으로 저같이 말이 없고 묵묵히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묻히고 말고요.'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에게 일을 더 주고 여론을 형성하는 자의 의견에 동조해 일을 나눠주려는 그의 저의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워크숍도 안 가겠습니다'

라고 하니 그는 알겠다고 했다. 홧김에 조퇴를 쓰고 회사를 나왔다. 말한 것처럼 승진이란 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내 형성되는 여론에 따라 휩쓸리기 마련이라는 걸 알고 그걸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근데 오늘처럼 조정을 하는 자리에서 결국 고생하는데 챙겨주겠다는 빈말이라도 듣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일을 떠넘기려는 수작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부조리에 불합리함을 꾸역꾸역 참고 회사를 다녀왔는데 이제는 정말이지 다 때려치워버리고 싶다. 이런 감정은 귀가 후에도 없어지지 않아 연무처럼 휘감았고 이젠 더 이상 회사의 감정을 내 안으로 가져오고 싶지도 않다. 사회적 위치 이런 것도 다 피곤하기만 하다. 당장 내일을 어떻게 출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일이 되었을 때 연차를 쓰고 그다음 날이 되었을 때도 하루씩 순연한다면? 살기 위해 먹는 밥도 까끌거리기만 할 뿐이다.


이런 말을 친구나 가족한테 한다면? '그래도 어떡해 참고 다녀야지'이런 뻔한 말을 하는 것도 듣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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