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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Feb 22. 2021

통영에서 담아낸 여름이야기

동피랑마을, 미륵산 케이블카, 달아공원

2020년 여름, 짝꿍과 여름휴가를 함께 떠났다. 외국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 내에서 여름휴가를 보내야만 했고, 많은 고민 끝에 통영으로 결정했다. 짝꿍이 아직 가보지 못했던 곳을 소개해 주고 싶었고,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부터 통영까지 운전해서 내려갔다. 꽤 오래 걸리는 길이었지만 짝꿍과 함께 보내는 여름휴가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 짝꿍도 설렘 가득한 목소리와 얼굴 표정을 한 채 차 안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통영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통영에는 날씨가 많이 흐렸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는 상황이었다. 날씨가 많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흐리고 비가 온 덕분에 조금 더 즐거운 추억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통영의 벽화마을, 동피랑 마을


통영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동피랑 마을이다. 통영의 대표적인 여행 명소가 되어버린 이 장소는 마을 전체에 빼곡하게 그려진 벽화를 보는 재미와 동네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통영 시내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통영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이기도 하고, 통영 시내에 위치해 있어서 첫 번째 장소로 선택한 것이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동피랑 마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항구 특유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와 잔잔한 바닷물에서 전해지는 고요한 분위기가 묘하게 잘 어우러진 곳이 통영이다. 동피랑 마을까지 가는 길은 왁자지껄하고 여러 소리들이 들려오는데, 일단 동피랑 마을에 들어서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항구 마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짝꿍은 동피랑 마을에 그려진 벽화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생각보다 깨끗한 벽화의 상태에 놀랐고, 그림의 퀄리티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리고 마을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통영의 모습에는 여지없이 녹아내리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높은 곳이 아니었고, 흐린 날씨 탓에 가시거리가 짧았음에도 그 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 미륵산


그리고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미륵산 케이블카이다. 통영에 있는 미륵산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떠 있는 수많은 섬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이미 널리 알려진 장소였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주말에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곳인데, 우리는 단 1분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날씨 때문이었다. 워낙 흐리고 비도 오락가락 하는 탓에 미륵산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표를 구입할 때도 직원께서 올라가도 한려해상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라고 미리 안내를 해주셨다. 그럼에도 우리는 표를 구매했고 미륵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 곳에서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짝꿍과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우리만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정말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


미륵산 케이블카 정류장에 내리면 정상까지 약 15분 정도를 더 올라가야 한다. 산 위에 오르니 구름과 안개가 잔뜩 끼어있는 숲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정말 동화 같았으면서도 묘했다. 안개가 가득 끼어있는 계단 위를 바라보면 그 길이 마치 동화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길처럼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미륵산 정상까지 무사히 올라갔다. 미륵산 정상에는 궂은 날씨임에도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미륵산 정상 표지석과 함께 사진을 찍고, 구름에 가려진 한려해상의 모습을 상상했다. 바람에 구름이 옅어지면 흐릿하게 보이는 그 모습이 우리의 애간장을 녹이는 듯 했다. 그리고 우리가 구름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에 서로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즐겁게 웃었다. 별 이유 아니었는데, 그 때는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고 난 후,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 순간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리는 우산이 없었고, 미륵산 정상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나무 같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비에 홀딱 젖어버렸다. 비를 맞으면서 조금 내려오니까 나무 아래로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그 곳에서 비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그 순간에 기분이 정말 좋았다. 휴가 기간에 비가 오고, 그 비에 홀딱 젖어서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나도 짝꿍도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몸 안에 있는 모든 스트레스와 번민들이 비를 맞으면서 모두 밖으로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다른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그 순간에 집중했고, 그 순간이 행복했다. 



내려오는 길에 구름이 조금 걷히면서 그 안에 숨어있던 것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산 속에 폭 파묻혀있는 마을과 바다로 언제든지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항구의 모습, 그리고 그 위에 떠 있는 섬들의 모습까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내려오는 길에 받았다. 그 모습까지 보고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을 완전히 내려왔다. 



일몰을 빛내주는 바닷가, 달아공원


통영에서 다음으로 갔던 장소는 달아공원이다. 통영의 달아공원은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공원으로 일몰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물론 흐렸던 날씨 때문에 일몰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곳을 찾은 것은 그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달아공원이 일몰 명소로 유명해지기까지는 그 뒤에서 묵묵하게 배경이 되어주던 바다의 모습이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이 있기 때문에 그 뒤로 넘어가는 일몰이 더 극적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일몰을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바다를 보기 위해서라도 달아공원을 찾아갈 만한 곳이다. 물론 통영이 바닷가 마을이기 때문에 어딜 가나 바다를 볼 순 있지만, 각 장소에서 보는 바다의 모습이 모두 다른 것처럼 달아공원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도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비록 일몰을 볼 수 없었지만 짝꿍도 달아공원에서 한참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일몰을 볼 수 없었던 날씨 덕분에 공원에 사람이 많지 않았고, 오히려 더 편안하게 고즈넉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공원 안에서 같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같은 곳을 향해 함께 나아갈 미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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