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모스(Falmouth) - 두 번째 이야기
오늘은 콘월 팔모스(Falmouth)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이다. 다른 동네와 다르게, 팔모스 이야기를 두 번으로 나눈 것은 나와 짝꿍이 팔모스를 여러 번 다녀오면서 이 동네에어 많은 이야기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는 지리적, 군사적 위치, 그리고 바다가 아름다운 동네로서의 팔모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오늘은 젊은 동네 팔모스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럼, 글 하나로 끝내기에는 아쉬었던 팔모스의 두번째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콘월의 다른 작은 동네와는 다르게 팔모스 중심가에는 제법 그럴듯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포트리스(Portreath)에서 그나마 가깝고 영국 주요 기차노선의 역이 있는 레드루스(Redruth)나 캄본(Cambourne) 중심 거리는 5분 정도만 걸으면 끝나는데, 팔모스는 여러 종류이 상점이 양 옆으로 늘어선 중심 거리가 꽤 길게 이어진다. 그 중심 거리에는 카페, 음식점, 옷가게 등 온갖 종류의 가게들이 꽤 많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을 봐도 젊은 사람이 정말 많이 보인다. 이는 이곳 바로 옆 동네에 있는 엑시터 대학교(University of Exeter)의 분교 때문이다. 꽤 규모가 큰 대학교의 분교인 만큼, 많은 학생들이 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자연스럽게 팔모스의 상권이 활발해지는 것이다.
5년 전, 나는 짝꿍과 함께 팔모스를 잠깐 들렀던 적이 있다. 당시 주말에 콘월을 방문했는데, 짝꿍 가족과 외식을 하러 이곳까지 왔고 밥을 먹고 중심가를 잠깐 걷다가 돌아갔다. 그 때는 겨울로 들어서는 초입(11월)이라서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바닷가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래서 이번 여름 전까지 내가 가진 팔모스에 대한 기억은 나름 규모가 있긴 하지만, 춥고 한적했던 동네였다. 하지만 팔모스에 대한 이런 기억은 이번 여름에 완전히 정반대가 되었다. 그 어느 동네보다 활기가 넘치고, 바다가 보이는 부두 위에는 따뜻한 햇살이 가득했으며, 팔모스 앞바다에는 배와 요트가 많았다. 이번 여름의 팔모스는 정말 밝았고, 젊은 느낌이 가득했던 동네였다.
짝꿍과 함께 팔모스 중심거리에 들어섰는데, 이전에는 못 봤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중심거리 위를 형형색색 장식하고 있는 삼각형 모양의 천이었는데, 여름을 맞이해서 거리를 조금 더 밝게 꾸미기 위해 해놓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짝꿍에게 물어봤는데, 짝꿍은 아마 여왕의 즉위 70주년인 플래티넘 주빌리(Platinum Jubilee)를 기념하기 위한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70주년 기념식이 6월에 있었는데, 이 당시 영국 전역에서 이 날을 정말 성대하게 기념했다. 사실 즉위 70주년 기념식이라는 것이 영국 역사에서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기념일이고, 또 앞으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날이기 때문에, 영국 입장에서는 이날을 최선을 다해 기념해야 했던 것이고, 나도 그 모습을 뉴스를 통해 봤다.
우리가 찾은 시기가 기념일이 끝난지 한 달도 더 지난 시기라서 그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영국 곳곳에는 아직도 플래티넘 주빌리를 기념하고 축하한 흔적들이 정말 많이 남아있었다. 거리 위에서 흩날리는 다양한 색깔은 동네의 분위기에 색을 더하고, 거리 분위기를 조금 더 활기차게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팔모스의 거리는 실제로도 활기가 넘치는(여름에만 그렇다...) 거리였는데, 그에 더해 머리 위에서 이런저런 색깔이 부대끼는 모습으로 인해 거리가 조금 더 환해지면서, 더 활발하게 느껴진 것이 아닐까. 이 모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색감 넘치는 동네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이 플래티넘 주빌리의 흔적을 없애지 말고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배에 어떻게 가지? 그리고 자기 배가 어딨는지도 못찾을 것 같아."
"본인 배까지 데려다 주는 작은 보트가 있어."
우리는 팔모스의 중심거리를 따라 걸었다. 팔모스 중심거리는 바다와 평행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이 길을 걷다가 바다 쪽으로 나있는 갈림길로 10초만 들어가면 바로 바다가 나온다. 거리 위에 있는 여러 상점도 들어가보고, 바다가 보이면 바다를 보러 잠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어느 길로 들어서더라도 우리 눈 앞에 바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바다 위에는 여러 종류의 배가 떠 있고, 바다 건너편에는 세인트 마위스(St. Mawes) 동네가 보인다. 파란 바다 위에는 배들이 정말 많았는데, 바다 한가운데 있는 배까지 어떻게 가는 걸까, 그리고 본인 배가 어디있는지는 찾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짝꿍 아버지는 각자 배까지 데려다 주는 작은 고무보트가 있어서, 그 배를 타고 왕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곳에 배를 정박해 두기 위해서는 정박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본인 배를 정박하는 위치가 다 지정이 되어 있고 위치에 따라 정박비도 달라진다고 했다.
짝꿍의 아버지는 팔모스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이곳에서 탈 만한 것들을 세 개 알려주셨다. 첫번째가 바로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세인트 마위스로 가는 배인데,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결국 이 배를 타보지는 못했다. 두번째는 팔모스에서 콘월의 중심이자 콘월의 유일한 '도시'인 트루로(Truro)까지 가는 배로 밀물일 때만 운항이 가능하다고 한다. 팔모스에 트루로까지는 좁은 만이 길게 이어지는데, 이 만이 썰물이 되면 뻘로 변하기 때문에 배가 운항을 못하는 것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보는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고 하는데, 이 배 역시 우리는 타보지 못했다. 팔모스에 갈 때마다 밀물 시간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은 기차로, 역시 팔모스와 트루로를 오가는 코스이다. 영국 북쪽에서 기차를 타고 팔모스에 가기 위해서는 트루로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트루로에서 팔모스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보는 풍경이 아름답기로 많이 알려져있다. 이 기차 역시 우리는 타보지 못했다. 항상 차로만 여행을 하다 보니, 막상 기차를 타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콘월을 찾게 되면 나와 짝꿍에 해야할 것들이 적어도 세 개는 남아있다. 혹시 콘월을 여행한다면, 위에 언급한 세 개 중에 하나 이상을 꼭 타보면 좋을 듯 하다.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현지인의 추천이니까 마음 놓고 추천한다.
콘월에 갈 때마다 날씨는 모두 달랐다. 이 포스팅에 있는 사진에 담겨있는 날씨가 다른 것도 서로 다른 날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씨와 상관없이 팔모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너무 싱그러웠다. 포트리스나 다른 지역에서 바라보는 바다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는데, 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배 때문이었다. 다른 조용한 동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한없이 평화롭고 차분한 느낌이 가득하지만, 팔모스 앞바다에 있는 수많은 배는 팔모스 바다에 활기를 넣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팔모스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보다 활기차고 역동적인 느낌이었다.
팔모스에 갔던 어느 날, 우리는 외식을 했다. 콘월에서 외식한 날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이날이 그 중 하루였다. 우리의 외식 메뉴는 바로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피시앤칩스(Fish and Chips)였다.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지만, 피시앤칩스는 그렇게 특별한 음식이 아니다. 오히려 영국 서민들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길에서 피시앤칩스를 들고 다니거나, 공원에 앉아서 갈매기를 경계하며 피시앤칩스를 먹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렇게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일까. 피시앤칩스는 이름 그대로 피시(생선튀김)과 칩스(감자튀김)을 조합한 음식이다. (영국 영어로 감자튀김은 칩스, chips, 라고 한다; fries는 미국식 영어이다). 그리고 여기에 타르타르 소스나 으깬 완두콩이 함께 나온다. 사실 누구나 상상하는 그 맛이라서, 특별히 맛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 모든 튀긴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피시앤칩스 역시 당연히 맛있었다.
'감자튀김에 식초를...?'
모든 영국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영국사람들이 감자튀김에 식초를 뿌려먹는다. 그래서 피시앤칩스 식당 테이블에는 소금, 후추와 함께 식초가 놓여져 있다.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식초를 날로 먹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맛을 떠나 식초를 감자튀김에 뿌리면 튀김이 눅눅해지기 때문이다. 항상 이 이야기를 짝꿍에게 듣기만 하다가, 이날 짝꿍의 아버지가 그렇게 드시는 모습을 눈 앞에서 봤고, 짝꿍 아버지가 하나 권해서 먹어봤다. 음... 감자튀김은 케첩과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 그리고 짝꿍도 튀김에 식초를 뿌려 먹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나를 이해해주는 내 편이 한 명 있었다는 사실이.
"아빠, 카니발 보러가자!"
"별로 크지도 않은 걸 굳이 왜 보고 싶어?"
"그래도 축제잖아. 즐겁잖아!"
콘월 떠나기 얼마 전, 우리는 팔모스를 다시 한 번 찾았다. 이날 팔모스에서 카니발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간 것이다. 가기 전에 짝꿍 아버지는 사실 그렇게 내켜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딸과 내가 가고 싶다고 하니까 함께 해주셨다. 영국에서 그래도 2년 정도 살았었는데, 카니발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많이 설렜다. 그렇게 설렘 가득한 나를 보면서 짝꿍은 팔모스 카니발을 그렇게 크지 않으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당연하다. 팔모스란 작은 동네에서 하는 카니발이 런던이나 버밍엄과 같이 큰 도시에서 하는 카니발의 규모를 따라갈 수는 없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시골 마을에서 하는 카니발이 조금 더 영국스럽고 전통적인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서 설레는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우리가 팔모스에 도착한 시간은 카니발이 시작하기 두시간 전이었다. 그런데도 팔모스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영국 사람들 뿐 아니라,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들도 꽤 많았다. 영국의 카니발은 어떤 모습일까, 한번도 본 적도 없으면서 마음 속으로 내 멋대로 상상하면서 남은 두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카니발이 열리는 거리로 향했다. 그 거리에는 이미 사람들도 가득했고, 콘월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과 콘월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카니발을 보러 온 것 같았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니발이 시작되었다. 사실 카니발이라고 해서 공연도 하고, 이것저것 체험 행사도 하는 그런 축제를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한국 축제를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팔모스의 카니발은 공연도, 체험행사도 아니라 일종의 퍼레이드였다. 처음에는 올드카 퍼레이드로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독특한 분장을 한 사람들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한가지 의미있는 점은 이 퍼레이드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콘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팔모스의 카니발은 콘월 사람들이 만들고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 축제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축제를 할 때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퍼레이드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레이드는 약 30분 정도 지난 후에 끝이 났다. 중간에 10분 정도를 기다렸으니, 총 퍼레이드 시간은 20분 정도였던 셈이다. 생각보다 짧아서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본 카니발이라 그런지 재미있었다. 처음에 나온 올드카들은 멋있었고, 그 뒤를 따라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고 흥겨웠다. 지역 사람들이 축제에 흥겹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졌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이어가려는 그들의 노력이 엿보이기도 했다. 독특하면서도 흥미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팔모스에서의 이야기는 카니발이 마지막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카니발은 더없이 좋은 소재가 아닐까.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팔모스를 찾은 것은 3~4번 정도이다. 콘월에서 기념품을 산다거나, 어떤 종류든 쇼핑을 하기 위해서는 이곳 팔모스나 중심도시인 트루로로 가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팔모스에 갈 때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눈에 띄는 상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의식한 적은 없었지만 팔모스에 여러 번 가게된 작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쇼핑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팔모스를 많이 찾았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활기 넘치는 동네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워낙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만 보다가, 이렇게 활기 넘치는 젊은 동네에 오면 순간적으로 그 분위기에 취하게 되고, 그 때의 감정과 느낌이 꽤 좋기 때문이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사람 속에 섞여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