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에서 참한 옷을 입고 모범직원의 모습을 보이는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상사는 본부가 부른다고 눈썹이 휘날리게 갔다. 내가 그와 같이 가기 싫으니 그도 같이 가기 싫은지 혼자 가니 속편 하다. 갈 때마다 내차 얻어 타는 것도 짜증 나는데. 굉장히 팀사람들 바쁘다고 업무분장한다고 했는데 팀장 출장 가자마자 팀원들 업무태만 절고요. 웃기지도 않는다. 팀 내 업무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다.
업무 더 받는다고 해도 하면 되긴 하는데 사람들의 여론에 휩쓸려 결정하는 상사도 웃기고 상사가 있을 때만 전화하며 바쁜척하는 동료도 웃긴다. 모두가 연극을 하고 있는 극장에서 나만 세수 안 하고 잠옷을 입은 채 관조하는 느낌이다. 십일 년째 입고 있는 안 맞는 옷.
2.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가끔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으로 길을 틀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제일 빠른걸 수 있는데 그렇지만 앞서 달려 나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주눅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연주하는데 한계를 느낀다. 내가 아무리 잘 쳐도 임윤찬보다 잘 치진 못하니까 음악을 재생하는 쪽으로 눈이 가는 것이다. 돈을 쓰는 곳이 좋아하는 곳이라 한다면 나는 분명히 음악이다. 근데 이걸로 돈을 번다고 한다면?
결혼식 축주를 한다고 하면 주말마다 세탕 뛰어도 인건비 나오는 수준이고, 결국 1인 입장료가 100만 원이 넘는 행사 뛰는 디디한처럼 되려면 엄청 유명해져야 하는데 시작도 전에 김칫국 마시는 건가. 하지만 분명한 건 방송할 때 음악을 틀며 느꼈던 희열과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마치고 나오면서 날 감싸는 듯했던 태양의 온기는 아직도 그때를 회상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한데 매일 연습실에 가서 오늘이 내일인 것 같고 나만 아는 것 같은 미세한 실력이 느는 시간들이 합해져야 원하는 미래가 찾아오겠지.
그래서 집에 오면 작전까지 디깅 하다 잔다. 근데 디깅하다 보면 노래를 찾을 때 내가 좋아하는 구간을 찾아보면 특정 아티스트인 경우가 있다. 그럼 그 사람과의 음악성이 맞는다고 봐도 되지 않나. 원래 사람과의 관계를 즐기지 않으니 요새 생활은 회사->점심시간 연습->회사복귀->레슨, 없는 날은 연습 or 요가 이런 식의 일상이다.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반려자에 대한 생각은 버리지 못하는데 요건을 생각해 보니 음악을 작곡하거나 디제이 하는 사람이면 좋겠고, 요리를 잘했으면 좋겠다. 일반적인 회사원의 탈을 쓰고 투자를 잘한다거나 자기만의 무기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올해 안에는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양성, 트랜스 포함.
3. 요가를 하면 그 순간은 아무 생각이 안 나서 비워지는 기분이 든다. 시체자세할 때 다시 번뇌는 찾아오지만.
4. 밥 먹는 시간도 아깝기도 하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어서 맨날 김천 가는데 거기 막일 아재들 보면 그 사람들도 그냥 하루를 노동으로 때우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겠지 그런 생각한다. 뭐 가족이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하루 살아야 하니까 하루를 살고 일주일을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번뇌 속에 있는 건가 이런 생각하다가도 점심때 나와있는 공무원들 보면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하면서 살까 그런 생각하다가 연습할 때 순간에 몰입되다가 하는 식이다. 연습실에 나와 같은 아재도 점심시간에 연습하러 왔는지 정장 입고 있던데 저 사람도 이루지 못한 꿈이 있어 이렇게 연습하러 왔나 싶기도 하고.
생각이 많은 나에게 잠식될 거 같을 때 친구에게 물었더니 ‘난 생각 안 해’라던 친구가 있었는데 노력해도 잘 안된다. 그래도 연주하거나 요가하는 방법론적인 걸 찾아서 그래도 좀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