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잔스(Penzance)
오늘은 영국 기차가 멈추는 남쪽 끝에 위치한 도시, 펜잔스(Penzance)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와 짝꿍이 왜 이곳을 찾게 되었고,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졌는지를 이 포스팅에 담아낼 것이다. 그리고 영국 남쪽 끝에 위치한 작은 도시, 펜잔스의 아름다운 모습도 보여줄 것이다. 그럼 오늘의 포스팅을 시작한다.
"펜잔스는 콘월 남부의 중심 도시야. 그래도 별로 크지는 않지만."
우리는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St. Michael's Mount)에서 펜잔스로 넘어갔다. 펜잔스는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가 위치한 마라지온(Marazion)에서 매우 가깝다. 차 탄지 10분도 채 안됐는데, 우리는 벌써 펜잔스 시내에 접어들고 있었다. 펜잔스에 들어가는 입구는 영국을 대표하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3개(테스코, 세인스버리, 모리슨스)가 모두 근처에 있었다. 이렇게 대형마트가 모여있기 때문에 콘월 여러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러 펜잔스를 찾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대형마트 안에는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콘월과 같은 시골마을에서 만남의 장소로도 많이 활용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펜잔스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항상 차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가 방문했던 시기가 여름 휴가 시즌이라 차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았다.
펜잔스는 콘월에서 트루로(Truro) 다음으로 두 번째(혹은 세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두 번째가 팔모스(Falmouth)인지, 이곳 펜잔스인지에 대한 의견은 다소 갈리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펜잔스가 콘월을 대표하는 도시라는 사실이다. 트루로는 콘월의 수도이고, 팔모스는 바로 옆에 있는 엑시터 대학교가 도시의 규모를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펜잔스를 이렇게 크게 만든 주요 요인은 무엇을까. 이는 바로 기차역이다. 펜잔스 시내에 있는 펜잔스 역은 영국을 가로지른 후에 콘월로 내려오는 기차가 마지막으로 멈춰서는 종착역이다. 그렇다 보니까 콘월 남부로 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 역에서 내려야 하고,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펜잔스 동네도 커진 것이다. (계속 펜잔스 도시가 크다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콘월에서 큰 것일 뿐, 영국의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하면 여전히 시골 마을이다.) 그리고 여름이면 펜잔스를 거쳐가는 여행객이 정말 많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펜잔스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차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펜잔스 시내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해변가에 차를 대고(운이 좋게도 차를 댈 공간이 딱 한군데 있었다) 약 5분 정도 걸어서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라고는 하지만 모든 거리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규모는 작다. 그래도 유동인구가 워낙 많아서인지, 시내에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상점은 많이 있었다. 우리는 펜잔스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중간중간 관심이 가는 상점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멋드러진 건물 앞에서는 사진도 찍었다.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와 마라지온에서 시간을 보낸 후라서 시간이 어느덧 5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펜잔스 시내의 상점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영국 상점은 대부분 6시면 문을 닫는다.) 그래서인지 시내는 한적했다. 바다 옆으로 난 길은 아직도 차들로 붐비는데, 시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이리저리 거닐다가 시내 한가운데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어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영국의 주요 은행 중 하나인 로이드 은행(Lloyds Bank) 건물이었는데, 전혀 은행 건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 시청 건물이나 교회 건물이었던 것을 은행으로 바꾼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 돔이 있고, 세로로 길게 만들어진 구조로 보아 교회 건물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건물을 보고 있는데 짝꿍 아버지가 콘월의 현실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예전에는 일정 규모 이상이 되는 콘월 시골 동네에는 모두 은행 지점이 하나씩은 있었고, 지점이 아니라도 돈을 찾을 수 있는 ATM이 있었는데, 요즘 시골 동네의 은행 지점이나 ATM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돈을 찾으러 이웃 동네까지 가야 하고, 은행 업무를 보려면 펜잔스와 같은 주요 거점까지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 있는 이 로이드 은행도 언제 없어질지 몰라.
이것마저 없어지면 은행 가려고 1시간 넘게 버스 타고 트루로까지 가야돼."
물론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은행의 입장도 완전히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은행 측에서는 인터넷으로 처리 가능한 업무가 많아지면서 은행 지점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콘월과 같이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인구의 대부분은 노인이고, 그들은 인터넷과 그렇게 친하지 못하다. 그래서 은행 지점은 오히려 콘월과 같은 시골마을에 더 남겨두고 젊은 사람이 많은 도시의 지점은 한두개 줄이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우리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바닷가 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사람이 별로 없는 거리는 한적하고 조용했다. 펜잔스로 들어오는 차들도 도심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바닷가 옆길을 따라 펜잔스를 거쳐가는 차들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도심이 훨씬 더 조용했다. 도심의 규모는 트루로와 팔모스보다는 다소 작았지만, 다른 동네에 비하면 꽤 큰 편이었다. 무엇보다 길가에 사람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도심에서 활기가 느껴졌고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길가에 걸려 있는 현수막과 거리 위에 흩날리고 있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플래티넘 주빌리의 흔적들을 보면서, 그리고 대형 깃발을 매달고 있는 여러 펍들이 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우리가 길을 따라 내려오자 펜잔스 기차역이 나왔다. 사실 외관은 다른 기차역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긴 하지만, 영국의 남쪽 끝 종착역이라는 일종의 상징성 때문에 이 기차역이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모든 기차가 여기에서는 멈춰야 하고, 콘월 남부 사람들이 외부로 나가는 거의 유일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장소이다. 도시간 이동하는 버스(Coach)도 있긴 하지만, 시간이 워낙 오래 걸려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차를 선호한다. (하지만 기차마저도 제멋대로 연착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꽤 많은 것은 함정이다.) 물론 거리가 워낙 멀어서 기차도 오래 걸리긴 한다. 펜잔스에서 런던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리고, 버밍엄까지는 6시간 정도 걸린다.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딘버러까지는 9시간 정도 기차를 타야 한다. 영국의 국토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닌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영국의 철도 시스템이 다소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철도 시스템에 대해서는 언젠가 한 번 자세하게 이야기할 예정이다. (나도 짝꿍도 영국 철도에 대해 할말이 많다...)
"오늘 마트 갈까? 한국에 가져갈 선물도 사야하는데."
"그래? 그럼 펜잔스에 있는 마트 가자."
그렇게 펜잔스를 첫 번째 방문했던 날은 끝이 났다. 이렇게 펜잔스를 다시 안가게 될 줄 알았는데, 우리의 영국 여정이 끝나기 얼마 전에 짝꿍이 마트에 가자고 했고, 짝꿍의 아버지는 펜잔스에 있는 마트로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트에 가기 위해 펜잔스까지 갔다. 펜잔스에 있는 세 개의 마트 중에서 우리는 세인스버리(Sainsbury's)를 선택했다. 짝꿍 가족이 여기에 있는 카페테리아를 종종 찾는다고 해서, 우리도 쇼핑을 하고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세인스버리에서 큰 길 하나를 건너면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인스버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을 열심히 주워담았다. 한국 마트와 마찬가지로, 영국도 대형 마트에 가면 필요한 것들을 모두 살 수 있어서 참 편리하다. 우리가 남은 기간에 먹을 식재료, 한국으로 가져올 물건들, 한국 지인에게 선물할 물건 등을 이날 많이 샀다.
약 1시간 정도 장을 보고 우리는 마트 2층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올라갔다.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데, 자리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아주 좋은 카페였다. 이곳에서 커피를 주문해서 잠시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마트 카페테리아는 커피와 같은 음료뿐만 아니라, 피쉬앤칩스, 파이, 햄버거 등과 같은 음식도 판매한다. 이런 식사 메뉴는 일반 식당에 비해 가격은 훨씬 저렴한데, 모든 식재료를 마트 1층에서 공수한다고 한다. 즉, 이곳에서 판매하는 모든 음식이 세인스버리 냉동고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사실 냉동이라는 편견만 조금 걷어내면 음식의 질은 가격 대비 나쁘지는 않다. 그래서 짝꿍 가족은 외식을 하고 싶을 때 이런 대형 마트 카페테리아로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오, 여기 블랙베리 진짜 많다! 나 어릴 때 이거 많이 따고 놀았는데!"
카페테리아에서 잠시 쉬고 난 후에, 우리는 세인스버리 건너편에 있는 바닷가로 향했다. 이 바닷가에는 긴 해변과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고, 작은 섬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도 멀리 보인다. 우리는 바다를 보면서 잠시 산책을 즐기기로 하고, 횡단보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횡단보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짝꿍이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차들만 쌩쌩 다니는 도로 뿐이었는데 왜 멈춘 것일까. 돌아보니 짝꿍이 어떤 열매를 열심히 따고 있었다. 그 열매가 바로 블랙베리이다. 블랙베리는 영국에서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열매 중 하나로, 영국 사람들을 이 열매로 잼을 만들어 먹거나 요리에 활용하기도 한다.
짝꿍은 이 열매를 보자마자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렸다. 짝꿍이 어릴 때 길가에 있는 블랙베리를 많이 따러 다녔다고 한다. 이걸 따서 집에 가지고 가면 할머니가 잼이나 파이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고 하다. 그래서 그 파이를 먹기 위해서 따기도 했지만, 이것은 당시 짝꿍과 짝꿍의 동생에게 일종의 놀이였다. 여느 시골 마을과 마찬가지로 포트리스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짝꿍이 함께 놀 수 있었던 상대는 자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짝꿍과 짝꿍의 동생은 블랙베리를 따러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 블랙베리를 따는 것이 정말 재밌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짝꿍은 길가에 있는 블랙베리를 몇 개 따서 나에게 맛보라고 줬다. 맛은 신맛이 다소 많이 나는 딸기 같았고, 안에 있는 씨가 딸기보다는 조금 더 딱딱해서 톡톡 터지는 듯한 느낌이 난다. 나는 꽤 맛있게 먹었는데,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 짝꿍은 생으로 먹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이렇게 길가에서 마주친 블랙베리로 인해 짝꿍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러모로 콘월을 여행하면서 짝꿍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그리고 깊이 알아가고 있다.
우리는 바닷가를 따라 잠시 산책을 한 후에 집에 가기 위해 세인스버리로 돌아왔다. 세인스버리 앞 바닷가는 콘월의 여느 해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말을 즉, 이곳의 바다도 역시 아름다웠다는 의미이다. 콘월은 어딜 가나 이렇게 광할한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 준다. 펜잔스는 콘월을 여행한다면 들러볼 만한 동네이다. 기차를 타고 간다면 기차길의 종착지까지 가 보는 것을 어떨까. 이렇게 오늘의 콘월 여행기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