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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월 여행] 집 뒤의 푸른 숲

일로간 우드(Illogan Woods)

by 방랑곰

한 달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우리가 콘월에서 머물렀던 시간의 끝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가 콘월을 떠나기 전날, 우리는 여느 때와 다르게 차를 타고 나가지 않았다. 콘월에 있는 작은 마을을 탐방하러 가지도, 콘월 반대편에 있는 바닷가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 그저 집과 집 근처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오전에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집 뒤에 있는 숲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이 숲이 바로 일로간 우드(Illogan Wood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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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좋은데, 잠깐 산책이나 다녀오자. 아침 먹은 거 소화도 시킬 겸."


우리는 떠나기 전날이라 집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짐도 싸야 했고, 짝꿍은 가족과 단 1분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 평소와 같이 아침을 먹었고 우리는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BBC 뉴스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짝꿍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때로는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정치나 사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사실 이야기 주제는 크게 상관없었다.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나와 짝꿍이 콘월로 언제 다시 돌아올지 기약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그 순간 서로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했을 뿐이다. 그 목소리의 기억과 흔적이 이곳에 다시 오는 날까지 기다리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산책을 다녀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집에만 머물기에는 날씨가 너무 아까울 정도로 좋기도 했고, 바로 뒤에 숲이 있는데 그곳은 아직까지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집 뒤로 산책하기로 했다. 우리는 집 문을 나와서 약 5분 정도 걸었을까, 길은 점점 좁아지고 이내 우리 주변에는 온통 녹색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일로간 우드는 동네 뒷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정말 울창한 숲이다. 이곳은 울창한 숲뿐 아니라, 살며시 흐르는 물소리도 들리고 듣기 좋은 새소리도 가득하다. 그래서 이곳은 포트리스(Portreath)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고, 동네에 있는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체험학습을 나온다고도 한다. 숲과 함께하는 수업이라, 아이들에게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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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산책 다녀오시나 봐요? 요즘엔 좀 어때요? 잘 지내요?"


포트리스 마을 뒤쪽에 위치해서인지, 일로간 우드를 찾는 사람들은 여행객이 아니라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짝꿍 아버지는 길을 가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을 아는 듯 했고,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1시간 남짓 걸었는데도 생각보다 멀리 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감싸고 있는 나무들이 발산하는 상쾌한 공기를 느긋하고 여유롭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천천히 걷는 게 오히려 더 좋았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면서 숲이 주는 기운을 한껏 받아들였다. 이렇게 싱그러운 공간을 서울에서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이 순간이 소중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숲 깊숙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싱그러운 녹색이 가득한 공간에서 우리 발 아래 있는 폭신한 흙은 우리 걸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고 걸어도 힘든 줄 몰랐다. 아니면 콘월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에 조금 더 힘이 났던 것일까. 잠시 산책을 다녀오자고 집을 나선 우리는 어느새 한시간 남짓 걸었고, 어느 순간 갈림길을 마주했다. 왼쪽은 포트리스 근처에 있는 다른 마을(일로간, Illogan)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예전에 한번 갔었던 테히디 공원(Tehidy Park)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우리는 양쪽 어느 곳으로도 향하지 않았다. 걸어온만큼 다시 걸어가야 했고, 집으로 돌아가면 어림잡아 점심시간이 될 듯하여 온 길을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조금 더 자연 속에 머물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지만, 점심을 먹은 후에는 짐을 싸야했기 때문에 더 이상은 욕심 부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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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짐을 챙기고 가족들과 오롯이 시간을 보내면서 남은 하루를 보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웃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마치 다음날도 평소와 같은 날이 계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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