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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깃든 도시

버밍엄(Birmingham)

by 방랑곰

길고 길었던 2022년 영국 여행이야기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이야기를 얼른 마무리해야 올해 이야기를 시작할 텐데... 작년 이야기를 아직까지 끝내지 못한 나를 채찍질하고 있다. 그래도 글이 빠르게 써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아무튼, 오늘은 작년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렀던 도시이자, 나와 짝꿍이 만나서 연애를 시작한 도시, 영국 중부에 있는 버밍엄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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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버밍엄에 두번 방문했다. 우리가 두바이에서 환승해서 버밍엄 공항으로 들어가고 이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여정의 처음과 끝이 버밍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콘월에 가기 전에 버밍엄에서 하루 머물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또 이틀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다만 오늘 포스팅은 두번의 방문을 하나로 묶어서 하는 것이다. 이전에 버밍엄에 대해 올린 포스팅도 나름 여럿 있었기 때문에, 이번 포스팅은 나와 짝꿍이 버밍엄을 오랜만에 찾아서 추억여행을 하는 이야기 중심으로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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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피곤하긴 한데, 그래도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한 번 가볼까?"

우리가 두바이를 경유해서 버밍엄에 도착한 것은 오후였다. 우리는 호텔 체크인을 하고 방에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원래 계획은 오랜 비행 시간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그냥 호텔에서 쉬는 것이었는데, 배가 고파지기도 하고 버밍엄을 둘러보고픈 마음도 있어서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뒤에 호텔을 나섰다. 우리가 버밍엄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바로 운하였다. 우리가 묵은 호텔이 운하 근처이기도 해서 운하로 방향을 잡았는데, 사실 이 운하를 따라 걷는 길은 우리가 버밍엄에서 가장 좋아하고 자주 찾던 장소이다. 그만큼 우리의 추억이 가장 많이 서려있는 곳이고 우리가 버밍엄을 이야기할 때 항상 제일 먼저 떠올리는 곳이다.


우리는 우리가 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운하를 따라 걸었다. 운하와 그 주변의 모습은 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곳에 있는 식당이나 펍, 카페도 거의 그대로라서 우리는 놀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우리의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장소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길을 걸으면서 5년 전 데이트를 하던 우리의 모습을 떠올렸고, 새삼 많이 흐른 시간을 체감했다. 그리고 그 때는 풋풋하게 연애하던 우리가 이렇게 결혼까지 해서 함께 영국을 다시 오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부부의 신분으로 그 길을 함께 걸으니까 기분이 묘했다. 지난 5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변화도 있었는데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함께 길을 걷는다는 사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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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피곤하긴 한가봐. 호텔로 돌아가서 쉬자."

"응, 시내는 나중에 돌아와서 보면 되니까. 오늘은 일단 쉬자."


이런저런 추억 이야기를 나누면서 운하를 걷던 우리는 버밍엄 시청 건물이 있는 빅토리아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으로 가는 길에 버밍엄의 자랑인 버밍엄 도서관도 지나쳤다. 이 도서관은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보면 웅장하고 멋있다. 하지만 이 도서관을 짓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서 버밍엄에 살던 대학 동기들은 이 도서관을 보면서 자신들의 세금이 여기에 들어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단순히 여행객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아름다운 건물이고, 이 건물이 도서관이라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기는 하지만, 세금을 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불평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 도서관을 잘 이용하고, 그 안에 소장된 방대한 서적을 잘 활용하기도 한다. 즉, 이 도서관은 버밍엄 주민들에게 애증의 관계인 셈이다.


도서관에서 조금 더 걸어서 빅토리아 광장에 도착했다. 이 광장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도 여전했고, 광장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 광장은 우리에게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고, 데이트하다가 잠시 쉬어가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오늘도 이 광장에서 잠시 쉬었다 가려고 앉았는데, 앉는 순간 피로가 확 몰려왔다. 원래는 이 광장에서 이어지는 버밍엄의 중심 거리, 뉴스트리트(New Street)를 따라 걸으려고 했었는데, 피로를 무시하고 그렇게 했다가는 그 여파가 꽤 오래갈 것 같았다. 그래서 남은 부분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둘러보기로 하고, 이날은 아쉽지만 이곳에서 호텔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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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버밍엄에서의 첫날은 호텔에서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우리는 기차를 타고 바로 이동했고, 우리가 버밍엄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영국을 떠나기 이틀 전이었다. 우리는 이틀 동안 버밍엄의 다른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추억 여행을 계속 이어갔다. 버밍엄에 돌아와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버밍엄 뉴스트리트였다. 이 길은 버밍엄의 시내로 다양한 상점과 식당, 카페, 펍, 영화관 등 모든 것이 모여있는 곳이다. 우리가 버밍엄에서 살 때도 가장 많이 찾았던 곳으로, 당시 나는 이 곳에 있는 한 카페에서 논문 작업을 자주 하기도 했다. 그 카페가 여전히 남아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첫 데이트를 한 장소가 아직도 있는지 찾아보면서 버밍엄 시내를 활보했다.

시내에는 새로운 브랜드들이 들어서기도 하고 어떤 상점을 없어지기도 했는데, 우리가 자주 찾았던 카페나 식당과 같은 장소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내가 논문 작업을 하던 카페에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 가기도 했다. 버밍엄이 대도시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버밍엄 시내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5년 전에는 익숙한 모습이었는데, 당시 콘월이라는 시골에서 한달간 머물고 막 상경한 우리로서는 꽤나 낯선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도시 문명을 맞이하고, 사람들에 치이면서 길을 다녀야 하는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예행연습을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은 버밍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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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거리를 걷다가 우리는 그랜드센트럴역으로 들어갔다. 이는 버밍엄을 오가는 대부분의 기차가 서는 곳으로, 런던이나 다른 도시로 여행을 할 때 항상 찾던 곳이다. 그리고 나는 버밍엄대학교에서 기차를 타고 두 정거장 이동하면 이 역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 역을 정말 수시로 드나들었다. 역에 들어선 우리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2층에 있는 식당, 상점들을 그대로 지나쳐서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통로를 따라 끝까지 걸어가면 우리가 애정했던 쇼핑센터이자, 버밍엄의 자랑거리인 불링(Bullring)이 나온다. 사실 이 쇼핑센터에 들어가는 문은 정말 많은데, 우리가 굳이 기차역을 통해서 간 이유는 별다른 이유 없이 연결 통로를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링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버밍엄의 대표적인 쇼핑센터이다. 규모가 꽤 커서 이 건물 안에서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는 등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와 짝꿍도 당연히 이 건물을 정말 많이 찾았는데, 그 기억을 더듬어 보기 위해 불링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쇼핑센터 내부는 변함이 없었다. 들어서 있는 상점들도 크게 변한게 없었고,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모습도 우리가 기억하는 불링과 똑같았다. 변하지 않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안도감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우리의 기억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그래서 우리가 언제든지 이곳에 찾아와서 우리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쇼핑을 목적으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추억만 소환한 뒤에 건물을 바로 빠져나왔다. 여러 출구 중에 뉴스트리트로 이어지는 곳으로 나왔는데, 그곳에는 따뜻한 햇살 아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 거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하기도 했고, 다음날 출국을 위해 짐도 싸야 했기 때문에 조금 일찍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추억 여행을 마쳤다. 오랜만에 찾은 버밍엄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했던 그 기억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하루였다. 언제 다시 버밍엄을 가게 될지 모르지만, 그 날까지 우리의 기억을 담은 장소들이 남아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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