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York)
영국에서 역사를 잘 담아내고 있는 도시는 어디가 있을까. 떠오르는 도시가 여럿 있을 것이다. 런던(London)이라든지, 바스(Bath)라든지, 에딘버러(Edinburgh)라든지. 이외에도 영국 중부에 영국의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는 작은 도시 하나가 있다. 바로 요크(York)이다. 요크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앞서 언급한 세 도시에 비하면 비교적 덜 알려진 장소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영국의 과거를 볼 수 있는 흔적들이 꽤 많이 있다. 오늘은 요크 도시를 둘러보면서, 영국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려고 한다.
내가 요크를 처음 방문한 것은 내가 브라이튼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브라이튼에서 요크까지는 기차로 약 4~5시간 걸리는 먼 거리이다. 중간에 런던에서 기차를 갈아타기도 해야 하고, 이래저래 요크까지 가는 과정에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래도 주변 현지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고, 내가 알아본 바로도 멀더라도 가볼 만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임 없이 기차에 올랐다. 이 여행은 브라이튼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함께 했었는데, 당일 여행이 아닌 2박 3일 여정이었다. 요크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리즈(Leeds)라는 꽤 규모가 있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 숙소를 잡았고 여행 이튿날을 하루 종일 요크에서 보냈다.
요크 기차역에 내리면 역 바로 뒤편으로 국립 철도 박물관(National Railway Museum)이 있다. 이 박물관에 대한 정보는 함께 갔던 친구가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그 친구가 가보고 싶다고 해서 뒤따라 갔는데,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컸고 내용도 흥미로웠다. 이 박물관은 영국 철도의 모든 역사를 볼 수 있다. 과거의 기차 형태, 그 당시 기차를 이용하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앞으로 나타날 미래지향적인 기차의 모습까지 전시되어 있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장소였는데, 친구 덕분에 흥미롭게 박물관 관람을 하게 되었다. 기차역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요크 여행을 시작할 때 잠시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요크 중심가로 향했다. 요크 거리는 버밍엄과 같은 도시에 비해 조금 더 아기자기하면서도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이 많았다. 과거의 건물로 가득한 거리는 꽤 중후하면서도 멋드러졌다. 예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건물 안에는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점이나 식당, 카페 등이 있었다. 분명 같은 브랜드의 상점, 식당인데, 달라진 건물 분위기 때문에 전체적인 상점이나 식당의 분위기도 더 중후한 느낌을 발산하고 있었다.
중심가를 따라 걸어서 내가 찾아간 곳은 클리포드 타워(Clifford's Tower)이다. 요크 중심가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라서 조금만 걸으면 이 타워가 바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얕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클리포드 타워는 요크 성(York Castle)의 남아있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11세기에 처음 지어진 이 타워는 중간에 소실된 적도 있지만 그 때마다 재건되어 현재까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때는 요크를 지키는 성의 한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클리포드 타워가 자리잡은 언덕을 올라가면 주변의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높이가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요크 전체를 내려다 볼 수는 없지만, 주변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그래도 꽤 인상적이었다. 타워 안으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입장료는 현재(22년 8월 20일) 성인 기준으로 8.1파운드(약 13,000원)이다. 내가 갔을 때는 조금 더 저렴했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가격이 많이 올랐다.
나는 같이 갔던 일행과 타워 안을 들어가봤는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타워 내부는 과거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고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타워 내부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타워 꼭대기에서 요크 시내를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볼 수 있지만, 뒤에 언급할 요크 민스터 대성당 전망대에 올라가면 훨씬 더 높은 곳에서 요크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물론 클리포드 타워의 역사나 현재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충분히 들어가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지만, 개인적으로는 8파운드의 돈을 내고 들어가 볼만한 곳인가라는 의문이 살짝 드는 곳이다.
클리포드 타워를 내려와서 찾아간 곳은 섐블(Shambles) 거리이다. 섐블 거리는 요크 중심가에 있는 좁은 골목길로 중세 시대 정육점이 자리잡고 있더 거리였고, 현재까지 중세 시대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요크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브라이튼에 있던 지인 한 명이 섐블 거리를 추천해줬다. 그러면서 이 거리에 얽혀있는 흥미로운 영국의 역사 이야기도 들려줬다.
섐블 거리의 양 옆으로는 2~3층 규모의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다. 이 건물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대의 건물과는 다른, 어떤 특징 하나가 공통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바로 위로 올라갈 수록 건물이 앞으로 조금씩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1층보다 2층의 면적이 더 넓고, 2층보다 3층의 면적이 더 넓게 지어진 것이다. 과거 영국에서는 이러한 건축 형태를 많이 이용했다고 하는데, 왜 그런 것일까. 본인 소유의 땅 면적보다 집을 조금 더 넓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2, 3층을 조금 더 넓게 만들다 보니까 건물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형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섐블 거리에는 길 양 쪽의 건물이 서로 맞닿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곳도 있다. 요크 섐블 거리는 영국에서 이러한 주거 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섐블 거리를 빠져나오면 눈 앞에 거대한 성당이 나타난다. 바로 요크의 상징인 요크 민스터 대성당(York Minster Cathedral)이다. 요크 대성당을 눈 앞에서 보면 일단 건물의 규모에 압도 당한다. 요크처럼 크지 않은 도시에 이렇게 큰 규모의 성당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요크 대성당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실제로 요크 대성당은 영국에서 큰 규모라고 한다. 요크 대성당에 대한 기록은 7세기부터 남아있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규모의 교회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하고 증축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1472년이라고 한다. 수세기에 걸친 재건과 증축 끝에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성당이 완공된 것이다.
나는 일단 외부에서 성당을 먼저 둘러보았다.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 정말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들이 건물을 수놓고 있다. 영국의 성당을 볼 때마다 건물 외벽에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조각상에 감탄하고는 하는데, 요크 대성당 건물의 조각들은 차원이 달랐다. 웅장한 건물에 섬세함이 가득 담긴 요크 대성당의 외부 모습에 그저 할말을 잃었다. 아름답다, 웅장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다 되지 않아서 어떤 수사를 사용해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저 성당 건물을 말 없이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외부를 충분히 둘러본 후에 성당 내부로 들어섰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그 가격이 조금 비싸다. 현재 기준으로 요크 대성당의 입장료는 성당만 들어갈 경우 12.5파운드(약 20,000원), 타워 전망대까지 올라갈 경우 18.5 파운드(약 30,000원)이다. (성인 기준,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조금 더 저렴하다.) 그리고 오후 4시에 성당 문을 닫기 때문에 너무 늦지 않게 가는 것이 좋다. 성당 규모도 워낙 크고 타워 전망대까지 올라갈 계획이라면 더욱 성당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 적어도 한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그나마 여유롭게 성당과 전망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처음 요크에 갔을 때는 성당 안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두번째로 갔을 때는 4시 이후에 도착해서 성당을 들어가보지 못했다. 그리고 가격이 조금 더 비싸긴 하지만 타워 전망대까지 꼭 올라가 볼 것을 추천한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다소 좁고 가파르긴 하지만, 전망대에 올라서 바라보는 요크 시내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워를 한바퀴 돌면서 요크 시내의 모든 방면을 바라볼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 전망대에 오른다면 요크 외곽까지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 빨간색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요크 시내의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아기자기했고, 예뻤다.
요크 대성당 전망대 말고도 요크를 둘러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요크 성곽을 따라 걷는 것이다. 요크에는 과거에 만들어진 성곽이 아직까지 남아있고, 그 성곽 위를 걸을 수 있다. 서울의 한양도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물론 규모는 한양도성에 비해 매우 작다. 요크 올드타운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한바퀴 도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요크 중심부를 세세하게 둘러볼 수 있는 코스이다. 이와 동시에, 요크 대성당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기도 하다.
내가 요크를 두번째로 방문했을 때 이 성곽길을 따라 걸었다. 요크 대성당을 들어가보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는데, 이 성곽을 걸으면서 그 아쉬움이 거의 해소되었다. 이 성곽길을 따라 걷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요크를 조금 더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요크 여행을 짝꿍과 함께 했는데, 짝꿍도 성곽길을 정말 마음에 들어했다. 영국인이지만 요크를 처음 가본다던 짝꿍이었고, 그래서 요크 대성당을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쉬웠던 것이었는데, 짝꿍도 이 성곽 위에서 아쉬움을 많이 달랠 수 있었다. 물론 다음 기회가 된다면 요크에 꼭 다시 들러서 요크 대성당을 들어가겠다는 다짐을 버리지는 않았다.
이렇게 요크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났다. 요크에 두번 갔었는데, 두번 다 너무 만족하고 돌아왔던 여행이었다. 심지어 짝꿍은 요크에 살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도 얼핏 할 정도로 요크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만큼 너무도 아름다웠고 낭만이 가득했던 도시, 요크였다. 다음에 영국 중부를 여행하게 된다면, 요크는 첫번째로 가야할 장소가 될 것이다. 영국의 그 어느 곳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은 도시가 바로 요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