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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월 여행] 전설이 깃든 마을

틴타겔(Tintagel)

by 방랑곰

우리의 콘월여행은 짝꿍 가족의 집이 있는 포트리스에서 항상 시작한다. 그래서 포트리스에서 가까운 곳과 짝꿍 가족이 자주 찾는 지역을 먼저 여행했다. 이제는 포트리스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찾아갈 시간이 왔다. 오늘은 포트리스에서 1시간 넘게 떨어진 곳, 콘월 북쪽에 있고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동네인 틴타겔(Tintagel)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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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조금 멀리 갈거야. 1시간 이상 걸리니까 조금 빨리 출발하자."


우리가 콘월에 머무르는 동안 여행 장소 결정은 항상 전날 저녁 먹으면서 이루어졌다. 항상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와서 숙소에 대한 걱정이 없기 때문에 미리 정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저녁을 먹으면서 다음날 어디를 갈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콘월 북쪽에 있는 틴타겔에 가기로 했다. 포트리스에서 비교적 가까우면서 짝꿍 가족이 자주 가는 콘월 남쪽에서는 주요 장소를 모두 다녀온 탓이다. 포트리스에서 틴타겔까지는 한시간 반정도 걸린다. 이렇게 멀리 가는 김에 우리는 틴타겔 주변에 있는 장소 한곳을 더 보고 돌아오기로 했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출발 시간은 조금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을 먹자마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중간에 교통 체증으로 인해 1시간 반 이상이 걸려서야 틴타겔 마을에 도착했다.

틴타겔 마을에는 이미 차도, 사람도 많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틴타겔에 대해서 짝꿍이 설명해 주면서, 콘월을 찾는 많은 여행객들이 들렀다 가는 장소라고 했다. 틴타겔은 영국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유적, 틴타겔 성(Tintagel Castle)이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가치를 찾아서 이곳까지 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가치는 역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틴타겔은 아늑하면서도 잔잔한 해변과 파란 바다, 그리고 틴타겔 성 유적이 남아있는 섬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틴타겔을 찾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것이다. 역사를 쫒는 여행객과, 우리처럼 눈이 즐거운 풍경을 찾아가는 여행객들이 모두 찾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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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들어갈까? 근데 성은 흔적밖에 남아있지 않아..."

"음... 그러면 가격이 조금 비싼데...? 그냥 밖에서 볼까?"


틴타겔 마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을을 가로질러 곧장 틴타겔 성을 향해 걸어갔다. 마을에서 틴타겔 성 입구까지는 약 10분 남짓 걸어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틴타겔 성 유적이 있는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오늘쪽은 틴타겔 성 아래에 있는 해변과 바다로 향하는 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갈등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틴타겔 성 유적을 보러 섬으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해변에서 조금 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것인지를 고민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섬에 들어가도 성은 폐허가 되어 흔적만 볼 수 있는데 굳이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들어갈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는 곧장 해변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틴타겔 성의 입장료는 현재(23년 1월) 기준으로 14.8파운드(약 23,000원)이다. 하지만 성수기인 여름에는 입장료가 더 비싸진다.


여전히 길은 계속해서 내리막이었고, 반대편에서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잠깐 내다볼 수 있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까 틴타겔 성이 있는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한 눈에 들어오는 포인트가 있었다. 섬을 연결하는 다리는 꽤 높고 길었고, 그 위에는 성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렇다면 틴타겔 성은 과연 어떤 유적일까. 과연 어떤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있길래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틴타겔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바로 아서왕에 대한 것이다. 아서왕은 브리튼족의 전설적인 군주로 허구나 민담을 통해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이 인물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서왕이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한 여부와 관계없이 틴타겔 성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를 가지고 있다. 바로 아서왕에 틴타겔 성에서 잉태되어 태어났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이 이야기에 마법사가 등장하고, 이 마법사가 왕의 모습을 변신시키는 등 다소 허구적인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서왕이란 인물의 상징성(특히 영국인들에게)과 아서왕이 태어난 장소라는 이야기의 흥미로움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충분히 끌어당길 만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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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다와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위에 멈춰섰다. 틴타겔의 해변은 정말 작았는데, 틴타겔 성과 반대편의 해안 절벽이 해변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래서 바다도 잔잔하고, 해변은 매우 아늑하게 느껴졌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역시나 온통 파란색 뿐이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옥색부터 먼 바다의 짙은 파란색까지 파란색 계열의 모든 색깔이 그라데이션으로 이어진다. 이 전망대에서 오른쪽 해안 절벽으로 올라가면 산책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곳에 올라서 바라보면 틴타겔 성과 섬으로 건너가는 다리, 그리고 그 아래 있는 해변과 바다까지 한 프레임에 담아낼 수 있다. 다리를 건너가지는 않았지만, 다리 위에서 바라보면 조금 아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섬을 건너는 다리는 그 높이가 상당했다. 만약 이곳이 우리나라였다면, 이 다리를 흔들다리와 투명한 바닥 유리로 만들지 않았을까.


이제 해변으로 내려갈 시간이다. 틴타겔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은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해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위에서 바라본 것처럼 해변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작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그래도 해변에는 볼거리가 가득했다. 무엇보다 바로 눈 앞에는 예쁘게 펼쳐진 바다가 있고, 그 바다 안에 들어가서 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날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틴타겔은 바다를 즐기러 오는 곳이라기 아니라, 틴타겔 성을 보러 왔다가 바다를 덤으로 보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해변에 비해서 바다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변을 거닐면서 풍경을 바라보거나, 해변 위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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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양 옆으로는 기암괴석으로 된 해안절벽이 솟아있는데, 그 아래에는 해식 동굴이 있다. 그 중에서도 틴타겔 성 쪽의 해식 동굴은 반대편까지 이어져서, 동굴을 건너갈 수 있었다. 그 동굴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니까 동굴을 가로질러 가려는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었고, 동굴 건너편에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궁금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스며들었다. 앞서 있던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잠시 기다리고 난 후, 나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건너편으로 가는 길은 다소 험난했다. 내가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어서 동굴 암벽을 타고 건너가야 했기 때문이다. 물기 때문에 미끄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미끄러지지 않고 동굴 건너편에 무사히 도착했다. 동굴은 생각보다 짧아서 5분 남짓이면 충분히 건너편에 도착한다. 그렇게 도착한 동굴 건너편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을까. 그런 것은 없었다.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드넓은 바다였고,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나는 동굴을 다시 거슬러 해변으로 돌아왔다.


해변으로 돌아오니까 짝꿍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해변의 반대편으로 갔고, 그곳에는 또 다른 동굴이 있었다. 하지만 이 동굴도 꽤 깊긴 했는데 막혀있는 동굴이라서 굳이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해변 절벽 아래 이렇게 해식 동굴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로웠다. 우리는 오랫동안 동굴 탐방에 매진했다. 동굴을 한껏 탐방한 뒤에 해변을 거닐다가 이끼가 가득 끼어 녹색으로 변한 암벽이 발견했다. 폭포처럼 물이 쉴새 없이 흐르는 곳으로, 습기 때문에 이끼가 생겼는데 온통 탁한 바위색 한가운데 밝은 녹색이 튀어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해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사실 콘월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하도 많이 봐서 감흥이 사라질 법도 하지만, 틴타겔의 바다는 그래도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결코 질리지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인간이 함부로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아무리 많이 보더라도 자연은 그 상태 그대로 우리 곁에 남아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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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변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틴타겔 마을로 돌아왔다. 틴타겔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계속해서 오르막으로 마을에 도착할 즈음에는 숨이 가빠질 정도로 꽤 긴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틴타겔 해변 근처에는 마을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물론 유료이다. 재밌는 사실은 강아지와 함께 온 사람은 강아지 요금을 따로 내야한다는 점이다. 가격표를 보면서 나와 짝꿍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강아지까지 돈을 받는다는 사실이 다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 10분 정도만 올라가면 되는 길이지만 생각보다 이 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우리는 기다리기 싫기도 했고, 운동겸 천천히 걸어서 올라갔다.

이렇게 틴타겔에서의 우리 여정이 끝이 났다. 비록 틴타겔 성 내부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굳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틴타겔의 모습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역사적 이야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틴타겔은 콘월을 여행한다면 분명히 들러볼 만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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