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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월 여행] 영국 드라마의 배경이 된 마을

포트 아이작(Port Issac)

by 방랑곰

틴타겔(Tintagel)을 떠난 우리는 포트리스로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멀리까지 왔으니까 그래도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한 곳을 더 들러보기로 했는데, 이 마을은 짝꿍의 아버지가 추천해 주셨다. 정말 작지만 영국 사람들에게 꽤 유명한 이 마을의 이름은 포트 아이작(Port Issac)이다. 그러면 포트 아이작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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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닥터 마틴' 속 작은 해안가 마을


포트 아이작은 틴타겔에서 약 20분 정도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웠다. 이 마을은 틴타겔이나 콘월의 다른 마을과 비교해도 규모가 작았는데, 그럼에도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이 마을을 찾는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까지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영국에서 꽤 오랫동안 유명했던 드라마인 '닥터 마틴'을 이곳, 포트 아이작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2004년에 시작한 드라마 탁터 마틴은 시즌 9까지 이어질 정도로 영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이고, 넷플릭스에도 이 드라마가 포함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알려졌다. 다소 괴팍하지만 실력은 출중한 의사가 시골 마을에서 공중 보건의로 일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닥터 마틴 속 시골 마을이 바로 포트 아이작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드라마에 나오는 마을이 정말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드라마 속의 그 마을을 찾아 포트 아이작을 가게 된 것이다.


"마을로 차 갖고 들어갈 생각 하지도 마. 크게 후회할 거야."


포트 아이작을 가보라고 추천해 주시면서, 짝꿍 아버지가 우리에게 신신당부한 말이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왜 그렇게까지 말씀하실까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하니까 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마을 내부의 길이 정말 좁았고, 심지어 차가 통과하지 못할 것 같을 정도의 길도 있었기 때문이다. 포트 아이작은 큰 길가에 있는 마을과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바닷가 앞에 있는 마을을 보기 위해서인데, 그 마을까지 차를 갖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우리는 조언을 듣고 큰 길가에 차를 대고 걸어서 바닷가로 향했다. 걸어가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짧은 거리였다. 그래서 걸어가면서 현지인의 조언은 항상 유용하다는 이야기를 짝꿍과 나눴다. 이 좁은 길에 차를 갖고 왔으면 꽤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운전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곳까지 차를 끌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연민을 담아 바라보기도 했다. 그들은 중간에 마주오는 차를 만나면 차를 서로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하염없이 후진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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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게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자 작은 항구 마을이 나왔다. 마을 앞에는 작은 해변이 있고, 그 앞으로 절벽과 방파제로 둘러싸인 잔잔한 바다가 이어진다. 마을은 정말 작았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온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을 어떻게 찾아내서 드라마를 촬영하게 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을 앞에 있는 해변으로 내려갔다. 가까이에서 본 마을은 더욱 아기자기했고 잔잔한 바다가 마을을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마을 앞 벤치와 해변에는 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여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그리고 작은 마을과 바다가 함께 만들어내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우리는 해변을 지나 한쪽에 바다를 향해 뻗은 좁은 길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강아지와 공놀이를 하고 있거나, 옆에 있는 암벽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은 바다를 보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끝까지 걸어갔고,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눈으로는 바다를 즐기면서도, 귀로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강아지가 바다에서 첨벙대는 소리, 아이의 웃음 소리를 들었다. 이곳이 드라마 촬영지라는 인식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냥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닥칠 일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곳에 서서 한참 동안이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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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오는데? 우리 신발 젖겠어!"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뒤를 돌아보니까 사람들이 어느새 해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왜 돌아갔는지 그 이유를 금방 알았다. 바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서 있던 길이 물 속으로 잠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깨달은 우리도 길을 따라 나오기 시작했지만, 중간에 길이 조금 낮은 부분은 어느새 물 속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둘 다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운동화가 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우리는 암벽을 기어올라 그 자리를 벗어났다. 불과 몇 걸음 걸으면 끝까지 도달하는 짧은 길이었는데 그 순간에는 그 길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힘들긴 했지만 운동화가 젖지 않은 상태로 그 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변에 도착해서 뒤를 돌아보니까 그 길은 어느새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진 뒤였다. 바닷물이 생각보다 빠르게 차오른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고 한국에서 경험도 많이 했는데, 영국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했을 때, 왼쪽 절벽 위에 있는 여러 집들 중에서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집이 있다. 그 집이 드라마 '닥터 마틴'의 주인공 의사가 드라마 속에서 사는 집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둘 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그 집 앞까지는 가보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마지막 사진의 언덕 위에 있는 집들 중 하나이다.) 우리는 바닷물 공격에 흐트러졌던 안정을 되찾기 위해 해변에 잠시 서 있다가 마을 골목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마을을 조금 더 구경하고픈 마음에 우리가 내려온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을 따라 이리저리 동네를 구경하다보니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길이 계속 좁아지고 결국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올라갈 만한 폭의 계단이 나타나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길이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계속 나아갔지만 결국 우리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다른 길에 막히기도 하고, 뚜렷한 목적지 없이 동네 골목길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포트 아이작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더 깊숙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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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아이작의 좁은 골목길에는 마을의 알록달록하면서도 특색 있는 집들이 많다. 포트 아이작은 지금까지 가봤던 콘월의 모든 동네 중에서도 시골 동네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비록 매우 작은 마을이지만 이 마을에서 전해지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하루나 이틀 정도 이곳에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해보았다. 바다를 보면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가만히 휴식을 취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집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집집마다 고유한 특색이 있었다. 우리나라 아파트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모두 똑같은 형태가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곳의 주택이 마음에 들었다.


마을을 다 둘러본 후에야 우리는 다시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길 중간에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포트 아이작 마을과 바다가 눈 앞에 펼쳐졌다. 마을 안에 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이곳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마지막까지 포트 아이작은 우리에게 편안한 공기를 선사해 주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마을이지만, 관광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상술이나 관광지 특유의 정신없는 분위기가 저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온다면 이 마을의 분위기도 언젠가는 바뀌겠지만, 이 모습과 느낌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좋겠다. 우리는 그런 바람과 함께 포트 아이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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