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계절
킬리안 머피는 인셉션으로 인상이 깊었는데 어쩌다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가 결혼을 했는데 누군가 유혹을 한다면 나는 그걸 억누를 수 있을까? 이본의 남편이 그런 기회가 있었는데 정신을 차렸단 말을 했는데 그로부터 어떤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그는 여자 친구가 있었고 내겐 헤어지지 못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나도 공감했다. 그에게 조금만 더 다가가면 그가 올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서로의 어깨가 가까워졌던 날,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스치는 옷과 음식을 나눠먹는 동안에 은연중에 그와는 되지 않겠다는 정신이 든 것 같다. 그에게 마음을 표현하겠다고 만난 날에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집으로 되돌아오던 날, 조금씩 마음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주 후 그는 연락이 왔다. '이젠 못하겠어'라고 하니 그는 이유를 묻고는 수긍했다. 사실 그날 그렇게 터덜터덜 되돌아오던 날에, 어쩌면 그가 먼저 액션을 취해주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라고 하면 나중에 죄책감이 덜하니까.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건 내 생각이었다. 애인이 있는 상황에서 내게 하는 연락과 만남은 결국 (그의 그녀에 대한) 책임감의 부재였던 것이다. 그 동아줄을 잡고 싶어 하던 어리석은 나라니. 그걸 '그가 그녀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라고 생각했던 게 여느 권태와 안정에 무디어진 사람이 삐끗하면 하는 불륜의 시작이니까. 그가 그렇게 내게 왔던들, 나는 그걸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아서 의심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영화는 안정적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 안정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의견이 나뉠 것이다. 이본의 아픈 남편이 이본에게 고백하던 말은 진정 신뢰하는 사이라면 타인에게 떳떳하게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사이여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얼마나 될까? 상대에게 오해를 살까 봐 하는 거짓말은 결국 불신을 가져왔을 텐데. 킬리안이 찾아오기 전에 남편에게 불륜을 고백한 이본을 그의 남편은 인정해 준다. 당연히 본인이 죽으면 킬리안을 만나라고 했다고. 결국 본인의 욕심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걸 하게 해 주는 게 사랑의 형태인 것 같고 그렇다면 나는 진짜 사랑은 해보지 못한 것 같다.
'너도 결국 다른 남자와 똑같아'라며 와이프는 킬리안을 떠난다. 순간의 선택으로 가정을 잃어버린 킬리안은 공교롭게도 이본이 다시 찾아와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땐 킬리안의 감정이 그와 같이 않았고 그는 첫인상이 최악이라 생각했던 여성과 만난다. 현여자 친구가 '사랑한다 말해줘'하니 사랑한다고 말하는 무기력함, 킬리안은 실수를 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만남은 이어진다-는 설정이 단죄하려는 느낌보다는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쓴맛이 느껴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