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슬레븐(Porthleven)
로에 바(Loe Bar)에서 나오던 우리는 한 작은 마을에 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 작은 마을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로에 바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콘월의 작은 마을, 바로 포슬레븐(Porthleven)이다. 정말 작지만 꽤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포스팅에서 해보려고 한다.
"여기 마을 되게 아기자기하네. 내려가 볼까?"
우리는 포슬레븐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마을 위쪽에 차를 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늑했다. 배들이 정박해있는 항구를 마을이 감싸고 있고, 그 뒤로는 산과 들판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태로 하나의 이상적인 마을 모습처럼 보였다. 바로 앞에는 물이 있고, 뒤에는 자연이 받쳐주는 구조는 마을을 가장 안정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곳에서 마을을 잠깐 감상한 뒤에 우리는 마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언덕길을 따라 내려갔다. 좁은 언덕길 옆에는 꽃들도 화사하게 피어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바로 앞을 지나가기도 했다.
"여기 살고 있는 주민도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이렇게 집 바로 앞으로 관광객이 수시로 지나가면 살기에 다소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나 지역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불편함인데, 이는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관광객과 거주민, 또는 거주민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스페인의 바로셀로나는 거주민들이 관광객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호소하거나 주요 관광 명소에 관광객들을 혐오하는 메시지를 그래피티로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북촌한옥마을 주민들이 관광객들이 떠드는 소리에 불편함을 많이 호소했고, 이로 인해 한옥마을 내부에서는 조용하게 이야기해달라는 문구가 마을 여기저기에 붙어있다. 부산의 감천문화마을도 이러한 불편함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곳으로 이 마을은 오후 5시 이후에는 대부분의 상점이나 전망대 등이 문을 닫음으로써 관광객이 저녁에 찾아오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불편함은 관광도시가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관광객도 주민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관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 주민과 공존할 수 있는 관광이 최근 흐름을 타고 있는 바로 책임 있는 관광(Responsible Tourism)이다.
언덕길을 모두 내려가자 오래된 교회 건물 하나가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교회를 지나쳐서 교회 뒤로 바다를 향해 뻗어있는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드넓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햇빛을 반짝이며 반사시키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물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아름답게 보일수도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물과 빛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하나의 모습은 어느 보석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 사이로 내려오는 환한 태양빛이 푸른 바닷물을 반짝이는 하얀 색으로 바꿔놓았고, 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정도로 눈부셨다. 방파제 위에서 반짝이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마을로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순간 우리는 잠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바다를 감싸안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 아름답기도 했고, 그 앞에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우뚝 솟아있는 교회 건물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다 건너편에는 언덕 위에 지어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그 아래에는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오래된 건물 하나가 있었다. 벽면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버려진 교회 건물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해안경비대(lifeboat)가 사용했던 건물이었다. 우리는 교회 건물로 다가섰다. 교회가 실제로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교회가 기단 위에 올라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커보였다. 그리고 바다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는 교회가 마을을 지키고 있는 듯했고, 그 모습이 다른 커다란 교회 못지 않게 웅장했다. 마을이 작아서인지 교회가 온 마을을 충분히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교회 뒤로는 같은 모양을 건물이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얀색을 바탕으로 노란색, 하늘색, 파란색 등 여러 색감이 돋보이는 예쁜 건물이었다. 이 건물들은 2층짜리 건물들로 실제로 주민이 살고 있거나, 여행객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본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 주택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 들어가면 마을 중심부가 나온다. 중심이라고는 했지만, 펍 두세개와 기념품 가게 몇 개가 전부였다. 포슬레븐은 그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있는 펍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그 정류장 근처에 펍이 한 두개 더 있을 뿐이다. 이 펍들은 바다를 중심으로 왼쪽에 하나, 중간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이렇게 나눠서 자리잡고 있다. 물론 그 중간중간이나 뒷골목에 숨이있는 펍이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마을 규모로 봤을 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맥주 한잔 하고 가자. 그냥 돌아가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네."
포슬레븐은 이렇게 작은 마을이지만,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결코 적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의 야외 테이블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빈 테이블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우리는 마을을 조금 더 거닐다가 펍으로 들어섰다. 구경만 하고 돌아갈까 하다가 날씨도 좋고, 활기찬 분위기에 끌려서 우리도 모르게 펍의 빈 자리를 찾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테이블을 찾던 그 시간에 한 테이블의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잽싸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나는 맥주를 주문하러 펍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곳에는 주문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순간, 또 한번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렇게 긴 줄을 기다리고 맥주 한잔을 하고 갈 건지, 아니면 그냥 돌아가서 집에서 맥주 한잔을 할건지를 말이다.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에는 날씨도 좋았고, 우리 기분도 너무 좋았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우리 차례가 왔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펍에 남게 되었다.
"오늘 맥주 한 잔 하기 딱 좋네.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펍의 분위기는 완벽했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펍의 야외 공간은 왁자지껄 활기가 넘쳤고, 머리 위에서는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했으며 우리 옆으로는 아늑한 포슬레븐 항구가 있었다. 항구는 물이 빠진 상태라서 배들이 뻘 위에 올라타고 있었는데, 잠시 후 물이 들어오면 그 배들이 물 위로 떠오를 것이고 몇몇 배들은 주인을 따라 바다를 항해할 것이다. 그리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을 향해 눈길을 돌리면 항구의 물결을 잔잔하게 만드는 방파제와 그 옆에 늠름하게 서있는 교회 건물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끝이 어딘지 모를 바다가 나타난다. 이런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정말 시원했고 맛있었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재밌는 소재의 대화가 들려오면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인지 우리는 맥주를 다 마시고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뻘이 드러나 있었던 항구는 어느새 바닷물로 채워졌고, 태양은 서쪽을 향해가고 있었다. 한참을 앉아있던 우리는 집에 가야할 시간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집에 가야할 시간이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녁은 집에 가서 먹는 것이 우리의 암묵적인 규칙이었기 때문에 늦어도 오후 6시까지는 집에 도착해야만 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을 초입에 있는 교회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가는 길에 과거에 마을을 든든하게 지켜줬을 대포가 보였다. 양쪽에 하나씩, 두개의 대포를 보면서 과거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을 콘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고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길 간절히 소망했다.
우리는 마을 초입의 교회를 지나, 우리가 내려왔던 언덕길을 올라왔다. 그리고 약 한시간 남짓 후에 집에 도착했다. 이날은 로에 바(Loe Bar)부터 포슬레븐까지 한꺼번에 즐겼던 하루였다. 영국이 아닌것 같은 날씨 덕분인지 우리는 하루 종일 텐션이 살짝 올라있었다. 그래서인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저녁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모두 곯아 떨어졌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