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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성당과 아늑한 운하

글로스터(Gloucester)

by 방랑곰

코츠월드의 여행이야기가 모두 끝났지만, 작년에 우리가 영국을 여행했던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코츠월드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코츠월드 근처에 있는 글로스터(Gloucester)라는 도시에 다녀왔다.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던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도시를 여행하는 순간이었다. 이 도시는 짝꿍 아버지가 추천해 주신 곳으로, 코츠월드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가볼만한 곳이니 한번 다녀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마침 우리가 머물던 코츠월드 숙소에서 글로스터까지 그렇게 멀지 않아서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글로스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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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 발음이 왜 '글로스터'야? '글로세스터'라고 읽어야 하는 거 아니야?


글로스터로 가는 길에 나는 짝꿍에게 왜 이 도시 이름이 '글로스터'로 발음되는지 장난스레 물었다. 짝꿍은 본인도 모른다고 대답했는데, 사실 나도 일종의 발음 규칙일 거라고 생각해서 짝꿍이 설명해 줄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우리도 한국어의 규칙에 대해 설명할 때, 그 규칙이 만들어진 이유까지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이것도 영어에서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규칙이다. 그래서 영어 너무 어렵다고 얘기도 할 겸 농담처럼 물었던 것이다. 실제로 영국 도시 중에 이름 중간에 '-ces-'가 들어가는 도시가 꽤 여럿 있는데, 모두 ces를 그냥 's'로만 발음한다. 몇년 전에 프리미어리그에서 만화같은 이야기를 썼었던 레스터시티가 있는 도시 레스터도 영어로 표기하면 Leicester로 표기한다. 글로스터도 이 범주 안에 들어가서 '글로세스터'가 아닌, '글로스터'가 되는 것이다.


브리스톨을 떠난 이후로 일주일간 도시 구경을 못한 우리는 오랜만에 도시 구경을 할 생각에 약간 들떠있었다. 자연을 좋아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선호하지만 오랜만에 찾아가는 도시에 대한 설렘과 함께 짝꿍 아버지가 얼마나 좋으면 추천까지 했을까하는 생각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우리는 주차장을 찾아 글로스터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차 안에서 글로스터라는 도시를 먼저 만나게 되었는데, 이 공간에 대한 우리의 첫인상은 꽤 좋았다. 차 안에서 바라봤을 때는 길가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으면서 전반적으로 평온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도심 한쪽에 괜찮은 주차장을 발견해서 그곳에 주차를 한 후에 본격적으로 우리만의 글로스터 워킹 투어(Walking tour)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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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여기 성당은 진짜 크네. 한번 들어가보자!"

"여기 성당 안에 정원도 있대. 정원 있는 성당은 처음 보는데?"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연히 글로스터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글로스터에서 상점이 밀집해 있는 이스트게이트로(Eastgate Street)였다. 글로스터 중심 거리의 모습은 영국의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 들어서 있는 상점들도 비슷했고, 카페나 식당도 대부분 프랜차이즈였다. 다만 버밍엄이나 맨체스터와 같이 영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큰 규모의 도시와 비교하면 도심에 사람이 훨씬 적었다. 그래서 돌아다니기에도 편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음도 별로 없었다. 그런 면에서 글로스터 중심 거리는 전형적인 영국 도시의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도시에 비해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우리는 글로스터 대성당(Gloucester Cathedral)에 다다랐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성당 건물은 사실 주차장에서부터 눈에 들어왔던 곳으로, 우리는 이곳을 기준삼아 중심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중심 거리를 한번 둘러본 후에 성당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 것이다. 글로스터 대성당은 정말 거대하면서도 매우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건축물이다. 멀리서 볼 때는 웅장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성당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그 건물 외벽에 있는 동상이라든지, 장식이 정말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역사적인 건축물을 볼 때마다 그 옛날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웅장하게 건축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항상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성당 외부를 감상한 후에 내부를 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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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입장료는 따로 책정되어 있지 않았고, 한쪽에 박스를 두고 기부금을 받고 있었다. 기부금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굳이 내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다만 우리는 성당에 꽤 깊이 매료되어서 이 성당이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소정의 기부금을 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성당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성당 내부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했다. 내가 유럽 성당에서 즐겨 보는 스테인드글라스 예술도 다양한 색깔이 혼합되어 있어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내가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그림의 의미를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빛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작품은 의미를 몰라도 그 자체로 예술을 느끼고 감상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당 내부를 한바퀴 둘러본 우리는 밖으로 나가려다가 통로를 발견하고는, 그 길을 따라갔다.

통로를 따라가던 우리는 일단 통로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넋을 잃었다. 정교하게 조각된 통로의 천장이 일단 우리를 압도했고, 벽 사이사이로 난 창문에는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작품이 하나하나 들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니까 그렇게 길지 않은 통로를 빠져나가는 데 꽤 오래 걸렸다. 통로를 빠져나오면 외부가 나온다. 바로 글로스터 대성당 내부에 있는 작은 정원으로, 중간에 분수도 있고 조경이 잘 된 나무들이 그 분수를 감싸고 있었다. 일단 우리는 대성당 안에서 외부 공간을, 더군다나 잘 꾸며진 정원을 보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통로를 따라갔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상이 나온듯한, 마법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성당 안에서 성당 건물과 정원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주로 성당의 외관이었는데, 글로스터 대성당은 그 조화를 성당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정원을 둘러보고 성당 건물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통로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성당 본당 안으로 다시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계단을 발견했다. 그 계단은 성당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곳으로, 위에서 성당 내부를 내려다볼 수도 있고 성당의 역사와 관련된 작은 박물관도 있었다. 글로스터 대성당은 규모만 큰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안에서 볼 게 정말 많은 곳이다. 이런 공간이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하고 이 성당을 방문한 탓에 20~30분만 둘러보고 마음의 평화를 찾고 나오려고 했는데, 성당 안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우리는 배가 고파져서 성당을 뒤로하고 나왔는데,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다면 성당에 더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그만큼 웅장하고 멋드러진 외관뿐만 아니라,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내부도 볼 게 많았다. 이 성당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포스팅을 완성할 수 있을 정도로 할 이야기도 많은 장소이지만, 포스팅 길이를 위해 성당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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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스터 성당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글로스터 부두(Gloucester Quays)가 나온다. 이 부두 주변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빨간색 벽돌 건물이 부두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쇼핑센터도 있고, 펍이나 식당도 정말 많다. 그런데 글로스터는 내륙에 있는 도시인데 왜 부두가 있고, 이렇게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것일까. 바로 운하 때문이다. 글로스터 옆으로 영국에서 가장 긴 강인 세번강(River Severn)이 흐르는데, 이 강이 웨일즈와 잉글랜드 사이를 지나 브리스톨 해협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이 해협을 지나면 대서양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이 강을 활용하기 위해 세번강과 글로스터를 연결하는 운하가 만들어졌고, 여러 물자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운하 주변으로 많은 편의시설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이곳에는 글로스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 아이들과 가족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광장, 이리저리 눈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쇼핑센터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에 맞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이다. 오랫동안 쉬지 않고 걷기만 했던 우리는 광장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곳에 앉아서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는데 모두다 여유롭고 얼굴에는 미소가 걸쳐 있었다. 이 때가 저녁 즈음이라 일을 끝내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일에서 해방되고 개인의 삶으로 돌아갈 때의 그 설렘이 표정에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와 짝꿍도 서로 일을 하다가 다시 만나서 저녁을 항상 함께 먹는데, 그 순간이 하루의 행복이다. 우리의 표정도 저들처럼 설렘 가득하고 기분 좋은 표정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그 순간의 내 표정을 보지 못해서 알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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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일단 쇼핑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사실 다소 늦은 시간이라 쇼핑센터가 문을 열었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영국은 식당, 펍을 제외한 모든 상점이 문을 일찍 닫는다...) 위 사진과 같은 통로를 따라가면 양 옆으로 식당이나 상점이 있고, 쇼핑센터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그리고 쇼핑센터 안에 들어섰는데 역시나 상점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하지만 쇼핑센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할 겸 둘러봤다. 그렇게 크지 않은 규모였는데, 그래도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브랜드들은 거의 다 있었다. 우리는 쇼핑도 못하기 때문에 빠르게 건물 밖으로 나왔고, 저녁 먹을 장소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와가마마(Wagamama)라는 식당을 선택했다. 와가마마는 영국식 일본 음식을 파는 곳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일본 음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음식이 괜찮은 곳이라서 나와 짝꿍이 버밍엄에 있을 때 자주 갔던 식당이다. 이곳에는 덮밥, 누들, 카레와 같은 음식을 파는데, 덮밥을 시키면 작은 종지에 김치를 주기도 한다. 왜 일식당인에 김치를 주는 걸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운하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는 사이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 운하 곳곳에 있는 식당이나 펍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운전을 안해도 되고, 돌아가는 길이 멀지 않았다면 펍에 들어가서 맥주 한 잔 하고 싶을만큼 분위기가 정말 매력적이고 활기가 넘쳤다. 좋은 분위기가 가득한 운하를 적당히 거닌 후에 우리는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숙소로 가는 길이 가깝지가 않아서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글로스터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글로스터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사실 글로스터 성당에 대한 포스팅을 따로 할까도 생각해봤는데, 조금 길어지더라도 한번에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곳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냈다. 나는 이 주변을 여행한다면 글로스터에 하루 정도 들러볼만한 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꽤 인상적이고 푸근했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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