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젠트 공원(Regent's Park)
2023년 영국 한달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포스팅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지난번 짧게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올해 런던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런던 이곳저곳을 둘러봤는데, 오늘은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갔던 곳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바로 런던 중심에서 약간 북쪽에 위치한 리젠트 공원(Regent's Park)이다.
"노래 때문에 이 공원을 알게 됐는데, 이렇게 가보네."
"그러게, 가서 노래처럼 분위기 좋은지 한 번 보자."
우리는 런던에서 갈 첫번째 장소로 리젠트 공원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바로 노래 하나 때문이었는데, 브루노 메이저(Bruno Major)의 리젠트 파크(Regent's Park)라는 노래이다. 잔잔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이 노래는 나와 짝꿍이 즐겨 듣는 노래이다. 노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우리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런던에 있는 리젠트 공원에 가보고 싶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했었다. 이 공원에서 노래에 대한 영감을 어떻게 얻었을까, 과연 이 노래의 감성과 공원의 느낌이 잘 어울릴까하는 여러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이곳은 우리가 첫번째로 가봐야 할 장소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노래 한 곡이 우리를 리젠트 공원으로 이끈 것이다.
런던에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오전부터 리젠트 공원으로 향했다. 이날 짝꿍 동생과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는데, 그 전에 우리끼리 공원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지도 상으로 보는 리젠트 공원은 정말 거대했다. 실제로도 런던 시내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중심에 있는 하이드 공원보다도 더 크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이드 공원을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가 지도 상에서 보는 사각형 모양의 녹색 공간은 하이드 공원과 켄싱턴 정원을 합친 것이다. 그래서 단일 공원으로만 따지면 리젠트 공원이 하이드 공원보다 더 큰 것이다. 공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지도를 보면서 우리가 공원의 얼마만큼이나 볼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짝꿍 동생과의 약속으로 인해 공원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공원을 관광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공원의 분위기를 느끼고 공원에서 아늑하고 편안한 기분을 얻기 위해 가는 것이라서 머물 수 있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기로 했다. 그저 공원 안에서 발길 닿는대로 걸어다니면서 공원의 이런저런 모습을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공원에 도착했다. 사실 리젠트 공원의 접근성은 정말 좋은 편이다. 유동인구가 정말 많은 패딩턴역과 킹스크로스역 사이에 위치해 있고, 바로 옆에 마담투소 박물관이나 셜록홈즈 박물관도 있다. 그래서 주변을 지나다가 잠시 들렀다 가기에 정말 좋은 장소인 셈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마담투소 박물관 앞에 도착했고, 박물관을 그대로 지나쳐서 공원으로 들어섰다. 공원은 우리가 예상한 것처럼 정말 컸다. 공원의 넓은 잔디밭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곳에는 중간중간 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다. 잔디밭을 걸으면서 런던 시내의 현대적인 건물들을 보는데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이곳의 분위기가 런던 시내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잔디밭을 다 걷고 나면 금색으로 장식된 화려한 문이 나온다. 그 문을 들어서면 리젠트 공원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이너 서클(Inner Circle)이라는 원형의 차도로 둘러싸인 이 공간에는 장미정원, 일본정원, 카페 등이 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우리는 이곳을 중점적으로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공원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현지 사람들은 일할 시간이고, 관광객들은 이 공원을 그렇게 많이 찾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조용하게 이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공원 위쪽으로 런던 동물원이 있는데,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대부분 동물원을 향해 갈 것이다. 우리는 동물원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기에 사람이 많이 없는 공원을 차분하게 산책했다.
리젠트 공원의 이너서클 안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발견한 장소는 장미정원이다. 이 정원에는 장미가 꽤 많긴 했지만, 이곳에 있는 장미는 많이 시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장미 개화 시기가 5~6월인데, 이때가 7월 중순이었으니 일부나마 이 시기까지 장미가 남아있는 것도 놀라웠다. 아마 영국이 한국보다 봄이 조금 늦게 찾아오는 편이고 선선한 날씨도 꽤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장미가 한국보다 늦게 피는 것이 아닐까라고 나름의 합리적인 추론을 해본다. 장미 덤불을 지나서 공원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데 하늘에서 우리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을 바라보니 군용 헬리콥터 여러 대가 꽤 낮게 비행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낮게 비행하는 헬리콥터는 다소 위압스러웠고 우리를 다소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비행 물체들은 얼마 후에 우리 시야에서 모두 사라졌고, 우리는 공원의 원래 분위기를 되찾았다.
공원에는 산책로가 정말 잘 만들어져 있었고, 중간에 쉴 수 있는 벤치들도 정말 많았다. 이 날은 이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하늘만 보고 있거나 주변에 녹색이 가득한 공간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우리는 벤치의 유혹을 물리치고 조금 더 걸었다. 그곳에는 작은 연못과 그 위로 작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바로 일본 정원이라고 이름 붙은 곳인데, 사실 왜 일본 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잘 모르겠다. 일본의 특징이 딱히 눈에 띄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리젠트 공원 안에 있는 작은 연못과 그 연못 위에 떠있는 아주 작은 섬일 뿐이었다. 그래도 연못과 그 주변의 풍경이 아릅답긴 했다. 어찌 보면 다른 공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이지만, 이날의 날씨와 우리의 기분, 그리고 리젠트 공원의 감성이 이 모습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서 작은 섬으로 들어가 봤는데, 그 안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고 막다른 길이어서 금방 다시 되돌아 나와야 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걷자 카페가 나왔다.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카페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어디까지나 내 예상보다 많았을 뿐, 그렇다고 해서 카페가 붐비거나 정신이 사납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숙소를 나선 우리는 이곳에서 카페인 충전을 하면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커피를 받아서 공원이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는 신문을 보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꽤 많았다. 영국에서 이렇게 공원에 있는 카페나 대형 슈퍼마켓에 있는 카페를 가면 어르신들이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신문을 보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렇게 평화롭고 고즈넉한 공원 카페에서 편안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는 그분들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우리도 먼 훗날 저런 여유를 가지면서 살게 되기를 잠시 생각해 봤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앞으로의 영국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때로는 여행이 되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영국에서 사는 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작년에 이어 1년 만에 다시 찾은 영국이지만, 이번 한달 간의 여정에 대한 설렘은 작년에 비해 결코 작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매 순간을 즐기도록 노력할 것이고, 너무도 편안하게 한달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짝꿍 동생을 만나러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잠시 앉아서 기력을 충전한 우리는 공원을 벗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런던에서의 우리 첫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