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홀(Mousehole)
어느 날, 우리는 펜잔스(Penzance)를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짝꿍 아버지가 갑자기 마우스홀(Mousehole)이라는 마을에 가보지 않겠냐고 우리에게 물어보셨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마을이었고, 짝꿍도 모르는 곳이라고 했는데 짝꿍 아버지는 가보면 실망 안할거라면서, 잠시 들렀다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쥐구멍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어촌마을에 도착했다.
"왜 이름이 쥐구멍일까? 이름 참 특이하네."
펜잔스에서 마우스홀까지는 매우 가까웠다. 차로 약 5분 정도 걸렸을까, 우리는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 길가에 있는 주차공간에 차를 대고 마을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왜 마을 이름이 '마우스홀' 즉, '쥐구멍'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 의문에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냥 예전부터 그렇게 불렸으니까 자연스럽게 이름이 되었겠지만, 최초에 왜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는지가 궁금했던 것인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이름이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이 마을 사람들은 본인들의 마을 이름을 좋아할까?' 쥐구멍이라는 단어 자체가 약간 부정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법했다. 물론 일일이 물어보면서 찾아다닐 수는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추측만 할 뿐이었다.
마우스홀 마을로 걸어가는 길 바로 옆에는 바다가 있었다. 콘월에서는 어딜 가나 바다를 볼 수 있고 한달 동안 바다를 원없이 봤지만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 건너편에는 이전에 우리가 갔었던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St.Micheal's Mount)가 보였다. 그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콘월의 해안선은 역시 절경이었다. 이제 하도 봐서 질릴 법도 한데, 질리기는 커녕 계속해서 눈에 담아두고 싶은 풍경이었다. 더욱이 이 때가 콘월을 떠나기 불과 며칠 전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콘월의 이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길을 걸어가면서도 나의 눈길은 바다, 그리고 콘월의 아름다운 풍경에 머물러 있었다. 이 모습을 내 안에 꽉꽉 채워 넣어서 한국에 있는 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습이 하나씩 비워가더라도, 텅 비어버리기 전에 이곳에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이 이뤄질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나와 짝꿍은 여전히 고민 중이다.
"마을 정말 작네! 근데 예쁘다! 너무 좋은데?"
우리는 집들 사이로 아기자기하게 나있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마을 중심으로 향했다. 마을 중심에서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바다였고, 그 앞에 작은 항구가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마우스홀 마을의 첫인상은 '작다'였다. 정말 온 마을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았다. 지금까지 콘월의 작은 마을을 많이 다녀봤지만, 그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작은 규모의 마을이었는데, 그 작은 마을이 품고 있는 모습은 결코 작지 않았다. 오히려 마우스홀은 다른 많은 마을들보다 더 아름다웠고, 한눈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낼 수 있어서 더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마을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길을 우리가 담고 싶은 풍경에 오롯이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작은 마을답게 길도 좁았는데, 그 길을 따라 차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고 어느 순간에는 버스도 지나가서 매순간 뒤를 돌아보거나 길 한쪽으로 피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차들이 지나지 않는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마을을 조금 더 자세히 둘러봤다. 마을 앞에는 마을과 바다를 구분하는 방파제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방파제 한가운데에는 배들이 드나드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공간 크기가 배 한두척 정도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항구로 드나드는 배가 많으면 꽤나 불편한 구조이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파도나 해일로부터 마을과 항구를 보호하기에는 안성맞춤일 듯했다. 당연하게도 배들이 떠있는 항구의 바닷물은 한없이 잔잔했다. 그리고 방파제 위에는 차들로 가득했다. 마을이 작아서 주차 공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저 방파제를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는듯 했다. 다만, 방파제에 안전장치가 딱히 보이지 않아서 저곳에서 운전하려면 꽤나 담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라도 마추지면 꽤나 난감할 것 같았다.
마우스홀이 이렇게 작은 항구 마을이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꽤나 번성했던 항구 마을이다. 마우스홀부터 시작해서 뉴린(Newlyn), 펜잔스, 그리고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가 있는 마라지온(Marazion)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이 영국 남쪽에 바다가 움푹 들어간 마운트 만(Mount's Bay)이다. 마우스홀은 16세기까지 마운트 만의 주요 항구마을이었다. 스페인이 영국을 침략했을 때, 콘월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마우스홀도 공격을 받았는데, 거의 모든 건물이 피해를 받았다고 한다. 피해를 복구한 이후에도 이곳에는 라이프보트(Lifeboats)라고 불리는 해안경비대가 20세기 후반까지 있을 정도로 주요 거점이었는데, 1983년에 라이프보트가 인근 마을인 뉴린으로 옮겨갔고, 이후 현재의 작은 항구마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다양한 행사과 축제가 열리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12월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불빛 축제이다. 언젠가 연말에 콘월을 가게 된다면, 단연 크리스마스 불빛을 보러 이 마을로 달려갈 것이다. 아기자기한 매력이 가득한 이 마을에 크리스마스 불빛이 가득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마우스홀 마을은 너무도 평화로우면서도 활기가 가득했다. 항구에 묶여있는 배들은 평화로이 본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배들의 흔들림마저 최소화하는 잔잔한 물결이 마을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한편 방파제 위에는 바다로 다이빙을 하면서 놀고 있는 열혈 청년들이 있었고, 항구 한켠에 있는 작디작은 해변에는 물장구치며 놀고 있는 꼬마들이 있었다. 작은 마을이라서 그냥 조용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이곳에 들어와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마을의 풍경도 충분히 아름답고 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여행을 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다. 마우스홀에서 왜 방파제 위에 올라가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방파제 위에 서면 항구와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은 충분히 눈에 담아내고 돌아왔다.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로 이어지는 영국 특유의 벽돌집과 그 사이에는 이런저런 상점들이 있었다. 마을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역시나 바다가 우리 옆으로 다가왔다. 바다가 본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뽐내며 조금 더 머물다 가라고 유혹하는 듯 했고, 우리고 그러고 싶었지만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렇게 콘월에서 또 하나의 여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