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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Jan 05. 2024

[스코틀랜드] 고풍 그 자체의 도시

에딘버러(Edinburgh)

영국으로 떠나기 전, 우리는 아직 영국에서 가보지 않았던 지역으로 여행하기로 오래 전부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차에, 내가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지역이 떠올랐다. 바로 영국의 연방국인 스코틀랜드, 그 중에서도 스코틀랜드 북부인 하이랜드였다. 이곳은 내가 영국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오래 전부터 생각해둔 곳이었는데, 접근성이 다소 떨어져서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짝꿍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우리는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다녀왔다. 오늘은 그 여정의 시작점, 바로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딘버러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딘버러 시내까지 가볼까? 아니면, 그냥 건너뛸까?"

"그래도 가보자. 에딘버러 도시 분위기가 좋아서 또 보고 싶어."


이번 스코틀랜드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하이랜드 로드 투어였다. 그래서 에딘버러 시내를 구경하러 갈까하는 고민을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많이 했다. 에딘버러는 꽤 여러 번 다녀온 곳이기도 하고, 짝꿍과 연애하던 시절에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그래서 이미 다녀온 곳을 다시 가기보다는 그 시간을 새로운 장소에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는 에딘버러 공항에 도착하기 때문에 어찌됐든 에딘버러는 무조건 거쳐야 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우리 둘 모두 에딘버러에 대한 기억이 워낙 좋았고, 에딘버러가 아름다운 도시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아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짝꿍은 이와 관련해서 정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한 반나절 정도만 에딘버러를 돌아보고 떠나기로 타협했다.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 가기에는 하이랜드 로드투어 일정이 다소 촉박해질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잠깐 들렀다 가는 정도로만 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결정을 하고 우리는 에딘버러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시내까지는 트램과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두 교통수단 모두 걸리는 시간은 30~40분 정도로 비슷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에딘버러 시내에 도착해서 에딘버러 중앙역인 웨이벌리역(Waverley Station) 근처에서 내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에딘버러 시내의 모습은 우리가 왔었던 5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에딘버러 도시 특유의 고풍스럽고 웅장한 느낌은 여전했다. 이곳을 벌써 다섯 번째 오는 나는 익숙하게 길을 찾았다. 공원을 지나고 언덕을 올라가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에딘버러 여행의 중심인 에딘버러 구시가지였다. 짧은 시간만 머물다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에딘버러스러운 장소를 찾아간 것이다. 



"여기는 여전히 사람이 많네."

"그러니까. 성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데? 


에딘버러 구시가지에는 언제나처럼 사람이 많았다. 에딘버러에 여행을 오는 대부분의 첫번째 목적은 중세시대 느낌이 가득한 고풍스러운 에딘버러 구시가지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여행객들로 붐비는데, 특히 에딘버러 성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에딘버러 구시가지는 에딘버러 특유의 올드하지만 중후한 느낌이 가득하다. 영국의 정말 많은 도시를 찾아다녔지만, 에딘버러만큼 중후한 멋을 보여주는 도시는 결코 없었다. 나는 짝꿍에게도 에딘버러가 영국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가득한 도시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개인적으로 런던보다 에딘버러에 더 정이 많이 간다. 런던과 에딘버러 중 여행할 도시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큰 고민 없이 에딘버러를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꽤 많은 짐도 들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저 에딘버러 구시가지의 감성만 되살리고 싶어서 온 것이기 때문에 천천히 도시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산책하듯이 거닐기로 했다. 에딘버러 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사람이 너무 많아 보여서 가보지 않았다. 에딘버러 성 앞에 있는 광장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전경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굳이 욕심부리지 않았다. 대신 도심을 거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고풍스러운 건물 안에 들어선 상점들을 둘러보면서 에딘버러 거리를 걸었다. 길 한복판에는 버스킹을 하는 마술사가 있었고, 그를 보기 위해 사람들을 동그랗게 원을 그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거리를 무대 삼아, 관광객을 관객 삼아 한 편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에딘버러 시내를 천천히 둘러보다 보니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골목골목의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이 많이 가는 곳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향하다 보니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문득 그 길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만 따라가면 결코 발견하지 못할 이런 골목길에서 에딘버러의 감성이 더욱 짙게 느껴졌다. 우리는 그런 골목길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큰 길을 걷다가도 건물 사이로 난 골목길을 발견하면 잠시 눈길을 돌려보고, 그 길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으면 망설이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발견하게 된 좁은 골목들에는 별다른 게 없었지만, 건물이 주는 멋드러진 중후한 느낌 때문에 골목길마저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현실 세계의 공간이 아니라, 다소 비현실적이면서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한 공간이었다. 


다수를 따르는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이렇듯 우리는 여행을 하다가 우리의 직관을 따라가는 경우가 정말 많다. 계획을 하고 여행을 하지만, 그 계획이 여행지에서 그대로 지켜진 적은 거의 없었다. 계획을 세울 때는 우리가 여행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단편적인 계획만 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막상 여행지에 도착해서 그곳을 살펴보면, 우리의 예상과 다른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한 지역이 우리에게는 그저 그런 장소가 되기도 하고, 정보가 거의 없는 장소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던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처럼 여행지에 도착해서 순간순간 계획을 항상 바꾸고, 그 순간의 직관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곤 한다. 그래서 다른 여행객들이 모두 가는 전형적인 여행지를 계획에 넣고 오지만, 그 장소를 안가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에딘버러에서도 구시가지의 메인 거리를 돌아다닐 심산으로 이곳을 찾아왔는데, 막상 우리는 메인 거리를 벗어나서 좁은 골목길 탐방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그 좁은 골목길에서 에딘버러의 짙은 감성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다수를 따라가는 것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니다. 설령 대다수의 사람들이 반대로 가더라도, 때로는 본인의 직관과 판단을 믿고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구시가지를 한참 돌아다닌 우리는 다시 신시가지로 내려왔다. 에딘버러 신시가지는 구시가지와 다르게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진다. 쇼핑을 할 수 있는 상점도 많고, 트렌디한 식당이나 펍도 이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에딘버러는 두 가지의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모두 갖고 있는 도시이다. 그리고 그 두 모습이 모두 너무도 분명해서 섞이지 않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잘 섞여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 방향을 바라보면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언덕 위에 끊임없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풍경은 에딘버러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모습이다. 구시가지를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정말 웅장하고 중후한 건물들로 이루어진 스카이라인이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그리고 우리는 에딘버러 성 아래에 있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원에 들어섰다. 이 공원은 프린세스 스트리스 가든(Princes Street Gardens)으로, 시내를 여행하다 잠시 쉬어가기 좋은 장소이다. 이 공원은 도심보다 다소 낮게 만들어져서 계단이나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공원이 2층 구조로 되어 있어서, 한번 더 내려가면 공원의 가장 낮은 곳까지 도착하게 된다. 도심보다 낮은 곳에 있다 보니까 공원 크기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아늑했고 조용했다. 도심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공원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서 점심을 먹거나 간식을 먹는 사람들도 자주 볼 정도로, 이곳은 에딘버러 시민들도 정말 많이 찾는 공간이다. 


우리는 차를 렌트하러 공항으로 다시 가야했는데, 렌트 시간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아서 이곳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에딘버러에서 가볼 만한 곳은 정말 많지만, 우리는 짐을 끌고 다녀야 해서 바쁘게 돌아다닐 수 없었고 많은 곳을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에딘버러를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번 만남은 반나절만에 짧게 끝났지만, 다음에는 조금 더 긴 시간을 가지고 이곳을 찾아오기로 짝꿍과 이야기했다. 그럼 에딘버러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줄이고, 다음 포스팅부터는 스코틀랜드 로드트립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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