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자드(Lizard)
오늘 콘월에서 소개할 장소는 영국 땅의 최남단인 리자드(Lizard)이다. 이곳은 작지만 아기자기하면서 예뻤던 마을과 드넓게 펼쳐지는 영국 남쪽 바다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럼 콘월에 위치한 영국 최남단의 작은 마을, 리자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 여기 예쁜데? 뭔가 영국스럽지 않아! 지중해 근처에 있는 마을 느낌인데?"
영국의 최남단 리자드는 매우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하지만 다른 평범한 시골 마을과는 마을의 분위기나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일단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부터 유난히 다채롭고 예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 대부분의 작은 시골마을에서는 다양한 색깔을 찾아보기 힘들다. 시골마을 특유의 아기자기하면서도 고즈넉한 매력이 담겨 있긴 하지만, 주로 단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리자드는 달랐다. 이곳에서는 정말 다양한 색깔을 찾아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마을의 분위기가 동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짝꿍도 이 마을을 스윽 훑어보더니 영국스러운 느낌보다는 남부 유럽에 있는 색감 가득한 작은 마을 같다고 얘기했다. 하늘색, 빨간색, 하얀색 등 다양한 색감이 어우러진 리자드는 콘월에서 지금까지 봤던 마을 중에 가장 예뻤다.
작은 마을을 이리저리 가로질러 우리는 영국의 최남단 지점을 향해 걸어가지 시작했다. 리자드 마을에서 최남단 포인트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남짓 걸리는데, 가는 길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좋은 산책 코스였다. 여러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을 지나면, 허허벌판 위에 동떨어진 건물 한채가 놓여 있기도 하고, 너른 들판과 그 뒤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난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벗삼아 걷다 보니, 우리 바로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최남단 포인트로 가는 길목에 여러 집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카페나 기념품 가게 등이었다. 이렇게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작은 시골마을까지 이런 가게가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배를 타면서까지 마라도를 찾아가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갔던 날에도 리자드 포인트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영국 최남단 포인트라는 사실을 빼면 이곳의 풍경은 콘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바닷가와 매우 비슷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양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 그리고 바다를 보면서 해안절벽 위를 걸을 수 있도록 마련된 트레킹 코스까지,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콘월의 해안가 모습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최남단이라는 단어 하나가 더해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이곳까지 찾아오는 것이다. 과연 최남단이라는 말이 없이, 그냥 영국 콘월의 시골마을 리자드라는 수식어만 있다면 과연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언어의 힘이, 그리고 해당 지역에 부여하는 의미 등이 관광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우리도 최남단이라는 의미에 끌려서 이곳까지 찾아왔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영국에서 가장 남쪽 끝에 서 있었다. 그곳에는 아름다우면서도 파란 바다가 어김없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웅장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 절벽과 그 위에 펼쳐지는 평원을 양 옆에 두고, 우리는 바닷가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바다 위에는 작은 섬 몇 개가 귀엽게 떠 있고, 그 뒤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 실제로는 콘월의 다른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최남단이라는 수식어 때문인지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딜가나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와 해안선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로 콘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눈부시게 푸른 바다가 일상이고 동네 앞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길을 따라 내려가니까 바다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그곳에는 해안절벽 아래 숨어있는 정말 작은 해변 하나가 있었다. 해변 위로 넘실대고 해안절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는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잠시 앉아있었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5분 정도 지난 후에 강아지 두 마리가 이 해변으로 내려왔다. 주인이 목줄을 풀어주자마자 그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바닷물 파도타기도 하고 헤엄도 치면서 신나게 한참을 놀았다. 그리고 주인은 그 강아지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한참을 내버려두었다. 바닷물 속에서 너무도 신나하는 강아지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편으론, 그 강아지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과 함께 마음껏 뛰놀면서 살아가는 그 강아지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리고 우리나라 아파트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강아지들, 밖에 나갈 때조차 유모차를 타고 가야 하는 강아지들, 달리는 것이 그들의 본성인데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많은 강아지들이 안타까웠다.
"저 사람들 왜 망원경을 들고 있는거지? 바다에 뭐가 있는건가?"
우리는 한참을 바다 옆에서 앉아 있다가 집으로 가기 위해 내려갔던 길을 다시 걸어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관광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려는데, 모든 사람들 손에 망원경이 들려있고 그들은 그 망원경으로 바다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에 뭐가 있길래 망원경으로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걸까. 짝꿍과 함께 가이드의 설명을 잠시 엿들었고, 이내 우리는 사람들이 열심히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물개였다. 영국 콘월 바닷가에는 물개가 많이 서식하고 있고, 콘월 곳곳에서 물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물개를 보고 싶었는데, 우리 손에는 망원경이 들려있지 않았다. 그리고 물개는 바다 속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어서 망원경 없이는 그것이 물개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다음에 콘월에 가게 된다면 챙겨야 할 물건이 하나 늘었다. 망원경을 들고 가서 바다를 열심히 관찰해야겠다.
영국 최남단에서 바다를 실컷 보고 우리는 다시 리자드 마을로 돌아왔다. 바닷가에서 마을로 향하는 길이 한적하고 고즈넉한 시골길이라 걷는 즐거움이 물씬 느껴졌다. 올라오는 길에 보이는 리자드의 마을은 영화에서 서양의 외딴 시골마을을 묘사하는 장면과 비슷했다. 이곳이 실제로 영국의 외딴 시골마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영화가 현실을 잘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마을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여름에 방문해서인지 마을 곳곳에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고, 안 그래도 색감 다양한 마을인데 꽃들이 마을에 색감과 생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영국 최남단 포인트에서 바다를 보기 위해 찾아온 곳이었는데, 리자드 마을이 예상보다 훨씬 더 예쁘고 아기자기해서 예상치 못한 선물 하나를 받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영국의 최남단, 리자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 찾아가기 쉬운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국 최남단이라는 의미를 찾아서 여행한다면 흥미롭게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