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림로스 힐(Primrose Hill)
런던에서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프림로스 힐이라는 공원이다. 이 공원은 런던에서 짝꿍이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공간이다. 나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지만, 짝꿍은 이미 이곳을 두 번 정도 다녀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공원이 너무 좋아서 나에게도 꼭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런던에서 두 번째 장소로 프림로스 힐을 결정했다. 이번 포스팅은 사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긴 이야기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여기는 해가 질 때 즈음에 가야 하는데... 조금 이르네."
"그러게. 해가 너무 늦게 져서 석양은 못 보겠다."
프림로스 힐은 이름에 언덕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처럼, 오르막을 꽤 많이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다. 초크 팜(Chalk Farm) 지하철 역에서 약 10분 정도를 계속해서 올라가면 프림로스 힐 공원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오르막이라서 조금 숨이 가빠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는 길에 보이는 집이나 여러 상점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육체의 힘듦을 조금은 잊을 수 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특색 있는 카페가 많아서 그 중 하나를 선택하여 안에 들어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이미 카페에 들르기도 했고 얼른 이 공원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서 쉬고픈 마음에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공원으로 곧장 향했다. 우리가 프림로스 힐에 간 것이 오후 5시 즈음이었는데, 그 때 한국시간으로는 이미 새벽이라서 시차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우리에게 피곤함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피곤해도 짝꿍은 이 공원을 꼭 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나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과연 어떤 곳이기에 짝꿍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인지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언덕을 오른 우리는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 도착하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오르막을 올랐는데, 막상 공원에 도착하니까 공원도 오르막이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오르막을 올랐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 주변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간단하게 간식거리를 갖고 와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고, 여럿이 함께 와서 시끌벅적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무리도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언덕을 올라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주는 것처럼 이 공원에서는 런던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왔다. 런던아이나 더 샤드 전망대처럼 완전히 위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은 아니지만, 앞에는 공원의 푸르름이 있고 그 뒤로 도시 런던의 모습이 펼쳐지는 풍경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왜 짝꿍이 이곳을 좋아하고, 왜 나에게 이 공간을 소개해주고 싶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이곳까지 오는 길에 정말 피곤했는데, 막상 공원에 들어와서 앉으니까 피곤하다는 느낌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것은 새로운 공간이 주는 설렘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아름다움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옆에 있는 짝꿍과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재잘재잘 이어가다 보니 피곤함이 찾아올 틈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프림로스 힐에서 보이는 런던의 모습만 얼른 보고 돌아갈 생각으로 찾아온 것인데,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아마 날씨가 다소 쌀쌀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우리가 배고프지 않았다면 공원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다. 그만큼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공원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나는 짝꿍이 이곳을 왜 소개해주고 싶었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이 장소가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을 넘어서, 짝꿍이 좋아하는 공간에 대한 기억을 짝꿍 혼자만의 기억에서 우리 둘의 기억으로 바꾸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짝꿍 혼자만의 공간으로 남아있던 곳이 우리가 함께 감으로써 우리 둘 사이에 공유되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짝꿍의 이야기에 공감을 더 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함께 간직하는 기억을 꺼내어 같이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내가 좋아했던 장소를 짝꿍에게 소개시켜주고, 그로 인해 나 혼자 기억하는 공간을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공간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든, 영국에서든 내가 좋아했던 장소를 짝꿍과 최대한 함께 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러한 노력 덕분에 우리는 꽤 여러 장소에서 우리 공통의 기억을 만들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우리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프림로스 힐에 대한 이야기는 비교적 짧게 마친다. 이곳까지 가는 오르막이 다소 힘들긴 하지만, 이곳에 오르면 그 노력의 대가는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런던을 여행하면서 뻔한 여행지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곳을 가보고 싶다면, 더 나아가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을 가보고 싶다면 단연 프림로스 힐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