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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월 여행] 닿을 수 없는 호수와 바다

로에 바(Loe Bar)

by 방랑곰

우리는 언제나처럼 저녁을 먹으면서 다음 날 어디를 갈지 짝꿍과 고민하고 있었다. 콘월에서 꽤 여러 곳을 가봤다는 생각에 조금 더 멀리 가볼까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짝꿍 아버지가 한 장소를 추천해주셨다.


"바다와 호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야. 같이 가볼까?"


이 한마디에 우리의 다음 날 목적지는 정해졌다. 바로 바다와 호수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 로에 바(Loe Ba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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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 바에 가기 위해서는 포트리스에서 약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로에 바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포스레벤(Porthleven)까지 간 다음, 산책로를 따라 약 20분 정도 더 걸어 들어가야 했다. 우리는 포스레벤 마을 가장 깊숙한 곳(로에 바에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차를 타고 갔고, 그곳에 무료 주차장이 있어서 쉽게 차를 댈 수 있었다. 차를 대고 본격적으로 로에 바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곳이길래 호수와 바다를 한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면서도, 콘월이 어떤 새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지 기대가 가득했다.


"오늘 날씨 진짜 너무 화창하고 좋다. 기분이 너무 좋아!"


포스레벤에서 로에 바까지 걸어가는 길은 걷기 편한 산책로였다. 처음에만 오르막일뿐, 그 이후에는 계속해서 평지가 이어졌다. 가는 길에 눈에 담기는 바다와 하얀 구름이 총총 박힌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뿐만 아니라 짝꿍과 짝꿍 아버지도 기분 좋은 것이 옆사람에게까지 전해졌다. 사실 영국 사람들은 날씨에 기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워낙 흐린 날이 계속되기 때문에 날씨가 좋은 날은 기분까지 덩달아 업되는 것이다. 이렇게 화창한 날의 소중함을 알고, 그 날씨에 감사함을 느끼며 그 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는 것이 영국 사람들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 또다시 흐린 날이 돌아오기 때문에, 화창한 날에 밝은 에너지를 마음껏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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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어떻게 이런 곳까지 아는거야? 여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곳인데?

관광객도 거의 없는 거 보면,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네."


조금 더 걸어가니까 로에 바 해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란 바닷물과 하얀 파도가 일렁이는 로에 바 해변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고, 또 주차장에서 어느 정도 걸어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짝꿍도 짝꿍 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몰랐을 장소라면서, 짝꿍 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곳까지 다 알고 있는지 신기해했다. 현지에서 오래 살았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사소한 장소까지 알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애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짝꿍 아버지는 콘월에 큰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실제로 콘월에 머무는 내내 콘월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면 망설임없이 모든 대답을 해준 사람이 짝꿍 아버지였다. 그 내용이 단순히 현지인이라서 아는 수준을 넘어서 개인적으로 찾아보고 관심이 있어야 알 수 있을만한 수준이었다.


"저기가 로에 바 해변이야. 호수는 아직 안보이네."


로에 바 해변은 해변과 그 뒤로 해안 절벽이 길게 이어지는 콘월의 전형적인 해안선이다. 다만 다른 해변과 비교했을 때 이곳에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조용한 가운데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와 절경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었다. 그 소리와 풍경을 감상하면서 로에 바 해변을 향해 걸어갔다. 다만, 이곳에서 호수와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호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호수도 보인다는 말에 호수는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면서 걸어갔다. 그리고 해변에 내려가는 길에 다다라서야 호수가 보였다. 호수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컸고 울창했다. 그리고 바다와 호수가 어떤 인공적인 구조물로 분리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 예상도 고스란히 빗나갔다. 약간의 언덕 형태로 이루어진 로에 바 해변이 바다와 호수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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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덕에서 모래사장으로 내려왔다. 모래사장은 막상 내려오니까 위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컸다. 바닷가 쪽으로 내려와서 호수를 향해 걸어가는데 걸어도 걸어도 호수가 나오지 않았다. 저 눈 앞에 호수가 보이는데 이상하게 그 호수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모래바닥이라 걷기가 어려웠고 조금만 걸어도 평소보다 훨씬 더 힘이 들었다. 모래사장이 언덕처럼 되어 있어서 그 정점부터 호수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이었고, 호수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가까운 줄 알았는데, 실제 거리는 더 멀었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결국 호숫가에 도착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이 물이 바닷물인지 궁굼해서 살짝 맛부터 봤는데, 짠맛이 전혀 없는 민물이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곳은 완연한 호수 풍경이었다. 바다처럼 파도도 치치 않았고, 호수 주변에 있는 나무와 숲은 바닷가에 있는 나무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불과 100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른 모습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바다와 호수라는 이름으로 구분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서로 거의 붙어있는 사이인지라, 그래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모습일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이 호수의 이름은 로에 호(The Loe)이다. 호수는 잔잔했고 주변에는 수풀이 우거져서 완전히 또 다른 자연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로에 호 옆에서는 이곳이 바닷가라는 사실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심지어 바다가 바로 지척인데도 파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산 속에 있는 고즈넉한 호숫가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지도 상으로 보니까 로에 호는 꽤 컸다. 크기가 별로 크지 않았다면 호숫가를 한바퀴 둘러볼까도 했는데, 생각보다 큰 크기에 둘러보는 것은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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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Bar)를 넘어 다시 바다로


호수를 구경하고 우리는 뒤를 돌아봤다. 우리 뒤에는 바다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래로 뒤덮인 언덕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 모래 언덕이 로에 바(Loe Bar)이다. 이름 그대로 호수와 바다를 갈라놓는 바(bar)인 것이다. 이 언덕을 넘어야 바다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로에 호로 걸어올 때처럼 바다를 향해 갈 때도 이 모래 언덕은 정말 길게 느껴졌다. 아무리 올라도 정상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정상에 다다라서 해변을 향해 내려갈 때도 바다는 항상 눈 앞에 있을 뿐 쉽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모래 위를 열심히 걸어간 끝에 바닷물을 우리 발 바로 앞에 둘 수 있었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담가볼 수 있었겠지만, 운동화에 양말까지 모두 신고 있던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이곳에는 사람들의 소리가 단 하나도 없이 오롯이 자연의 소리만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자연의 소리는 우리 마음에 평화와 안정을 전해줬고 우리도 그 소리에 귀기울인 채 한참을 해변에 서서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저 해안 절벽 위에 오래된 교회 하나가 있어. 가볼래?"


짝꿍 아버지는 우리가 온 방향과 반대쪽을 가리키며 그곳에 오래된 교회 하나가 있는데, 꽤 풍경도 멋지다고 했다. 우리에게 혹시 가보고 싶은지를 넌지시 물어보는 그에게 짝꿍은 얼마나 걸리는지를 되물었다. 그리고 한시간 남짓 걸린다는 대답을 듣고 우리는 결정했다. 한시간 남짓 갔다가 또다시 한시간 남짓 돌아오면 시간이 너무 늦어지는 관계로 그곳까지는 가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음... 걷기 싫었던 것은 결코 아니라, 이후 일정도 있었기 때문에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구글맵에서 보니까 그 교회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꽤 멋져서 다음에 콘월을 방문하게 되면 가보기로 했다. 교회 바로 앞까지 차도가 있고, 그 옆에 주차장이 있다고 나오니까 차를 타고 말이다. 그 교회 이름은 성 윈왈로 교회(St. Winwaloe Church)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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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까지 걸어가는 대신 우리는 해변에서 길고 웅장하게 뻗어나가는 해안절벽을 바라봤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 해안절벽이 콘월을 상징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월의 모든 해안선이 이렇게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디에서 보더라도 해안절벽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은 날씨가 너무도 좋아서 바다까지 온통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덧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해변을 가로질러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우리의 차가 있는 포슬레벤(Porthleven) 마을이 우리 눈길을 사로잡았다. 로에 바 해변으로 향할 때는 마을을 등지고 걸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거의 못 본채 지나쳤는데, 이렇게 돌아가는 길에 보니까 마을이 정말 작지만 예뻤다. 바닷가를 벗삼아 만들어진 이 작은 마을은 사실 관광객이 꽤 많이 찾는 곳이다. 그렇게 우리는 차로 돌아왔고, 포슬레벤 마을로 들어섰다. 우리는 이 마을을 조금 더 담아내기 위해 잠시 머물렀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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