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밥일지를 읽고
이 책은 좋아하는 유튜버가 읽는다고 해서 읽었는데 처음에는 읽기 싫었다. 하루하루 투자공부하기 바빠 죽겠는데 공장이야기인 것 같았고 표지도 어두워서 괜히 다크한이야기, 영화를 보기 싫어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대여해 두고 조수석에 책을 던져두었다가 책을 읽을 짬이 날 것 같아 갖고 온 것이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고 읽었다가 나중에는 페이지를 멈출 수 없었다. 주인공은 왜 이렇게 박복한지, 이혼이 거의 당연하다시피 한 가족과 실업계에서 대학을 안 가려고 하다가 어머니가 만류해서 전문대를 가는 것 까지가 내가 살아온 삶과는 너무 달라서였다. 당연하듯이 생각했던 인문계졸, 4년제 대학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고 대학등록금을 낼 돈이 없어 돈을 꾸러 다녀야 하는 생활은 내가 얼마나 배때지가 불러있는지를 상기하게 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간신히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생활의 낭만이라곤 없이 9to6 수업에 동기라고 모인 사람들도 데면데면하다. 주인공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아씨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절규하는 대목에선 신이란 존재가 있다면 누군가에겐 견디기 어려운 시련만을 주는 건지 야속하기도 했다. 그걸 듣고 서로의 반경을 침범하지 않았던 학우란 존재는 삼삼오오 돈을 모아 그에게 마련해 준다.
중소기업 특유의 사람을 갉아먹는 생활, 그 와중에 첫사랑이라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자격지심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조차 못하는 그가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모든 게 절망뿐인 상황이었다면,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그 학비를 마련해주고자 했던 어머니가 사기를 당해 학교를 다니면서도 직장을 다니면서 빚을 갚고 나면 몇십만 원이 수중에 남는 삶에서 나는 과연 자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자살이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는 또 다른 수단이라고 했을 때 어지간하지 않고는 그 상황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힘들게 빚을 갚고 있는 도중에 처음에 악다구니를 썼던 채권자는,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사기를 당해(엄마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돈 들고 날랐음) 빚을 갚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 원금 1000만 원을 쪼개서 갚고 있는 도중 500만 원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아주머니가 있었고, 그는 그로 인해 삶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그가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 중 누구는 처세를 기가 막히게 해서 그가 통화하면 질질 끌어지던 내용이 그 타인으로 인해 극적으로 짧아지며 업무 효율성을 이끌어냈다고도 했다. 누구는 주중엔 힘들게 일하면서 주말엔 포르셰를 가지고 노는 것에 열심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사회에서 말하는 흔히 천하다고 생각되는 하수구 청소를 하는 아버지께 가르침을 받길, '일할 때도 놀 때도 제대로 해라 ' 는 말을 실천하여 나중엔 사장의 눈에 들어 사업체를 연결받고 수완이 좋아 돈을 긁어모았다. 돈이 벌리는 걸 보니 정작 남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을 안 쓰게 됐다며 다마스를 타고 나타나 인터뷰를 하는(작가가 나중에 기자 됨) 그의 철학이 놀라웠다.
또 한 명은 조경을 하다가 만난 재야고수 아잰데, 직장생활을 하다 본인은 도저히 직장생활이 안 맞는다며 일이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곳이든 가서 하는 속칭 막일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에게 일을 확실히 알려주면서 삶을 살아가며 지녀야 될 가치도 알려준 참선생이었다. 비록 주인공의 삶은 비참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그는 힘을 얻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다.
예전 노동권이 그랬던 것처럼 몇 달을 위장전입해서 일하는 것은 이에 비하면 얼마나 쉬운가. 그가 겪은 현장은 처절했고 먹고살기 위한 발버둥이었으므로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앞선 막일 아재가 주인공에게 말해준 것이 '네 말이 왜 사람들에게 먹히는지 생각해 봤는데, 기존 (노동권) 사람들은 적나라하고 정제되지 않는 표현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했어. 하지만 네가 쓰는 말은 그 중간점에서 조율을 잘하는 것 같다 '라고 평한다. 현장을 말하되 그걸 일반인이 들었을 때 이해하게 하게 쓰는 것으로 그는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여자인 초원님과 잘되길 바랐는데 아니 다른 남자 데려와서 청첩장 줄 때 열받은 거 나뿐인가.. 물론 중간에 장거리가 되었고 주인공이 '나는 빚도 많고 부족한 게 이렇게 많고 (그래서 고백을 못 받아들이겠다)'라고 해서 여자가 '그럼 멋져지세요'라고 말했을 때 아니 진짜로 골져스 해져서 나타나야 할 거 아녀.. 물론 서로가 나아진 모습으로 만났지만 나 같으면 여자가 청첩 줄 때 안 간다.
현실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주어진 환경이 얼마나 나이스한지 모르고 불평불만만을 늘어놓던 나는 책을 덮고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의 삶을 존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삶에는 예기치 않는 사건(그가 말하는 공장에서 끼임 사고 등)이 발생하고 당장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탈한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 건데, 욕심으로 눈이 희번덕해져서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며 지독한 결핍에 시달리던 나는 그냥 입을 다물게 되었다.
나라고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 그와 별다른 것 없는 내 아버지가 뼈를 간 돈으로 (그에 비해) 풍족하게 생활하며 대학교육비까지 지원받았는데, '내 친구 아빠는 CEO 데 아빠는 뭐야'이런 철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새삼 내가 부끄러웠다. 바람에 이는 풀잎에도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윤동주가 아니라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