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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월 여행] 작은 섬 위 고성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St.Michael's Mount)

by 방랑곰


영국에 가기 전부터 짝꿍이 콘월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꼽은 장소가 몇 군데 있다. 그 중의 한 곳이 오늘 소개하는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St. Michael's Mount)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름도 길어서 잘 외워지지도 않는 이 생소한 장소를 왜 꼭 가봐야하나라는 의문도 들긴 했지만, 그래도 현지인이 추천하는 장소인 만큼 기대감을 가지고 이 지역으로 향했다. 오늘 포스팅은 콘월의 명소,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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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를 가기 위해서는 포트리스에서 콘월의 반대편으로 넘어가야 했다. 우리는 약 30여분을 운전해서 마라지온(Marazion)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가는 길에 우리는 아주 작은 콘월의 동네를 꽤 많이 지났다. 그 중 일부 동네는 동네 안에 펍이 한 개도 없고 단 몇 채의 주택만 있는 마을도 여럿 있었다. 과거에도 작긴 했지만, 그래도 여러 가구가 함께 살아갔던 마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마을에 주민들이 점차 사라지고 건물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펍이나 다른 마을회관 같은 장소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눈도 깜빡이지 마! 깜빡이는 순간 이 마을을 못 보고 지차니게 될 테니."


어느 한 마을을 지나면서 짝꿍의 아버지가 눈도 깜빡이지 말라고 하면서, 눈 깜빡 하는 순간 이 마을을 지나치게 될 거라고 했다. 그 마을의 이름이 기억나진 않지만, 정말 코너 하나만 돌면 끝나는, 건물 6~7개가 전부인 아주 작디 작은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을까. 짝꿍 아버지는 두 세개의 건물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는 있다고 하셨다. 너무도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운전해서 가거나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정말 클 것 같았다. 콘월은 돌아다닐수록 이런 마을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렇게 거주민이 줄어들어 이미 소멸되거나, 거의 소멸 직전에 이르고 있는 마을의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데 우리나라의 시골 마을이 처한 현실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 정작 시골 마을은 소멸의 길로 향하고 있는 현실 말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모든 상황이 얽히고 얽혀,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 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영국도 각자의 전통을 잘 갖고 있는 이런 작은 시골 마을이 살아남아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머물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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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마라지온도 역시나 작은 마을이었다. 물론 이곳에 오면서 지났던 마을에 비하면 큰 편이지만, 포트리스나 레드루스(Rudruth)에 비하면 마을의 크기는 훨씬 작았다. 하지만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를 품고 있는 덕분에, 마라지온에는 활기가 넘쳤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았고, 마을 안에는 펍도, 카페도 있었다. 그리고 그 펍과 카페 안에는 왁자지껄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의 목적지로 가기 전에 마라지온이라는 마을을 잠시 둘러보았다. 마을이 워낙 작아서 10분도 채 안 걸었는데, 마을의 끝에 다다랐다. 마라지온은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물씬 나면서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 마을 곳곳에서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살까 하다가 일단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를 갔다가 나오는 길에 사기로 하고, 우리가 이곳까지 온 목적을 찾아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집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을 따라 바닷가로 향했다. 그 길의 끝에 다다르면 넓은 해변과 광할한 바다가 나오고, 그 바다 위에는 작지만 특별해 보이는 섬 하나가 나타난다. 그 섬은 높지 않은 언덕으로 되어 있고, 그 언덕 위에는 고풍스런 고성 하나가 늠름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섬이 바로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이고, 이 섬을 가기 위해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다. 이 섬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마라지온 해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많은 관광객이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만을 목적으로 마라지온이라는 작은 마을을 찾아오지만, 마라지온은 해변이 좋은 동네로도 알려진 곳이다. 실제로 마라지온 해변은 꽤 넓었고 모래도 정말 고와서, 여름바다를 즐기기 더할나위 없이 좋아보였다. 해변 위를 뛰어노는 아이들도 많았고, 해변 위에 누워 온몸으로 햇빛을 받아내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마라지온 해변이 좋은 점은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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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섬 안으로 가볼까? 여기 시간 지나면 갇힐 수도 있어."


우리는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의 섬으로 연결되는 돌길 위를 걷기 시작했다. 이 길 위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섬 안으로 들어가고, 또 관람을 마치고 섬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짝꿍이 이 길은 시간을 잘 맞춰서 와야 건널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 의미는 밀물로 물이 차오를 때는 이 길이 사라졌다가, 썰물이 되어야 길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날 이곳의 물때표를 미리 검색해서 시간에 맞춰서 갔기 때문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혹시 이곳을 찾아가고 싶다면 인터넷으로 콘월 물때표를 미리 찾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멀리까지 여행갔는데 물때가 맞지 않아서 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많이 아쉬울 테니 말이다.

*구글에 'Cornwall tide times'라고 검색하면 콘월의 물때표를 지역별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따라 섬을 향해 걸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울 줄만 알았다. 섬 안을 천천히 둘러보려던 우리의 계획은 섬 안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다다르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입구에 도착하기 전부터 불길한 느낌은 조심스레 찾아오고 있었다. 섬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일까. 우리는 궁금하면서도 약간의 불길한 느낌을 애써 지운채 섬 입구에 도착했고, 그제서야 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일단 아름답고 웅장한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의 모습을 살펴보고 지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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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저기 모여 있는 거지? 뭔가 불안한데...?"


그렇다. 섬 입구에서는 예약하지 않았거나, 티켓을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입구에서는 표를 판매하고 있지도 않았다. 표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하거나, 섬을 건너오기 전에 있는 작은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매표소란 것이 일종의 이동식 트럭처럼 되어 있어서 전혀 매표소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매표소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서 섬 입구까지 도착한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섬에 들어가는 방법은 들어온 길을 돌아나가서 표를 구매하고 오거나, 그 자리에서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티켓을 구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렇게 운영을 할거라면 매표소를 조금 더 눈에 띄게,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음... 일단 여기에서 이 장소에 대한 매력이 조금 떨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무료였는데? 돈을 내야 한다고...?"


그리고 짝꿍이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몇 년 전에 짝꿍이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이곳에 들어가는 것이 무료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도 섬 위에 있는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은 돈을 내야했지만, 성 아래 있는 항구와 역사마을 구역은 무료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섬 전체가 유료화되어 버렸다. 성을 안 올라가고 아래 구역만 둘러보는 가격이 14파운드(약 22,000원)이고, 성까지 올라가는 것은 24파운드(약 38,000원)였다. 음... 여기에서 이 장소에 대한 매력이 많이 떨어졌다. 너무 대놓고 돈장사를 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짝꿍도 이 사실을 알고 분개했다. 결국 우리는 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짝꿍도 나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도 했고, 섬이 워낙 작아서 섬 바깥에서도 마을과 항구의 모습을 충분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 위로 올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는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짝꿍도 나도 이 섬에 돈을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걸어 들어간 길을 그대로 돌아나왔다.

*이 글을 올리면서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까 현재 항구 및 마을 구역 입장은 무료이고 성에 들어가는 가격이 14파운드라고 되어있다. 10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이 가격이 적용된다고 하니, 여름 시즌에만 한시적으로 입장료를 올린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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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라지온 해변에는 섬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해변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인데, 이 바위는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고 바위 위에 올라가면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의 섬과 성, 그 주변으로 이어지는 바다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섬으로 이어지는 길과 그 위를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보인다. 이 때 물이 조금씩 차고 있어서 한두시간 후면 저 길도 사라질 것 같았다. 섬 입구에서는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몇 시 전까지는 반드시 나오라고 당부하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렇다고 해서 섬 안에 갇힌 사람을 그대로 두지는 않는다. 듣기로는, 섬 안에 있는 배로 관광객들 날라준다고는 하는데 따로 비용을 내야하는지는 모르겠다. 콘월의 많은 관광지에 붙은 입장료에 불만이 한가득이던 짝꿍이 한마디했다.


"당연히 돈 받겠지. 저들이 공짜로 태워줄리가."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섬 안으로 들어가는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에 불만이 있던 나도 짝꿍의 의견에 동조했다. 당시 우리의 기분으로는 섬에 들어가는 데 돈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라지온 해변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그 풍경이 우리의 기분을 달래줬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 앞에 있는데, 기분 상해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광경을 마음껏 즐길 뿐이었다. 우리 뒤로는 작고 아기자기한 마라지온 마을의 모습이, 우리 양 옆으로는 마라지온 해변에 길게 뻗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풍경이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면서 우리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제법 단단한 모래로 된 해변이라 걷는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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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의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해변을 따라 걸으면서도 우리의 시선은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를 보면서 영화에 나올 법한, 아름답고 웅장한 고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성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걸었고, 이내 우리는 해변을 빠져나와서 마라지온 마을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곳에서 차를 타고 마라지온 바로 옆에 있는 동네, 펜잔스(Penzance)로 향했다. 펜잔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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