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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월 여행] 콘월의 수도

트루로(Truro)

by 방랑곰

콘월을 여행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도시가 하나 있다. 바로 콘월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콘월의 수도인 트루로(Truro)이다. 트루로는 콘월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거쳐가는 곳으로, 콘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도 콘월에 머무는 동안 트루로는 두세번 정도 다녀왔다. 오늘은 트루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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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장한 성당이 자리한 동네


영국에서 도시라고 불리는 지역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도심 한복판에 대성당이 있다는 점으로, 트루로에도 거대한 규모의 대성당이 도시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트루로도 영국에서 도시의 범주에 들어가고, 콘월에서는 유일하게 대성당이 위치한 지역이다. 영화 '어바웃타임'에도 나온 트루로 대성당은 콘월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렀다 가는 장소이자, 콘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도 하고 주요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트루로에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는 당연히 트루로 대성당으로 가장 먼저 향했다. 그런데 항상 열려있어야 할 대성당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우리는 대성당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을 발견했다.


"성당에 오늘 못 들어가요? 문이 닫혀 있던데...?

"이번 주 내내 대학교 졸업식이 성당에서 진행돼요. 다음 주부터는 정상적으로 입장 가능해요."


그렇다. 우리가 갔던 그 주에 콘월에 있는 한 대학교(대학교 이름은 잊어버렸다.)의 졸업식을 성당에서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 졸업식은 주로 대학교 내부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대학교 내부가 아니라 도시의 주요 시설에서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짝꿍도 대학원 대학 건물이 아닌, 도심에 있는 국제 콘퍼런스가 열리는 건물에서 졸업을 했다. 이처럼 트루로 대성당은 종교적인 상징을 넘어 콘월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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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갔던 날 들어가보지 못했던 트루로 대성당 내부는 트루로에 다시 간 날 들어갈 수 있었다. 다른 일정으로 트루로를 재방문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의 주요 성당 안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에 트루로 대성당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사실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었는데, 늦게라도 성당을 둘러볼 수 있어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트루로 대성당 정말 커! 시골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걸?"


짝꿍은 트루로에 가는 차 안에서 트루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트루로는 짝꿍이 콘월에 머물 당시 쇼핑을 하러 주로 가거나, 짝꿍 가족과 교회를 가기 위해 가던 곳이었다. 지금까지 갔던 콘월의 동네와는 다르게 제법 도시다운 모습를 보여주는 곳이라고도 했다. 트루로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성당의 규모를 많이 이야기했다. 보통 주요 도시가 아닌, 지방 도시에 있는 대성당은 그렇게 크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트루로 대성당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성당이 얼마나 크길래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트루로에 들어서자 거대한 건물의 첨탑이 보였다. 바로 트루로 대성당의 첨탑이었고, 그 첨탑을 바라보는 나에게 짝꿍은 한마디를 던졌다.


"거봐! 내가 크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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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성당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트루로 대성당은 입장료를 받지 않고 관람객에게 기부를 받고 있었다. 여기서 기부는 말 그대로 기부, 즉 관람객의 자유 의사에 따른 것이다. 기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당연히 기부 금액도 상관없다. 이 기부금은 대성당의 유지보수에 사용된다고 하는데,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기부금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소정의 금액을 기부통에 넣었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이렇게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공간은 마땅히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곳에 돈을 사용하는 데는 망설이지 않았다.


트루로 대성당은 외부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내부도 정말 컸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수수한 멋이 물씬 느껴지는 대성당이었는데, 성당 벽면에 자리하고 있는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성당에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 성당 안에 있던 사람의 대부분은 관광객이었지만, 이 성당은 여전히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성당을 이리저리 둘러보면 종교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콘월의 역사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영국 역사에서 종교를 빼놓지 않고서는 역사를 설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성당 내부를 충분히 둘러본 후에 밖으로 나왔다. 성당 뒤편에는 성당 건물로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이 가득한 작은 정원이 있었고, 그 위에 앉아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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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보고 트루로 중심 거리로 향했다. 콘월의 수도답게 트루로 중심거리는 꽤 큰 편이었다. 콘월 남부의 중심 지역인 팔모스(Falmouth)나 펜잔스(Penzance)와 비교해도 훨씬 더 컸다. 당연하게도 이곳에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있었고, 영국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점도 많았다. 우리는 콘월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도시 분위기를 만끽했다.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나 아름다운 바다를 한껏 볼 수 있는 해안가를 다니는 것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도시의 공기는 달콤했다. 중심 거리는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중앙 광장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광장 주변에는 트루로 시장도 있고,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상점과 브랜드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와 짝꿍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쇼핑도 하고 시골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이렇게 트루로에는 많은 편의시설이 모여있다. 하지만 짝꿍 가족은 이렇게 생활 편의시설이 트루로에 편중되어 있는 사실에 불만을 표했다. 아무래도 콘월의 수도다 보니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이곳에 밀집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짝꿍 가족도 그 부분은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마을에 있던 은행이나 우체국과 같은 일상 생활에 밀접하게(또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시설이 사라지면서, 그들이 이러한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트루로(또는 다른 거점 마을)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그렇게 편하지 않고 노인 인구 비중이 높은 시골 마을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현실이 콘월의 작은 마을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꽤 큰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짝꿍의 가족도 그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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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트루로 시내를 뒤로하고 우리는 차를 타고 약 5분 정도 이동했다. 불과 5분 이동했는데, 활기 넘치는 시내와는 전혀 다른 조용하고 고즈넉한 공원이 우리를 마주했다. 이 곳은 트루로 시내 외곽에 있는 보스카웬 공원(Boscawen Park) 공원이다. 꽤 작지 않은 이 공원에는 여러 꽃들이 여름 햇살을 맞이하기 위해 봉우리를 활짝 열고 있었고, 그 곁에는 늠름한 나무들이 지켜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놀이터도 있어서, 이곳에는 재기발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리고 공원 앞에는 트루로 강(Truro Rive)이 흐는데, 이 강은 트루로에서 팔모스로 향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썰물 시간이라 강 바닥에 있는 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우리는 집에 가기 전에 공원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사실 이 공원은 다른 공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저 평범한 공원이다. 사람들은 산책하러 나오고, 아이들은 뛰어놀기 위해 나오는 곳. 그렇게 동네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곳. 그러면서도 결코 붐비거나 정신없지는 않아서 조용히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곳. 영국에서 공원은 이런 공간이다. 영국의 다른 공원처럼 이 보스카웬 공원도 영국 가족들이 저마다의 목적에 맞게 공원을 찾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처럼 공원을 천천히 걷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기도 했다. 공원에서 짝꿍 가족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이 콘월에서 살아가는 삶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콘월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늘어놓긴 하지만, 콘월에 대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애정의 크기는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애정이 있기에 불만이 눈에 보이는 것이고, 그런 불만은 콘월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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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뒤로하고 우리는 포트리스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콘월의 수도인 트루로에서 있었던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보았다. 다음에 콘월을 다시 가게 된다면, 트루로는 분명히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콘월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서는 트루로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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