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따라 삼천 년 / 교차로 여신 아르테미스

by 장덕영

교차로의 기타맨

미국의 전설적 기타리스트로 블루스 전문가인 로버트 존슨. 블루스에서 가장 중요 인물 중 한 명으로, 현대 블루스의 기초를 닦은 음악가로 인정받는다. 오픈 코드 형식의 작법과 소울 창법 등 블루스에 널리 쓰는 기법을 최초로 체계화한다. 겨우 스물일곱 해 살면서 언제 저런 걸 했는지, 아마 진짜 악마가 도와줬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시시피 흑인들에겐 악마가 교차로에 살고 있어, 자정에 나가면 악마를 만날 수 있단 소문이 파다하던 때가 있다. 악마에게 영혼 팔아 소원을 이룬다는 말에 필자는 '파우스트'를 떠올리며 피식 하고 만다. 뭔 뜬금없는 교차로의 악마. 뽀다구 나지 않는 야그다. 하튼 존슨이 악마와 거래 후, 기타 실력이 늘었다는 소문이 돌아다닌 건 사실이고 관련 곡도 있다. Crossroad와 Me and the Devil blues 라는 곡이 그거다. 쬐끔 음산하긴 한데 악마가 튀어나올 것 같진 않다.


로버트 존슨 (웹인용)


자주 관객에 등 돌리고 손 감추며 연주했는데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기타 기술을 훔쳐 보지 못하게 하려던 거라나, 참 가지가지 하는 기타리스트다. 어쨌거나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악마에게 기타 연주법을 마스터하게 되었다는 '썰'로, 계약이 이루어진 장소가 교차로였다는 게다. 파우스트 전설과 연결하려는 문화적 상징으로 봐주고 넘어가면 그뿐인 전설이다.




교차로 지킴이


교차로에도 여신이 있는가. 교차로가 위험하니까 누군가는 서 있어야 하것지만서도 하필 아르테미스를 세운 걸까. 아르테미스는 태양 다음으로 중요한 달을 관장하는 높으신 여신 아닌가. 그런 분을 교차로 같은 델 보낸다? 태양은 아폴론에게 달은 누이 아르테미스에게 맡긴다면, 태양과 달을 제우스 집안 남매에게 몽땅 일감 몰아준 셈이다. 공정거래법 위반의 문제는 둘째 치고, 교차로까지 담당케 하면 업무가 너무 광범위하여 일을 제대로나 하겠는지 의심스럽다. 그 옛날 제우스 가문 외 이렇다 할 자가 없었으니 원, 뭐라 하기도 그렇다.


교차로 잡지와 실제 교차로


해서 뭔 일을 담당했는지 쫘악 파헤쳤더니 우주 차원에선 달 관리라는 주요 업무를, 지상에선 사냥의 여신이란 이름에 걸맞도록 야생동물 보호를 맡긴다. 인간적 차원에선 출산의 여신이면서 처녀성과 관련된 일체 업무를 망라한다. 능력있는 여신이로다. 보통은 세 갈래 길이나 교차로는 '헤카테' 담당이었는데 아르테미스와 업무가 중복되어 연관되기도 한다. 로마로 넘어오면서 디아나 여신이 교차로 업무를 담당하자, 디아나의 전신인 아르테미스를 교차로의 여신으로 굳혀버리는 혼동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할 일은 많고 신이란 존재는 몇 안 되니 납득이 간다. 힌두교처럼 신을 330,000,000 정도 두었더라면 이런 교차로의 잔업무까지 아르테미스를 쓸 일이 없었을 테다.


달의 여신, 사냥의 여신, 다산의 여신. 모두 다 같은 하나의 여신 (웹인용)


달의 여신으로 알아달란 뜻에서 머리에 달빛 머리장식을 한다. 참 드러내기 좋아하는 여신이로다. 물론 인간이 한 짓거리지만서도. 계급장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나, 별 넷이야...하는. 사냥업무도 담당했다니 대표적 게임(사냥감)인 사슴을 옆에 데리고 있다. 사냥의 여신이지만 야생동물 보호도 한다는 희한한 업무다. 처녀 순결 출산도 관장하였다 하여 어느 인간이 아르테미스 가슴팍에 젖을 잔뜩 달아놓았으니(튀르키예 에페수스 우상), 인간이 신을 두려워하는 건지 조롱하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아르테미스의 출생지 델로스섬에서는 출산 가정 보호 여신으로 숭배되었으나, 에게해 건너 튀루키예 에페소스에서는 도시 수호 및 다산 풍요 자연의 대모신Magna Mater으로 탈바꿈하면서, 아마도 가슴에 많은 훈장(?)을 달아준 듯하다. 인간의 장난 짓거리일 테다.




삼거리의 운명

뭐니뭐니 해도 교차는 사거리겠으나 삼거리 언급을 안 할 수 없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후 코린토스 왕실에서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제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할 팔자라는 기막힌 신탁을 피하려 스스로 집을 떠난다. 부모에게 버림받을 때 이미 그 부모가 들었던 신탁을 아들이 다시 또 들어야 하는 신탁이고 보면, 헬라인들 참 모질다. 어느 점쟁이가 남의 끔찍한 사주팔자를 떠벌려, 그의 삶 전체를 헷갈리게 하는가 말이다. 싯달타나 지저스를 만났더라면 결코 저딴 야그로 현혹되지 않으리라.

오이디푸스 !

태어나자마자 두 발이 꽁꽁 묶여 버림받는 바람에 발이 부어오른다. 퉁퉁 부은 발이란 뜻에서 오이디푸스라 불린다. 인디언처럼 이름을 생긴 대로 짓는가. 그는 몹쓸 신탁 때문에 버려졌고, 성인 되고서도 이 신탁 이야기를 전해 듣는 바람에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난다. 모르고 있으면 아무 일 없을 일이, 알아서 화가 된 극단적 스토리다.

펠로폰네소스반도를 빠져나와 테베로 향하던 중 어느 삼거리를 지나는 오이디푸스. 하필 만나는 인간이 그의 친부와 일행이렷다. 여기에서 젊은이의 객기와 노인네의 욕심이 충돌해 비극의 싹이 트고 만다. 마차 타고 오는 노인네 일행이 "여봐라, 길 비켜라" 했을 테고, 젊은 친구는 "니가 비켜라" 하니 쌈박질이 안 나겠는가. 티격태격은 인간들의 일상이니 안 봐도 비디오라, 결국 노인네가 마차에서 지팡이로 젊은이를 내리친다. 가뜩이나 심란한 오이디푸스가 그냥 있겠는가. 일행 한 명 빼고, 노인네부터 싸그리 죽인다. 살아남은 일행은 나중에 이 사건의 증인이 되어 오이디푸스 앞에서 옛 이야기를 진술한다.

테베 인근

스핑크스와의 수수께끼 시합에서 이겨 그를 제거하니, 그 공로로 입성하여 왕비 이오카스테와 한 살림 차린다. 점쟁이 말대로 오이디푸스는 삼거리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살을 섞는, 결코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최악의 고통을 짊어진다. 헬라인들은 이토록 고통을 받아들이며 살았던가. 해양민족이라 험난한 바다의 삶을 그리 풀어내며 살았는진 모르겠으나 실로 무지막지한 이야기다.




교차로 건너려다 생각난 잡념이 끝없이 이어지고 이어져 너무 멀리까지 온 듯하다. 교차로 건너다 뭔 이런 잡념이. 교차로는 그냥 건널 때도 조심하고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도 조심하면 되는 일이다. 어깨조차 닿지 않도록 양보가 미덕이니 그리하며 살자.





#아르테미스 #교차로 #순결 #처녀 #기타리스트 #오이디푸스 #통통 부은 발 #삼거리 #운명 #달의여신 #에페수스 #사냥 #다산 #로버트 존슨 #파우스트

작가의 이전글시칠리아 / 천공의 성 에리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